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서 보기 드문 혼성그룹. 쿨과(위) 코요태(아래). 쉽고 경쾌한 음악뿐만 아니라 평범하고 귀여운 여성, 익살스러운 남성 멤버의 구성도 닮았다.

두번만 들으면 흥얼거릴 수 있는 한국 댄스음악의 양대 산맥
10대 아이돌 중심 시장에서 독특하게 만들어진 중독성, 누가 싫다고 말하랴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하어영 인턴기자 ha5090@dreamwiz.com


  그들의 시작은 미약했지만 끝은 (나름대로) 창대했다. 처음부터 정상의 가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갈수록 (은근히) 인기가 올라갔다. 쿨과 코요태. 그들은 닮았다. 평범한 여자 멤버와 웃기는 남자 멤버의 조합도 비슷하다. 노래도 (각자의 스타일이 있지만) 닮았다. 전주만 들어도 그들의 노래인지 안다. 두번만 들으면 흥얼거릴 수 있다. 익숙한 멜로디를 강조한 한국적 댄스음악이다. 매번 같은 스타일을 반복해 ‘쿨 장르’와 ‘코요태류’를 완성했다. 그들의 ‘댄스’도 단순해서 누구나 따라하기 쉬웠다. 그들의 노래도 따라하기 쉬워 노래방에서 애창된다. 이제는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 ‘그때 그 친구들’이 생각난다. 꼭 그들의 팬이 아니어도 그렇다. 어느새 시간이 퇴적되면서 그들은 우리의 추억이 되었다. 그들은 신나는 노래와 익살맞은 입담으로 그렇게 통속성의 미학을 완성했다. 쿨은 떠났지만, 코요태는 남아 있다.

18번은 아닌데 손이 가는 이유

  그들의 음악은 ‘유행가스럽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멜로디에 익숙한 리듬을 얹는다. 댄스음악의 ‘이지 리스닝’이다. 한국의 댄스가수나 그룹은 대개 외국에 벤치마킹 대상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들은 누구의 모사품인지 찾기가 어렵다. 아주 ‘한국적’인 것이다. 모두들 흑인음악을 흉내내려 애쓰는 분위기에서 그들의 음악은 오히려 차별화됐다. 노래의 공식도 있다. 남성 랩으로 시작해 남성과 여성의 보컬이 번갈아 이어진다. 특히 코요태의 노래는 너무나 한국적이어서 ‘뽕 댄스’라고 불리기도 한다. 코요태의 히트곡은 리믹스를 하면 한곡처럼 들릴 정도다. 이에 비해 쿨의 노래는 좀더 다양하고 ‘아티스틱’하다. 하지만 쿨의 음반 수록곡이 다양해도 히트곡은 비슷하다. 그래도 팬들은 그들의 노래를 사랑한다. 이문혁 KMTV PD는 “10만원 주고 좋은 것을 살 수 있지만, 3만원짜리를 사서 쓰다가 잃어버려도 아깝지 않다는 심리가 있지 않느냐”며 “쿨과 코요태는 그런 키치적 소비의 전형”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키치적 소비’가 결코 비하의 의미는 아니다. 그는 “서태지를 들으면 서태지의 이미지를 자신이 가진다고 생각하는 면에서 일종의 과시적 소비”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쿨과 코요태의 팬을 자처하지는 않지만 혼자 방 안에 있을 때 MP3 플레이어에서 그들의 노래가 흘러나온다면 아무도 끄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래방에서도 마찬가지다. 대개 그들의 노래를 18번으로 여기지는 않지만, 막상 노래방에 가면 그들의 노래를 즐겨 부른다. 가끔 유리의 “하! 하!”와 김성수의 “와우~“는 대중의 정서를 한껏 대변하면서 대중의 내숭을 내리치는 야단처럼 들린다.
  그들은 자연산이다. 10대 아이돌 그룹보다 덜 기획됐기 때문에 더 자연스럽고, 더 장수했다. 이문혁 PD는 “야전에서 대처하면서 살아남은 그룹”이라고 말했다. 쿨의 여름 댄스그룹이라는 이미지도 데뷰 때부터 설정된 것이 아니라 1990년대 후반 <해변의 여인>이 빅히트를 기록하면서 만들어졌다. 90년대부터 브라운관을 장악한 연예오락 프로그램은 그들의 얼굴에 캐릭터를 새겨주었다. 그룹 안에서 존재가 희미하던 쿨의 김성수, 코요태의 김종민은 ‘어리벙벙하지만 익살스러운’ 캐릭터를 만들면서 비로소 존재감을 가지게 됐다. 여성 멤버인 코요태의 신지와 쿨의 유리는 이웃집 누나 같은 이미지에 솔직한 캐릭터까지 닮았다. 임진모 음악평론가는 “평균치의 미학”이라고 요약했다. 평균치의 미학은 이들을 ‘안티 없는 그룹’으로 만들었다. 이문혁 PD는 “보아를 싫어한다고 하면 뭔가 이유가 있어 보이지만, 코요태를 싫어한다고 하면 웃기는 일이 된다”고 말했다. ‘왜?’냐고 물으면 대답을 찾기 어려워 대화가 진행이 안 되기 때문이다. 부담감 없는 이들은 쇼 프로그램의 ‘멀티플레이어’였다. 이 PD는 “코요태와 쿨은 쇼의 오프닝이건, 중간이건, 엔딩이건 어디에 두어도 무난했다”고 말했다. 임진모 평론가는 “쿨은 90년대 대중문화의 캐릭터와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여름 댄스, 겨울 발라드 같은 콘셉트 음악의 공식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임 평론가는 “쿨과 코요태의 핵심은 쉬움과 재미”라며 “그들은 90년대 대중음악을 진지함에서 해방시킨 선두주자”라고 말했다. 예컨대 서태지가 대중을 가르치려는 면이 있었다면, 이들은 적극적으로 대중에게 맞추려고 했다. 그 결과 보기 드문 통속성이 완성됐다. 차우진 음악평론가는 “통속성은 일부러 만들어지기보다는 결과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쿨과 코요태는 통속성을 무기로 대중 속으로 스며들었다.

