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설훈 전 의원... 15·16대 국회서 '사학법 개정'에 앞장

  처는 이사, 아들은 학장, 딸·조카·며느리는 교수. 우리나라 사학법인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단란한 '가족경영'의 한 단면이다. 사립대의 이사 또는 교직원으로 근무하는 친인척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설립자의 배우자이거나 자녀다.
  이는 2002년 16대 국회 교육위원이었던 설훈 전 민주당 의원이 조사한 '이사장·설립자의 친인척 근무현황'에서 증명된 사실이다. 이런 사학의 족벌체제는 지금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2001년 6월 20일 16대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은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놓고 1시간 가량 옥신각신하다 정회했다. 법 개정안을 회부한 지 2개월이 지났는데도 교육위에 상정조차 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정회에 이른 결정적인 이유는 설훈 의원의 다음과 같은 한마디 때문이었다. "솔직히 이 자리에 있는 교육위원들 모두가 사립학교쪽으로부터 로비를 받고 있지 않느냐." 동업자 비판 금지라는 금기를 깬 것이다.
  비록 지금은 원외에 있지만, 사학법 개정에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매달렸던 이가 설훈 전 의원이다. 그는 이례적으로 지난 15대와 16대 8년 동안 국회 교육위원회에 적을 두고 있었다. 당시 교육위는 재경위나 건교위·국방위 등 '노른자위' 상임위와는 달리 '1순위 미달' 상임위였다.

"학교를 폐쇄할 사학법인은 한 곳도 없을 것"

  설 전 의원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사학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에 대해 "환영할만한 일"이라면서도 "17대 국회 초반에 했어야 할 일"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사학법 개정 이후 국회의장실을 점거하고, 거리투쟁에 나선 한나라당에 대해 "박근혜 대표가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다"며 "국민들은 '한나라당이 완전히 비리옹호당이구나' 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사학법인쪽에서 '학교 폐쇄' 운운하는 것에 대해 그는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려는 것일뿐 정작 학교를 폐쇄할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며 "만약 사학법인에서 그런 행동을 보이면 이사 승인취소와 임시이사 파견 등의 조처를 하면 된다"고 반박했다.
  '건전사학에 대한 탄압'이라는 사학법인쪽의 주장에 대해서도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에서조차 투명성 확보를 위해 사외이사를 두는데, 그보다 10배, 100배 투명해야 하고 도덕성이 생명인 학교가 개방형 이사를 못 받아들인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그렇게 한다고 무슨 건학이념에 차질을 빚느냐"고 꼬집었다.
  지난 12일 오후 설 전 의원을 서울 마포의 한 사무실에서 만나 '사학법 개정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설 전 의원과의 일문일답.

- 사학법 개정안이 우여곡절 끝에 통과됐다. 감회가 남 다를 텐데.
  "늦은 감이 있다. 17대뿐만 아니라 16대 때부터 개정하자고 했었는데. 16대 때에는 한나라당이 숫적으로 절대 우위여서 상정조차 못했다. 그러나 당시 국민의 70% 이상이 사학법 개정안에 찬성했다. 17대 총선에서 과반을 점한 열린우리당이 사학법 개정안을 4대 개혁입법이라며 추진했다. 그게 전략적인 잘못이었다.
  4대 개혁입법 가운데 국민의 찬성 여론이 가장 높은 게 사학법 개정안이었다. 별도로 분리해서 처리했다면 이렇게까지 (한나라당의) 저항도 안 받고 모양새를 갖추며 사학법을 개정할 수 있었을텐데. 그랬더라면 나머지 개혁입법도 탄력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질질 끌다가 막판에 와서 수정하고 수정했다."
  지난 9일 사학법 개정안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 전 사학법은 지난 1990년 3당 야합으로 탄생한 민자당의 첫 작품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후 1999년 개정되기는커녕 '임시이사의 2년 임기조항'까지 삽입돼 '개악 사학법'의 틀을 완성했다. 이런 탓에 이번 사학법 개정은 길게는 15년, 짧게는 6년 만에 제 자리를 찾은 셈이다.

