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정도, 사랑도, 삶에 대한 고민도 깊이 있게 했던 <우리들의 천국>  
ⓒ2005 MBC
▲ <사랑이 꽃피는 나무>에서 가난한 고학생과 부잣집 의대생으로 나왔던 이미연과 최수종  
ⓒ2005 KBS

  보통 한 세대를 설명할 때 당시 문화와 연결지어 OO세대라고들 한다. 필자의 경우 중학교 때 서태지 세대, 고등학교 때 H.O.T 세대를 함께 겪었으며 오늘 이야기할 시트콤으로 치자면 MBC의 <남자 셋 여자 셋>(남셋여셋) 세대라 할 수 있다.
  <남셋여셋>의 뒤를 이어 그 자리에 방영된 것이 <논스톱 시리즈>(월~금요일 오후 6시50분 방영)다. 초반 길을 잘 닦아 놓은 <남셋여셋>의 영향으로 <논스톱 시리즈> 역시 20대 젊은 대학생들의 풋풋한 이야기를 그려내는 소재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논스톱>은 <뉴 논스톱>을 거쳐 <논스톱5>까지 오면서 자연스레 신인 배우들의 등용문이 되기 시작했고 회를 거듭할수록 초반의 신선함을 소재보다는 등장인물의 교체로 유지하려 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게 된다.

대학 가면 연애만 하나?

  주 시청자의 연령대가 중·고등학생일 것인 <논스톱>이 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프로그램 본연의 취지였던 대학생활에 대한 희망 또는 현실적 대학문화가 아니라 허무맹랑한 상황 설정들이다. 마치 대학이 남녀들의 짝짓기 무대나 되는 듯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정이 사랑이 되고, 그 사랑이 다시 우정으로 둔갑하고 친구의 친구를 사랑하다 또 포기하고…. 주류에 끼지 못하는 비호감 외모의 캐릭터들은 음식에 집착을 보인다거나 누군가를 짝사랑하다 실패하는 식의 일상을 반복한다. 밤마다 어느 한 곳에 모여 쓸데없는 농담이나 회상 등을 하면서 한가롭게 맥주를 마시는 것도 이 시트콤의 주된 소재다.
  대학 생활이 그렇게 한가로운가? 대학에 가서는 연애만 하나? 아무리 젊음의 코드가 사랑이라지만 이게 지극히 비현실적이라는 건 시청자들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삼각 사각 오각 등 '다각관계' 의 설정, 또 그에 끼지 못하는 이들을 웃음의 소재로 삼아 우려먹는 방식도 식상 그 자체다.
  얼마 전 방영된 내용 중에는 극중 '고기'에 집착하는 조정린과 정형돈이 공짜 고기를 얻어먹기 위해 다투는 장면이 방영됐다. 그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던 홍수아에게 온갖 아부를 떨어 수아 고모가 운영하는 고깃집에서 공짜 고기를 먹을 수 있게끔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는 설정이었다.

신선한 소재 대신 캐릭터의 망가짐으로 웃음을

  하지만 아무리 '먹는 것에 물불 못 가리는' 캐릭터라지만 그 둘은 그 가게가 망해서 빚쟁이들이 난동을 피우는 와중에도 꾸역꾸역 고기를 먹어댔다. 더군다나 마치 눈물겨운 승리라도 쟁취한 듯 배경음악으로 잔잔히 깔리던 양희은의 '상록수'. 터져 나오는 실소로 허하다 못해 배가 고플 지경이다.
  물론 <논스톱> 연출진들은 최근의 트렌드를 반영하고 나름대로의 소재발굴을 위해 머리를 짜낼 것이다. 그러나 '어디서 본 듯한데…' 하는 내용들이 적지 않다. 많은 내용들이 영화나 인기 드라마의 패러디이며 몇 달 전에도 본 것 같은 상황에 캐릭터만 바꾼 듯한 찝찝함을 감출 수 없다. 심지어 인터넷에 떠도는 유머까지 단골 소재가 되고 있다.
  <논스톱 시리즈>을 통해 배출된 연예인들은 꽤 많다. 신인들의 등용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조인성, 현빈 등 많은 <논스톱> 출신들이 이미 스타의 반열에 올라섰고 이외에도 무수한 '젊은 청춘'들이 이 드라마를 거쳐갔다. 그러나 이들은 어느 정도 지명도(어디까지나 지명도 일뿐, 연기력이라는 소리는 아니다)가 생기면 약속이나 한 듯 '유학'을 가고 '군대'를 가는 핑계로 극에서 빠지게 된다. 그리고 그 자리는 또 다른 신인들로 채워진다. 배우들이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임하는 프로라기보다는 신인들이 얼굴을 알리기 위한 연습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다.
  젊은이들을 소재로 하는 시트콤의 내용이나 연기자들이 대부분 그렇지 뭘 더 바라느냐는 의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과거의 청춘드라마는 달랐다

