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농 등 한국 원정시위대 1500여명이 지난해 12월 17일 오후 내내 홍콩 시내 곳곳에서 경찰과 충돌,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들 중 900여명은 18일 오전 3시 5분부터 홍콩 경찰에 의해 전원 연행됐다.  
ⓒ 연합뉴스 정주호
▲ 지난 5월 26일 저녁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아드보카트 감독을 비롯한 코치진과 선수들이 참석한 가운데 독일월드컵 출정식이 열렸다. 관중들이 월드컵 성공을 기원하며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고태진 칼럼] 지나친 나라 걱정을 걱정하며

며칠 전 어느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있을 때다. 바로 옆 테이블에서 중년 부부 몇 쌍이 식사 모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한 남성이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이 들려왔다.

"주 5일제 이거 문제가 많아. 나도 근로자지만 말이야 우리나라는 아직 주 5일제 하면 안 된다고. 이러다 나라 경제가 어떻게 되려는지 모르겠어."

주변에서 "그러게 말이야"하며 장단을 맞추는 소리도 들려온다.

나는 주 5일제의 혜택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나의 선망의 대상인 주 5일제를 저리도 달가워하지 않는다니 참 이상한 일이다. 정말 주 5일제 근무를 마다할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나라 경제 생각하는 그 마음가짐이 정말 가상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나라 걱정이 때로는 이해되지 않는 방향으로 표출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자면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증세의 방편으로 정부에서 법인세를 인상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할 경우, 자신은 소득이 적어 세금 한 푼 내지 않으면서도 기업의 투자 축소로 경제가 어려워진다고 비판하는 경우다. 분명 증세로 자신이 복지 혜택을 받는 경우에도 그러하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없는 나라 걱정인 셈이다.

그런데 거창하게 나라 걱정하는 사람들이 결국은 나라를 이상한 꼴로 만드는 경우를 많이 봐와서인지 이 '지나친 나라 걱정'이 도리어 걱정이 된다. 박정희나 전두환 등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인들은 국가의 안위와 경제 발전을 내세웠다. 박정희는 '유신'을 해야 우리나라가 발전한다면서 종신독재를 꿈꿨고, 전두환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정권을 잡았다. 독재정권과 싸워왔던 김영삼도 3당 합당을 통해 군부독재세력과 손을 잡으면서 '구국의 결단'이라는 말을 했다.

국익은 혹시 일종의 신기루나 환상, 마약이 아닐까?

훌륭한 통계학자는 머리에는 뜨거운 오븐을 뒤집어쓰고 발은 얼음물에 담그고서도 "음 평균 온도가 아주 적당해, 아주 좋아"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서민들이 아무리 나라 걱정 해봐야 정작 자신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게 아니다. 걸핏하면 정부나 재벌, 언론이 추앙하는 그 국익이라는 과실은 항상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이 먼저 따먹게 되어 있다. 국익이라는 것은 일종의 신기루나 환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황우석의 경우를 보자면 어떤 면에서는 마약의 구실을 하는 것이 아닐까?

예를 들어 우리의 국익을 위해 반드시 추진되어야 한다는 한미FTA는 대기업이나 대자본에겐 새로운 기회와 이익을 안겨줄 수도 있겠지만, 대다수 노동자나 농민 등에게는 신자유주의의 고통을 안겨줄 가능성이 많다. 우리는 이미 한 차례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양극화의 심화를 가져다 준 '글로벌 스탠더드'의 참혹한 결과를 보았다. 한미FTA가 설혹 전체 국익의 계량적 증가를 가져다준다고 한들 대다수 서민들이 그 국익의 혜택을 볼 수 있을지는 상당히 의문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국익이라는 깃발을 휘두르며 한·미 FTA 협정 타결을 위해 폭주하고 있다.

정부나 국방부는 평택의 주한미군 기지 이전도 우리 국익을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데 도대체 그 '뜬구름 잡는 국익'이 뭔지 혹시 자세히 아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미국의 필요에 의한 이전에 드는 비용을 우리가 거의 부담해야 하고 기존의 미군기지의 환경정화 비용까지 떠맡게 됨으로써 우리 국민들의 혈세를 쏟아 넣게 생겼다. 평택 미군기지 때문에 당장 자신의 땅에서 내몰리는 우리 국민들은 또 어떠한가?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소수의 국민에게라도 가해지는 억압이 과연 정당한가? 우리 국민 누구나 그 '소수'가 될 수 있다.

5월 31일에 있었던 지방선거는 '지나친 나라 걱정'의 절정이라 할 만했다. 박근혜 대표를 걱정하는 마음이 자신이 사는 지역의 행정을 맡을 인물을 뽑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지역의 행정을 감시하고 지역의 현안을 심의할 구의원, 군의원을 뽑는 일이 정권 심판과 어떤 연관이 있단 말인가? 나라 걱정이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

나라 걱정보다 자기 위치와 역할 제대로 인식할 때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국가가 무엇을 해줄 것인지를 묻지 말고 자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생각하라고 했다. 하지만 오늘 우리 사회에서는 거창하게 나라 걱정을 할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자신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 절실하다. 농민으로서의 자각, 노동자로서의 자신의 인식, 무엇보다 이 땅의 주인으로서의 주인 의식이 가장 필요하다.

국익을 위해서라는 휘황한 거대 담론에 현혹되지 않고 농민으로서, 노동자로서, 이 땅의 주인으로서 한·미 FTA 협정이 과연 나와 내 가족의 생존과 생활에 미칠 영향이 무엇인지를 따져보고 비판해야 한다. 우리 땅에 주둔하는 주한 미군이 정말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미국의 세계 군사 전략에 돈 대주고 들러리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를 냉철히 판단해 보아야 한다.

제발 나라 걱정 좀 작작하자. 진정으로 나라가 잘 되기를 바란다면 자신의 현실을 제대로 자각하고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 된다. 자신의 입장에서 한·미 FTA를 반대해야 할 사람은 적극적으로 반대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정부의 협상력이 높아지고 그것이 국익에 부합하는 길이며, 마찬가지로 미군 기지이전도 자신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면 저지 운동에 나서야 한다.

모든 국민의 이해관계가 잘 버무려지고 조정되어야 나라의 이익도 제대로 실현된다. 그런 면에서 미국까지 건너가 활동 중인 한·미 FTA 원정 시위대와 자신의 땅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평택 대추리 주민들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월드컵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도 마찬가지다.

월드컵을 맞아 온 언론과 기업은 '월드컵 광풍'을 만들어 내고 있다. 설령 월드컵에서 우리가 우승한다해도 살기 힘든 대다수 서민들의 삶에 별 변화가 있을 리 없다. 월드컵은 '국가주의 신화의 도구'가 아닌 즐기는 스포츠일 뿐이다. 문화연대의 구호처럼 월드컵보러 집 나간 우리의 이성도 찾아와야 한다.  


2006-06-09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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