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일 오전 황희철 1차장검사가 서울중앙지검 브리핑룸에서 두산그룹 비리 의혹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05 오마이뉴스 남소연
▲ 지난 10월 20일 오전 비자금 조성 혐의를 받고 있는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이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출두,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박 회장은 결국 불구속 기소됐다.  
ⓒ2005 오마이뉴스 남소연

  상당히 많다. 우선 열거부터 하자.
▲본인이 죄를 시인하고 깊이 반성하면서 수사에 협조했다 ▲선처를 호소하는 각계의 탄원이 많았다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으로 스포츠 외교를 담당해와 구속하면 국익에 심대한 손상이 온다 ▲죄질이 가장 무거운 박용성 전 회장을 불구속하면서 다른 형제를 구속하기 어렵다 등등.
  검찰이 두산그룹 비리사건에 연루된 총수 일가 4명을 불구속하면서 내세운 사유들이다. 이런 사유들 앞에서 범죄 혐의는 뒷전에 밀렸다. 두산 총수 일가가 10년 넘게 회계부정을 일삼으면서 비자금을 조성한 '불법행위의 지속성', 그리고 그 비자금을 주식인수대금 이자를 대신 내는 데 쓰거나 총수 일가 생활비로 쓴 '파렴치성' 등은 부차화 됐다.
  그래도 좋다. 검찰이 이참에 '불구속 원칙'을 확립하고자 한 것이라면 다시 볼 여지도 있다. 그런 차원에서 시선을 잠시 '과거'와 '미래'로 돌려 검찰의 입장을 다시 묻자. 뭐라고 하는지….

1. 죄질

  두산그룹 총수 일가에게 적용된 혐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및 횡령이다. 횡령 및 손실 액수가 50억 원 이상일 때 적용되는 죄로, 법정 최고형이 무기징역으로 집행유예 대상이 되기도 힘든 중죄다.
  하지만 한 달 전에는 법정최고형이 징역 7년인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죄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강정구 교수를 한사코 구속하려 했다. 수사팀이 구속영장을 신청해도 법원에 의해 기각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까지 했고,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한사코 구속을 고집했다. 이때 검찰이 든 구속 사유는 '죄질'이었다.
  죄질을 재는 일차적인 잣대는 법에 명시된 '법정 최고형'이다. 특경가법상 횡령 및 배임죄와 국보법상 찬양고무죄의 법정 최고형은 현저히 차이가 난다. 그런데도 검찰은 거꾸로 갔다. 죄질이 무거운 피의자는 불구속, 상대적으로 가벼운 피의자에 대해서는 구속을 고집했다.
  이건 '과거' 사례고, '미래' 사례도 있다.
  이건희 삼성 회장과 홍석현 전 주미대사는 현재 미국에서 장기체류하고 있다. 말이 좋아 해외체류지 사실상 해외 도피에 가까운 그들의 행적엔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를 자아내게 할 요소가 다분하다.
  게다가 이건희 회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수백억 원의 정치자금을 전달한 데 이어 안기부 'X파일'에 의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등에게 다시 정치자금을 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홍석현 전 대사도 보광그룹 탈세에 이어 또 다시 '돈' 문제에 얽혔다.
  검찰이 강정구 교수 구속을 고집하면서 '죄질'을 내세웠던 이유는 강정구 교수가 찬양고무죄를 두 번 어긴 재범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이유라면 이건희 회장과 홍석현 전 대사도 강정구 교수에 못잖다.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던 강정구 교수를 한사코 구속하려 한 검찰이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도 있고 재범인 것으로 알려진 이건희 회장과 홍석현 전 대사를 어떻게 처리할 건가?

2. 탄원

  검찰은 두산그룹 총수 일가에 대한 각계의 탄원이 많아 정상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탄원서를 낸 '각계'가 어디인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아마도 재계가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강정구 교수 파동 때도 구속하면 안된다는 요구가 적지 않았다. 재계와 같이 특정집단에 한정된 요구가 아니라 각계각층의 요구였다. 강정구 교수의 주장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사상과 양심,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서는 안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검찰은 이런 '각계'의 요구에 귀를 열지 않았다. 그뿐인가. 법무장관의 법적인 권한 행사에 '맞장'을 뜨려고까지 했다.
  따져보자.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특정 집단의 탄원 요구는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각계각층의 헌법적 요구, 더 나아가 법무장관의 법적 권한 행사에는 벽부터 치고 보는 검찰의 행태를 이해할 국민이 얼마나 있을까?
  참고사항이 하나 더 있다. 대법원은 민주노동당의 조승수 의원의 직을 박탈해버렸다. 총선 선거운동기간 직전 음식물 쓰레기장 처리문제를 주민들 앞에서 얘기했다는 이유로 법정에 선 그에게 당선무효형을 확정했다.
  조승수 의원이 대법원까지 이르렀을 때 '각계'의 탄원이 쏟아졌다. 돈을 뿌리고 사조직을 가동한 다른 선거사범에 비하면 조승수 의원의 죄는 경미한 것에 불과하고 그가 누구보다도 모범적으로 의정활동을 했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이 탄원 대열에는 민주노동당과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정당, 특히 한나라당 의원들도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당선무효형을 선고했다. 법은 법이라고 했다.

3. 국익

  검찰은 스포츠 외교를 담당한 사람을 구속하면 국익에 심대한 손상이 온다고 했다. 일개 IOC 위원이 아니라 부위원장까지 지낸 김운용씨를 구속한 사례에 비춰 모순된다는 얘기는 접어두자. 이건희 회장도 IOC 위원이고 홍석현 전 대사는 전문 외교관으로 활동했다는 사실도 접어두자.
  두산그룹 총수 일가는 십수 년 동안 수천억 원대의 분식회계를 하고 이를 통해 수백억 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했다. 그 한가운데에 박용성 전 회장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대한민국 경제5단체 중 하나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감 놔라 대추 놔라 해오던 사람이다.
  이제 치부가 밝혀졌다. 그럼 한국 기업, 한국 경제의 대외 신인도는 어떻게 될까? 어차피 쏟아진 물이라면 깨끗이 훔쳐내기라도 해야 할 텐데 검찰은 그렇지가 않다. 그럼 한국기업과 경제의 불투명성을 집요하게 문제 삼아온 외국 투자자들의 시선은 어떻게 될 것이며, 그것이 국익에 미치는 영향은 뭘까?

4. 정치

  참여연대는 두산그룹 총수일가 불구속 처리 소식에 접하곤 이런 논평을 내놨다. "정치적 판단이며 재벌봐주기의 대표적 사례다."
  그렇다. 아무리 둘러봐도 과거와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검찰의 행적에서 일관성을 찾을 수가 없다. 말 그대로 "그때그때 달라요"다.
  검찰의 행적에서 유일하게 꺼낼 수 있는 일관성은 '정치'다. 사안에 따라, 피의자에 따라 이리 재고 저리 재는 '정치적 판단'만이 크게 다가올 뿐이다.
  그래서 또 '과거'가 떠오른다. 강정구 교수 파동이 불거졌을 때 검찰총장 이하 평검사까지 합창을 했던 건 '정치적 독립'이었다. 검찰의 이런 주장은 이제 와서 확연해졌다. 그들이 주장한 '정치적 독립'은 기실 '정치적 판단의 자유'에 불과했다는 것, 바로 이것이다.  


2005-11-10 10:37
ⓒ 2005 OhmyNews
김종배(kjbyy)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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