"재산 불리기 차원에서 설립된 사학도 적지 않다"

- 1990년 사학법이 개악될 때 당시 국회 교육위원장이 김원기 현 국회의장이었다. 당시 김 의장은 "개정안에는 반대하지만, 상임위원장이라는 직책상 사회를 거부할 수는 없다"며 통과시켰다. 15년 후인 2005년 김 의장은 직권상정으로 사학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묘한 인연이다.
"(웃으며) 그나마 다행이지요."
  - 1999년 사학법이 다시한번 '개악'될 때 당시 국회 교육위원회에 노무현 대통령과 이해찬 국무총리가 소속돼 있었다고 하는데.
"이해찬 의원은 당시 교육부 장관이었다. 노 대통령은 교육위에 있었던 게 6개월 정도였다. 당시 이미 당 중진이었기 때문에 상임위에 제대로 참석하지 못했다. 그래서 당시 상황에 대해서는 잘 모를 것이다."

- 지난 9일 사학법 개정안이 통과된 뒤, 한나라당 의원 20여 명이 국회의장실을 점거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내일(13일)은 거리투쟁에 나서겠다고 한다.
  "백보 양보해 국가보안법을 갖고 한나라당이 저렇게 한다면 그럴 수 있겠다고 이해하겠다. 그런데 국민들 대다수가 찬성하는 사학법 개정안을 놓고 저렇게 하면 국민들이 보기에는 '쟤네들, 완전히 비리 옹호당이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표 떨어지는 짓이다. (한나라당의 정당 지지도가) 40%까지 올라갔다고 하는데, 저렇게 하면 곧 떨어진다."

- 그렇다면 한나라당이 왜 무리수를 둔다고 보는가.
  "일단 박근혜 대표가 판단을 잘못해서 나가니까 (다른 의원들이) 따라가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또 하나는 사학과 연관된 이해관계도 있을 것이다. 사학의 로비를 받았을 수도 있고. 정상적인 판단을 한다면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사학의 상황을 안다면 어떻게 저럴 수 있느냐. 당연히 앞장서서 고치자고 해야 맞지.

  학교 운영을 잘 하는 학교는 상관없다. 문제가 있는 학교가 (사학법 개정안에) 저항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는 사학이 많다는 게 문제였다. 초등부터 대학까지 1만 여 곳이 된다. 대학이 약 400곳 가량. 전문대의 90% 가량이 사학이다. 70년대 좋은 건학이념으로 사학을 세운 이도 있지만, 재산불리기의 수단으로 세운 곳도 적지 않다. 그런 학교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내 돈을 투자해 내 학교를 만들었는데'라고 생각한다.
  육영 차원에서 학교를 만든 사람은 (사학법 개정안에 대해) '그래 그렇게 하자'며 그러고 넘어간다. 내 재산을 내 맘대로 하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냐고 하는 사람들은 대개 70년대 개발투자 붐이 불면서 학교에 투자했던 이들이다. 어쨌든 지금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저렇게 반발하지만, 곧 수그러들 것이다."

- 사학법인쪽에서는 '사학법 개정안'에 반발하며 '학교 폐쇄'를 들먹이는데.
  "폐교 조처를 한다고? 말도 안된다. 누가 폐교 조처를 한다는 거냐. 그럴 권한이 누구에게 있느냐. 법인에게 그럴 권한이 없다. (만약 사학법인쪽에서 그렇게 한다면) 당장 교육법 위반으로 이사 승인을 취소할 수 있다. 학교 폐쇄는 법에도 없는 얘기고, 말도 안된다.
  일방적으로 학교 문을 닫을 수도 없고, 문을 닫는다고 해도 사전에 교육부 장관이나 시도 교육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폐교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이유와 논리로 누가 학교 폐쇄를 승인하겠느냐. 그냥 폐교를 강행한다면 이사장이나 이사들의 취임 승인 취소를 하고, 법대로 임시이사를 파견하면 된다. 학교 폐쇄? 그거 실제로 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건 사기다."

"기업보다 더 투명해야 할 사학이 왜 개방형 이사제를 반대하나"

- '개방형 이사제' 등을 뼈대로 하는 사학법 개정안은 건전 사학에 대한 족쇄 내지 탄압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불편함은 우리가 감내해야 한다. 세상 일은 내가 아무리 투명하게 한다고 해도 나 혼자서 투명하게 하지는 못한다. 나를 지켜보고 감시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더 완벽한 투명성이 보장되는 것이다. 물론 나를 감시하거나 지켜보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불편하다. 그러나 그런 불편함은 감수해야 한다. 그게 우리가 사회를 살아가는 방법이다.
  지금 주식회사도 사외이사가 있지 않나. 그거 왜 있나. 투명성을 위한 것이다. 주식회사는 돈 버는 게 목적이다. 학교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목적이다. 주식회사보다 10배, 100배 더 투명해야 한다. 학교는 도덕성이 생명 아닌가. 그런데 개방형 이사제를 도입하지 못하게 한다는 게 말이 되나. 그걸 수용하면 건학이념에 무슨 차질이 생기나. 더 튼튼한 건학이념을 지키는 장치가 되는 것이다."

