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는 이제 막 산업화의 궤도에 올라서기 시작했다. 영화는 상품으로 생산되고 유통된다. 그런데 현대 영화산업의 핵심 고리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제작 부문이 아니라 이를 일반 관객과 만나게 하는 유통, 배급 부문에 있다. 제작이 관객과 만날 기회를 스스로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유통이 개개 작품을 관객과 만나게 한다는 것이다. 곧, 유통이 제작과 인력을 끊임없이 재편하는 구조다. 스크린쿼터제는 바로 이 점에서 창작자들에게 희망을 준다. 영화 상영의 기회를 얻는다는 것은 투자의 회수, 즉 관객으로부터의 피드백을 가능케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그 지점에 이르러 우리 영화를 산업이라고 명명하게 되는 것이다.
어제 재정경제부의 축소 방침 발표에 이어 오늘, 문화관광부는 소위 대책이라는 것을 발표했다. 향후 5년 동안 4천억원을 영화산업에 투여하겠단다. 투자 환경을 개선하고, 산업내 수익 분배 구조를 개선하겠단다. 신나는 일이다. 그런데 정말 이런 것들이 스크린쿼터 축소의 대책이 될 수 있는지, 관계자들의 얼굴을 직접 보면서 묻고 싶다.

  유통을, 상영 기회를, 관객과의 소통 기회를 박탈당하면서 우수 인력을 양성하고 제작자본을 풍성하게 만든들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세계 배급망은 할리우드의 몇몇 배급사가 장악하고 있다. 이들이 세계 영화시장 85%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어쩌다 된 요행이 아니다. 이들은 엄청난 물량과 자본으로 한국 영화시장을, 자신들이 곧 법이었던 1990년대 초중반으로 회귀시킬 것이다. 미국 영화업계의 횡포가 재연될 것이다. 극장에서 관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우리 영화를, 할리우드 영화 여러편을 묶어서 한꺼번에 배급하는 소위 블록부킹을 앞세워 종영하라고 협박할 것이다. 앞으로 자신들의 흥행성 높은 블록버스터 영화를 안 주겠다는 협박에 저항할 극장이 있겠는가. 당시엔 극장에서 거짓으로 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를 신고했지만 이제 반으로 줄어드니 훨씬 편하게 미국 영화업계의 말을 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돈을 풀었으니 영화는 제작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우리 영화들은 어디로 가는가. 영락없이 뒷골목을 떠도는 유령 신세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비디오시장을 전전하는 서자 신세다.

  우리 영화가 국내 시장 점유율 50%선을 넘어섰기 때문에 이제 스크린쿼터는 축소해도 된다고 한국의 관료들은 말한다. 그렇다면 스크린쿼터는 40%이고, 우리 영화는 50%를 넘어섰는데도 왜 미국 할리우드는 그토록 스크린쿼터를 축소 못해서 안달인가. 여기에 답이 있다. 아무리 제작을 해도 유통되지 못하면 그 상품과, 그 상품을 생산하는 산업은 그날로 끝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의 관료는 공히 이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관료는 아는 대로 행동하는데, 한국 관료는 알고도 행동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한국 관료의 입에서는 거짓말만 나온다.

  도대체 국익의 정체가 뭔가. 정녕 묻고 싶다.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떠오른 영상산업을 포기하는 게 국익인가? 그들은 신자유주의 아래서라면 우리 스스로의 문화 축적과 체험을 통한 우리의 정체성 확인도, 정신적 풍요도 모두 돈으로 살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2006-01-27, 한겨레신문
정지영/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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