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구 견해 온당하지 않으면 합리적 논쟁 통해 부당함 밝히면 그만
이에 일전을 치르려는 박근혜는 혹시 박정희시대를 자유민주체제로 아나?

  나는 강정구 교수의 정치적 견해에 찬성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발언할 수 있는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조선일보>의 조갑제씨나 시스템 클럽의 지만원씨, 고려대학교 한승조 교수 등 극우세력의 발언에 어처구니가 없고 가슴이 턱턱 막히지만, 그들을 법적으로 억압하는 데는 반대한다. 조갑제씨는 국군을 상대로 쿠데타를 선동하는 발언마저 했다. 그러나 그가 정말로 쿠데타를 모의했다는 구체적 증거가 없는 한, 그를 구속할 수 없으며, 논리도 이치도 닿지 않는 말이라 하더라도 강제로 하지 못하게 막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강정구 교수 역시 자신의 견해를 표출할 수 있어야 한다. 사상과 발언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의 기초다. 조갑제씨 등에게 말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강 교수에게도 말할 권리가 있다. 어떤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사람은 아무리 험한 말이라도 해도 괜찮고, 다른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사람은 학문적인 견해조차 개진할 수 없다면, 그것은 이미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전체주의다.
  그런데 강정구 교수의 발언을 둘러싸고 최근에 한나라당은 나라가 절단이라도 날 것처럼 요란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강 교수의 견해는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에 불과할 뿐이며, 대중은 물론 학계의 호응도 받지 못하는 특이한 의견에 지나지 않는다. 남북한의 체제 경쟁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났다. 아무도 북한체제를 동경하지 않는다. 나는 구속이고 불구속이고 학문적 견해가 수사대상이 된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 그의 견해가 온당하지 않다고 생각된다면, 합리적인 논쟁을 통해 그 견해의 부당함을 밝히면 그만이다.
  강정구 교수의 구속수사에 반대하는 열린우리당이나 정부가 강 교수를 옹호하고 있다는 주장은 허무맹랑한 정치 공세에 지나지 않는다. 천정배 장관의 지휘권 행사도 지극히 원론적인 수준의 법적 절차일 뿐이다. 가능하면 인신을 구속하지 말고 수사하라는 원칙적 입장 천명에 불과한 것이다. 공안사범의 경우, 일반 사범의 거의 6배에 가까운 구속율을 보인다고 한다. 이것이 온당한 일인가? 우리 나라가 혐의만 있으면 무조건 잡아 가두고 보는 인권 후진국인가? 대학교수라는 직책을 가지고 대체 어디로 도망을 갈 것이며, 엄연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어떤 증거를 어떻게 인멸한다고 반드시 잡아 가두어야겠다는 것인가? 천정배 장관의 지휘권 행사에 집단 항명 움직임마저 보이는 검찰 역시 이해할 수 없다. 검찰은 오히려 구속수사를 지휘받았다 하더라도 불구속 입장을 견지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인권을 가볍게 보는 검찰이라면 그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강 교수 강의를 들었던 학생은 취업시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말을 공식석상에서 내뱉는 경제관련 단체 인사의 멘털리티는 야만성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지금이 중세인가? 어떻게 취업을 빌미로 실제적으로 학문과 사상의 자유라는 자유민주주의의 기초를 부정하는 발언을 쏟아낼 수 있다는 말인가? 이것은 신연좌제일 뿐만 아니라, 돈의 이름으로 자유를 억압하겠다는 지극히 천박한 태도다.
  박근혜 대표는 강 교수 건을 재보선 선거에 알뜰히 이용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나라가 붉은 세력에게 점령당하기라도 한 듯, 노골적인 선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데 박근혜 대표는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을 방문해서 단독 면담을 한 적도 있고, 그에게 선물도 했으며, 그에 관해 호의적인 발언도 한 바 있다. 이건 박 대표가 몸을 던져 막겠다는 국가보안법 위반이 아닌가? 뿐만 아니라 박 대표는 여러 차례 방북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적성국가의 우두머리를 만나 비밀회합을 했을 뿐만 아니라, 계속 만날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박 대표부터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이 아닌가? 박 대표는 국민들 위에 군림하는 초법적 존재라도 된다는 말인가?
  박근혜 대표는 자유민주주의의 기초가 무엇인지 잘못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는 그의 말이 곧 법이었던 시대였다. 박 대표는 아버지가 유지했던 독재체제를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독재자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조건 빨갱이로 몰아 잡아다가 고문하고 죽이던 시대의 정치제도를 자유민주주의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툭하면 정체성을 들고 나와 정통성 100%의 현정권을 비난하는 것을 보면 그것이 박 대표의 확신인 것 같다. 박 대표 아버님이 운영하셨던 체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아니라 일인독재체제이며,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시행하고 있는 정치체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것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반공을 앞세운 전체주의였을 뿐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 하에서는 어떤 발언이라도 관용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 하에서는 다른 사상을 가졌다는 이유로 시민의 인신을 구속할 수 없다. 조갑제씨의 발언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를 구속 수사하겠다고 검찰이 나선다면, 나는 강정구 교수의 구속에 반대하는 것과 똑같이 반대할 것이다.
  아무리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이렇게 나라의 갈등을 조장하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 그 숱한 세월을 이데올로기 투쟁으로 지새우며 좌/우 공히 숱한 상처를 입었던 공동체 안에 다시 이데올로기 망령을 불러들이는 것은 참으로 무책임한 행동이다. 남성 정치인들이 그렇게 하더라도, 나서서 말려야 하는 것이 남성들의 투쟁 일색의 정치와 달리 사랑과 관용을 덕목으로 삼고 정치해야 할 여성 정치인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박 대표는 앞장서서 증오에 기반한 철지난 색깔논쟁에 불을 지피고 있다. 박 대표가 대통령이 된다면, 아버지 시절처럼 다시 사상을 빌미로 한 피바람이 불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마저 든다. 이것이 그간 박 대표가 부르짖어 왔던 상생의 정치이며, 민생을 걱정하는 정치인가? 이제 제발 메뉴 바꾸고 미래로 걸어가자. 지구상에 이데올로기 투쟁을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정치인을 가진 나라는 이제 거의 하나도 없다. 한나라당이 그토록 좋아하는 ‘글로벌 스탠더드’ 좀 유지하자. 21세기 복판에 아직도 색깔통을 들고 난리법석이라니 부끄럽지도 않은가?


2005-10-27, 한겨레신문
김정란/상지대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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