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폴란드 방문 도중 유럽의 뉴스 전문채널인 ‘유로 뉴스’(Euro News)와 가진 회견에서 이른바 남측 지원금의 ‘핵무장 이용 의혹’을 제기하는가 하면 북한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 중 하나’라고 지목했다.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할 대통령의 발언이라고 보기에는 믿기 힘들 정도로 부적절하고 무책임한 내용이다.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다. 현 정부가 내세워온 ‘상생’과 ‘공영’ 다짐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통령 발언의 근본적 문제는 이 대통령이 여전히 냉전적 의식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은 회견에서 북한과의 대화를 강조했지만 철저하게 대립적 시각에서 북한을 비판했다. 마치 북한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겉으로만 북한에 대화를 촉구하는 듯하다. 그런 식이라면 결과는 뻔하지 않겠는가.

현실적 문제는 이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지 못하고 오히려 북한에 대한 비난과 대북 압박에만 골몰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당장 남북 관계가 더욱 악화될 것은 필연적이다. 또 이 대통령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국제공조에서 우리의 위상이 약화되는 것은 불문가지다. 우리 스스로 국제사회의 일원인 점만 강조하는데 누가 당사자로서의 발언권을 인정하겠는가. 국제공조의 그늘에 숨어서 대북 압박과 전 정권 비난에 열을 올리는 이 대통령에게서 목표나 전략 없이 밀어붙이기만 하는 불도저의 모습을 본다.

이 대통령이 진정으로 북한과의 ‘상생’과 ‘공영’을 원한다면 먼저 냉전 의식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대통령이 냉전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남북 대화와 한반도 평화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대통령은 우리의 국익을 최대화할 수 있도록 전략적으로 한반도 문제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설령 하고 싶은 말이 있더라도 참아야 할 때는 참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상생, 공영 다짐은 공염불일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에게 재임기간 내내 한반도에 위기국면이 지속되길 바라는지 묻고 싶다.


2009-07-09,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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