우유배달의 동반자, 헬쓰클럽의 일등공신

  그들은 자신의 세대와 함께 늙어갔다. 다음카페의 쿨 팬사이트인 ‘재훈사모’의 운영자 김푸른(23)씨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쿨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고등학생일 때는 팬카페를 만들었고,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인 요즘에는 쿨의 해체를 맞이했다. ‘재훈사모’의 회원들은 쿨과 함께 나이 들어온 20대 중·후반부터 30대 초·중반까지의 회원이 많다. 쿨의 팬이 아니어도 쿨의 추억은 많다. 한승조(31)씨는 대학 시절 학비를 벌기 위해 우유배달을 했다. 그의 새벽길을 응원했던 노래는 쿨의 <운명>이었다. 한씨는 “쿨의 노래는 슬픈 가사에 즐거운 노래와 즐거운 표정이 뒤섞여서 단순히 댄스음악을 넘어서는 독특한 정서를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쿨은 ‘딴스홀’의 강자이기도 했다. 박철(33)씨는 쿨 하면 20대의 클럽을 떠올린다. 그가 클럽에 자주 드나들던 1990년대 중·후반, 쿨의 노래는 클럽 음악의 단골 메뉴였다. 그는 “전주가 나오고 김성수가 ‘와~ 여름이다!’ 하면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고, 쿨의 안무를 그대로 따라하는 군무를 추었다”며 “대부분 남들 춤추는 옆에서 물구경만 하던 나도 쿨의 노래가 나오면 몸을 흔들곤 했다”고 말했다. 군인이 쿨을 외면할 리 없다. 허아무개(30)씨는 1997년 해변의 여인, ‘유리’였다. 그는 “군대에서 <해변의 여인>에 맞춰 쿨을 따라하는 공연을 했는데 몸집 있는 사람이 여장을 하는 것이 더 엽기적일 것이라는 고참의 명령으로 나는 유리가 되었다”고 돌이켰다. 20대 여성인 손아무개(25)씨는 쿨의 팬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그래도 쿨 노래는 많아요”라며 자기 컴퓨터의 MP3 파일을 보여주었다. 그는 쿨의 특징을 줄줄이 읊었다. 첫째, “다른 일을 하면서도 들을 수 있는 음악이다”, 둘째 “튀지 않지만 항상 평균은 한다”. 셋째 “들을 때는 발라드가 낫지만, 볼 때는 댄스를 안 하면 왠지 어색하다”. 그렇게 쿨은 (특히 1990년대 사춘기와 청년기를 보낸 세대에게) 시대의 배경음악 같은 존재가 됐다.
  코요태도 자신만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다음의 ‘신지 팬카페’ 운영자인 이선숙(26)씨는 1998년 코요태 1집이 나올 때 스무살 무렵이었다. 회사 기숙사에 살던 이씨는 기숙사 복도를 걷다가 우연히 노래를 들었다. 음악이 너무 좋아 음악실로 달려가 누구의 노래인지 물었다. 그리고 코요태의 팬이 됐다. 코요태 역시 팬이 아니어도 코요태 음악은 안다. 거리를 걸으며, 카페에 앉아서, 헬스클럽에서 뛰며 코요태의 노래를 들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코요태는 헬스클럽의 지존이다. 대한민국의 뱃살을 빼는 데 일등공신이다. 댄스학원 강사 이아무개씨는 “코요태의 노래는 4박자여서 안무를 짜기에 안성맞춤”이라며 “코요태의 노래에 맞춘 안무는 다음 시즌에 나온 코요태의 노래에 그대로 대입되기도 할 만큼 사랑을 받는다”고 말했다. 코요태의 공간은 동네 헬스클럽, 동대문 쇼핑몰 같은 서민적인 공간이다. 유행가가 서민의 애환을 달래주는 기능을 본질로 한다면, 코요태의 노래는 유행가 본질에 근접한다. 나아가 코요태의 음악 자체가 ‘동대문 쇼핑몰’ 같은 느낌이다.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편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쿨의 해체… 잘가라 90년대!

