20여 년 전만 해도 카메라 셔터는 함부로 누를 수 없었다. 필름 한 통을 갖고 24장 또는 36장밖에 찍을 수 없는 데다 찍고 나서도 현상·인화에 돈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도 결혼식 사진, 신혼여행 사진을 망쳤다는 낭패담이 드물지 않았다. 필름이 제대로 감기지 않거나 필름에 빛이 들어가는 바람에 원했던 사진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름을 현상소에 맡기고도 며칠 기다려야 했다. 현상·인화를 하자면 그만큼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요즘 스마트폰 세대는 '필름이 뭐냐'고 할지도 모른다.

▶"버튼만 눌러라. 나머지는 우리가 한다(You press the button, we do the rest)." 코닥 창업자 조지 이스트먼은 1888년 첫 필름 카메라를 내놨다. 유리판을 갈아 끼우고 직접 현상·인화를 하는 복잡한 과정을 생략하고 누구나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했다. 코닥은 120년 넘게 필름, 필름카메라 분야 선도기업이었다. 그랬던 코닥이 2012년 파산신청을 했다. 디지털 카메라를 먼저 개발하고도 아날로그식 필름 카메라에 집착하다 뒤처졌기 때문이다. 
 
[만물상] 필름 카메라의 퇴장

▶필름 카메라가 밀려난 다음 한동안 전문가용 디지털 카메라(DSLR)가 인기를 모았다. DSLR도 가고 이젠 스마트폰 세상이다. 갈수록 화질이 좋아진 데다 손쉽게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저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대표적 카메라 회사인 캐논이 그제 필름 카메라 사업을 접겠다고 발표했다. 2010년 필름 카메라 생산을 중단했으나 재고 상품은 팔아왔는데 그마저 중단한다는 것이다. 이제 일본 카메라 메이저 중 니콘만 필름 카메라를 판다.
 
▶흐름을 거꾸로 타는 사람들도 있다. 요즘 젊은 세대 사이에서 필름카메라를 모방한 스마트폰 사진 앱이 인기라고 한다. 필름 한 통마다 찍을 수 있는 사진은 딱 24장. 한 장 한 장 신중하게 촬영할 수밖에 없다. 필름을 다 쓰고 사흘 지나야 스마트폰 화면에 사진이 뜬다. 사진은 디카처럼 명료하지 않고 흐릿하다. 옛날 사진처럼 아날로그 느낌이 들어 좋다는 것이다.

▶디지털 카메라나 스마트폰 은 무한정 찍어대도 필름값이 들지 않는다. 야생화 사진을 찍는 사람이 늘고 무수히 많은 음식 블로그가 등장한 것도 그런 카메라 기술의 진화 덕분이다. 하지만 마구 찍을 수 있다보니 찍은 사진에 대한 애착은 덜할 수밖에 없다. 디지털 사진은 비행기 기내식 먹는 기분이라는 사람들도 있다. 필름 카메라의 퇴장에 익숙했던 것 하나가 또 사라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

 

조선일보 김기철 논설위원 

2018.06.02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6/01/201806010374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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