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사. 라틴 춤이다. 아슬아슬하다. 우리 사회에도 살사 춤이 퍼져가고 있다는 보도가 슬금슬금 나온다. 딴은 쾌락을 강권하는 세상 아닌가. 하지만 살사 춤판의 들머리에 걸린 아르헨티나 출신 혁명가 체 게바라(1928~67)의 얼굴은 아무래도 낯설다. 체의 사진이 걸린 술집도 곰비임비 등장했다. 술과 춤은 그래도 민망스럽지 않을 수 있다. 이윤을 좇는 기업의 광고에도 체의 얼굴은 등장한다. 심지어 브라질의 의류기업은 체의 얼굴이 박인 여성 속옷을 내놓았다.
  마침내 체의 유족들이 발끈했다. 체의 아내는 남편의 얼굴을 상업적으로 남용하는 기업들 쪽에 법정 투쟁을 경고했다. 십분 이해할 수 있다. 체 게바라. 그가 누구인가. 세계 곳곳의 눈 맑은 젊은이들 가슴에 불을 지른 혁명가다. 게릴라 투쟁을 벌이던 볼리비아에서 총살당했다. 미 제국주의와 맞서 총을 들고 싸우다 숨진 혁명가가 술이나 여성 속옷 광고에 ‘모델’이 된 꼴은 비극이다.
  문제는 단순히 상업적 이용에 그치지 않는다. <체 게바라와 쿠바 혁명>을 쓴 마이크 곤살레스(영국 글래스고대 교수)는 체의 인기에 담긴 정치적 의도를 파헤친다. 체가 혁명의 군사적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체는 혁명에 필수적인 민중적 지지기반을 조직하는 정치적 차원을 무시했다. 그 결과는 자신의 죽음과 볼리비아 혁명의 참담한 실패였다.
  결국 제국주의자 또는 신자유주의자들은 체의 대중적 인기에서 아무런 위협도 느끼지 않는다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이 점은 체의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편집하는 이 땅의 부자 신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틈날 때마다 노동운동을 왜곡 보도하거나 살천스레 색깔공세를 펴는 부자 신문이 체의 기사를 싣는 깜냥은, 그의 혁명 전략이 비현실적이고 그만큼 ‘안전’해서가 아닐까. 바로 그 곳에 사회주의 혁명가 체 게바라 비극의 심연이 있다.


손석춘 논설위원 songil@hani.co.kr
2005-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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