  1987년부터 1990년까지 방영됐던 <사랑이 꽃피는 나무>(KBS)를 떠올려보자. 이 드라마는 메디컬 드라마의 형식을 띠고 대학생들의 미래와 사랑을 얘기했다. 비단 그 공간을 대학교와 의대생에만 한정 짓지 않고 그 시점을 각각의 가정으로 돌려 가족간 화합이나 삶의 진지함에도 한 걸음 다가서는 모습을 보여줬다. 카메라는 대학생들의 고민, 의대생의 고뇌와 함께 대학생 자녀를 둔 아버지 어머니들의 참모습까지 쫓느라 늘 바빴다.
  최근 <제5공화국>에서 장세동으로 열연하고 있는 홍학표도 한때는 청춘스타로 오빠부대를 이끌었었다. 1990년에서 1994년까지 방영된 <우리들의 천국>(MBC)은 홍학표, 염정아, 남주희 등 젊은 연기자들을 내세워 대학교 학생들의 사랑과 우정을 풋풋하게 그려냈다.
  '문화 비평 재단'이라는 문학 동아리를 기본틀로 대학 생활의 풋풋함과 열정을 그려냈던 <내일은 사랑>(KBS)도 인기 프로였다. 이병헌 박소현 고소영 김정균 이경심 등이 그려낸 '가볍지 않은 유쾌함'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당시 대한민국 젊은 남성들의 이상형으로 떠올랐던 박소현은 그동안 드라마 여주인공들이 보여줬던 소극적이고 순종적이었던 모습에서 탈피, 진취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는 여인상을 보여주었다. 분식집 딸 이경심과 그의 어머니 김형자는 모녀가정의 갈등과 화합에 대해 얘기할 때는 이 드라마의 '주연'이었다. 김형자는 대학생 딸을 둔 분식집 여사장으로 극 속의 젊은이들에게 연륜이 묻어나는 삶의 선배이자 최고의 카운셀러였다.

당시의 코드 '아르바이트', '사회진출', '우정', '현실참여'...

  방학 때마다 온갖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며 경영학도로써의 길을 꿋꿋이 걸어간 김정균, 공인회계사의 꿈을 접고 대학원의 길을 선택한 이지형, 남자친구를 위해 한겨울에 얼린 손을 녹이며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던 오솔미 등 현재의 청춘물이 보여주는 트렌드몰이를 위한 사업적 사치문화와는 사뭇 다른 시청자들의 공감을 위한 장치들도 돋보였다.
  <내일은 사랑>이나 <사랑이 꽃피는 나무>처럼 큰 화제를 모으지는 못했으나 가장 현실적인 드라마였던 박일문 원작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도 있었다. 이병헌, 신윤정, 나현희가 주연을 맡았던 이 드라마는 엄밀히 따지자면 청춘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80년대 그 혼란했던 시대를 배경으로 젊은이들의 고뇌와 매캐한 최루탄 냄새가 고스란히 담아냈다.
  여주인공인 신윤정이 시위 현장을 지나가다 군인들의 검문을 받게 되고 이를 거부하자 실랑이가 벌어지면서 가방속의 생리대가 쏟아지는데, 이 당혹스러운 상황에서도 군인들은 그들의 임무에 충실하며 그녀의 책들을 뒤지고….
  이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사적인 사랑과 미래 등의 고민 보다는 스스로 주체가 되어 시대를 바꾸려 하는 불나방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고민들은 무거웠고 현실적이었으며 진지했다.
  이렇듯 과거의 그들은 학점을 위해 밤잠을 마다하고 사랑을 위해서 고통도 겪었으며 자신이 발 딛고 있는 땅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다. 인상 한번 찡긋거리고 넘어가는 얇은 고민과 알아서 풀어지는 상황이 아닌 그들만의 진정한 고뇌라는 것이 있었으며 미래에 대한 걱정과 근심도 함께 묻어났다

"<논스톱>, 차라리 그만하든지"

  다시 <논스톱5>로 돌아가보자. 하이틴 스타들의 어설픈 연기와 억지스런 상황 설정, 인기드라마나 영화에 대한 패러디 등등 뻔해보이는 주제만으로 <논스톱6> <논스톱7>...으로 이어갈 수는 없지 않을까.

  <논스톱5> 홈페이지에 가면 이렇게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다.
  "통쾌한 웃음과 코끝 찡한 눈물 속에 젊음의 패기, 열정, 꿈, 우정, 사랑을 담아낼 <논스톱 5>. 청춘을 얘기할 열린 마음만 있다면 만사 OK"

  이 약속을 지켜달라. 대학과 젊음을 모두 보여달라. 청춘을 얘기할 열린 마음이 다가설 수 있게 말이다. 언제까지 <논스톱>이 '논스톱'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변화 없는 방송은 시청자들에게 외면을 받게 마련이다. 기왕 하려면 신인들의 연기연습실이나 캐릭터만 바꾼 뻔한 스토리로 식상함에 부채질하는 식으로는 안 된다.

  자신 있는가. 그럴 자신 없다면 <논스톱>, 이제 스톱!  


2005-08-19 14:48
ⓒ 2005 OhmyNews
박봄이(myeris)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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