- 사학법 개정안이 '사학을 전교조에 통째로 넘기는 것'이라는 한나라당과 사학재단쪽의 주장에 대해서.
  "전교조 안이 됐건, 한교총 안이 됐건 누구 안이 됐건 간에 그게 옳은 거라면 따라가야지. 전교조 안이라고 해도 옳으면 따라가는 거고, 옳지 않으면 따라가지 않는 거다. 한나라당은 (사학법 개정안 때문에) 반미·친북 세력이 장악할 것이고, 반미·친북교육을 할 것이라고 하는데, 학교 투명성과 반미·친북과 무슨 상관이 있나. 붙일 게 없어서 그렇게 갖다 붙이나. 박근혜 대표가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학법 개정안은 부패 조건을 막는 안전장치다. 그런 소금 역할을 왜 못하게 막느냐."

- 개방형 이사제가 도입되면, 외부 이사들이 책임은 지지 않고 사사건건 학교 운영에 트집만 잡을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사회는 과반수 찬성이면 처리가 된다. 개방형 이사는 1/4에 불과해 의결권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내가 보기에는 그 보다는 사학법인 이사장의 친인척이 이사회에 1/4 이상 될 수 없다는 조항이 그들에게는 불편할 것이다. 또한 친인척이 교장을 맡지 못하도록 한 것이나 감사를 이사회에 포함시킨 것 등이 불만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에 반대할 명분이 없으니까 친북·반미 이데올로기 공세를 펴는 것이다. 국민들이 보기에는 너무 상식적인 얘기인데, 박 대표와 한나라당이 바보같은 짓을 하고 있다."

- 사학법인쪽에서는 사학법 개정안이 위헌이어서 헌법소원을 내겠다는 주장도 펴는데.
  "말도 안된다. 법인은 인격체이기 때문에 사유재산이 아니다."

- '내 돈으로 만든 학교인데, 왜 인사·재정권까지 박탈하려고 하느냐'는 주장도 공공연하게 나온다.
  "인사·재정권을 어떻게 박탈한다는 거냐. 인사·재정권을 행사하되, 투명하고 당당하게 하라는 것이다. 그걸 왜 인사·재정권 박탈이라고 표현하나. 그건 억지다. 부정 방지책을 막으려는 의도다. 교사를 충원할 때 공개 채용하게 하는 건 사학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이전처럼 이사장이 적당한 사람을 데려오는 것보다 공개 채용을 하면 훨씬 실력있는 교사를 뽑을 수 있다. 투명하고 당당하게 하라는 것이다. 그게 사학법 개정안의 기본 취지다.
  지금까지는 음습한데서 적당하게 하던 것을 못하게 하니까 반발하는 것이다. 이제 사학을 경영하는 사람들이 인식을 바꿔야 한다. 돈이 아니라 명예를 얻으려고 생각해야 한다. 사학법 개정안이 통과됨에 따라, 앞으로는 재단 이사장들이 명예롭게 학교를 운영하는 길이 열린 것이다. 사회적으로 명예를 세울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사학법이 그 길을 만들어준 것이다. 앞으로 학교를 통해 돈 벌고 전횡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사학을 해서는 안된다."

- 친인척을 교장에 취임하지 못하도록 막은 것은, 그들을 비리 혐의자로 예단한 역차별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논리적으로는 가능한 이야기다. 그러나 (재단 이사장의 친인척이 교장인 학교) 10곳 가운데 7~8곳에는 문제가 있었다. 그런 구조라면 그들이 다른 일을 하게 하는 게 맑은 구조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걸로 봐야 한다."
  사학법인들을 회원으로 하는 한국사립학교법인연합회가 제정한 '사학윤리강령'에는 "사학을 위하여 제공된 재산은 국가사회에 바쳐진 공공재산이다. 어떤한 경우에도 사유물 같이 다뤄져서는 안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사학법 개정안은 이같은 사학윤리강령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학법인들이 사학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건 자기 정체성에 대한 부인이다. 언행불일치. 우리교육의 슬픈 자화상이다.  


이한기(hanki) 기자    
2005-12-14 10:01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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