  쿨과 코요태가 갈수록 ‘창대’해진 이유는 대중음악 환경의 변화와 관련 있다. 쿨이 골든디스크 대상을 수상했던 2002년은 대중음악의 위기가 시작되던 시점이었다. 서태지의 신화도 힘을 잃고, H.O.T 열풍도 잦아들 때였다. 당시 10대를 타깃으로 하던 10대 아이돌 스타들이 한계에 부딪혔다. 게다가 인터넷 음악 다운로드가 늘어나면서 음반 판매도 가파르게 줄었다. 대중문화의 소비 주체로서 10대의 힘이 약해지던 시절에 쿨은 역설적으로 전성기를 맞았다. 코요태의 인기도 상승곡선을 그었다. 그들의 팬층이 10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성인 댄스음악’으로 불릴 만한 그들의 음악은 1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호응을 받았다. 그래서 10대 기반의 그룹들은 위기를 겪었지만, 쿨과 코요태는 굳건하게 자리를 지켰다. 그러다 보니 쿨은 2002년 마침내 가요계 정상에 올랐다. 이문혁 KMTV PD는 “시장의 파도가 왔다갔다 했을 뿐 쿨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며 “파도의 흐름에 따라 제자리에 있던 쿨이 1위도 하고 10위도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대중음악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쿨이나 코요태 같은 그룹이 다시 나타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쿨과 코요태의 시장은 10대 아이돌 스타의 시장보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문혁 PD는 “서태지가 150만장을 파는 시대에 쿨이 60만장을 팔기는 어렵지 않을 수 있다”며 “최고의 판매고를 기록하는 빅마마가 겨우 30만장을 파는 요즘에는 쿨이나 코요태 같은 그룹이 나오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제작자들은 확실한 투자를 원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시장에 투자하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쿨의 ‘희소성’은 팬들도 느끼고 있다. ‘재훈사모’의 ‘룰루리랄라’(아이디)는 “저는 압니다. 세상에서 가장 나오기 힘든 그룹이 쿨이란 걸요. 결코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고, 멀리 있지도 가까이 있지도 않기에 중독이 심한 게 아닐까요?”라고 썼다.
  통속성은 당대에 힘이 세지만 후대에 힘이 약하다. 이영미 음악평론가는 “신화가, 작가가 아니어도 대중의 가슴에 남는 가수들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그들은 잠시 기억되지만 결국 잊혀진다”고 덧붙였다. 그들의 열성 팬들에게는 오래 기억되겠지만, 대중에게는 결국에는 잊혀질 운명이기 때문에 더욱 애틋한지도 모른다. 더구나 쿨은 1990년대의 풍요로운 대중음악 토양이 낳은 결과물로 보인다. 쿨이 데뷔한 90년대 중반은 한국 대중문화가 꽃피기 시작한 시절이었다. 쿨의 해체와 함께 우리는 비로소 90년대와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고 있다. 잘 가라, 90년대!


2005년08월17일, 한겨레21 제5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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