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괘종시계는 낡고 오래된 것이었다. 세이코라는 상표의 일제 시계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을 서울 인사동의 골동품 상점에서 구입했다고 한다. 내 아내의 친한 벗이 늦은 결혼을 축하한다며, 어렵사리 구입해 우리 부부에게 선물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산사에서나 경험할 법한 괘종시계의 타종소리를 듣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물론 그것은 괘종시계의 생리를 몰랐던 우리의 무지 탓이었다. 감정 없는 건전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태엽의 동력으로 순환하는 것이 괘종시계다.
그 시계의 태엽은 시침을 중심으로 오른쪽과 왼쪽 양방향에 있었다. 나중에 동네의 시계방 주인에게 들으니, 시계의 태엽을 감을 때는 왼쪽의 것은 오른쪽으로, 오른쪽의 것은 왼쪽으로 공평하게 감아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괘종시계가 우리 집에 도착한 첫날에 아내는 양쪽의 태엽을 아무 생각 없이 오른쪽으로 감아버렸다.

괘종시계는 임종한 듯 보였다. 시계불알을 경망스럽게 좌우로 흔들어 보았지만 역시 미동도 없었다. 고시계 수리점에 가니 태엽이 끊겼다고 했다. 무리하게 태엽을 오른쪽으로만 돌린 탓인데, 안타깝게도 태엽의 부품이 없어 수공으로 부품을 다시 제작해야 한다고 했다. 한 달여 뒤에 돌아온 괘종시계는 창백해 보였다. 창백한 괘종시계의 양편의 태엽을 일주일에 한 번씩, 나는 공평하게 한번은 왼쪽으로, 또 한 번은 오른쪽으로 돌려주었다. 이제 시계는 잘 돌아가고, 종소리는 명랑하다.

괘종시계의 태엽을 좌우로 감으면서, 엉뚱하게도 나는 역사에 대해 생각했다. 신문을 읽으니, 일본에서는 아베 신조 관방장관이 신임 총리가 된다고 한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시절,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 및 일본 자체의 북한 위협론에 기반해 여론몰이에 성공한 ‘평화헌법’ 개정 문제가 탄력을 받을 것이 분명해졌다. 일본 사회의 태엽은 더 강력하게 오른쪽으로 감길 것 같다.

중국이라고 해서 상황은 다른 것 같지 않다. 지난여름 며칠 중국을 방문해 보니, 애국주의가 국가적 화두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지난 연대 한국의 속도전을 방불하게 하는 공업화의 정황을 상기시키듯 베이징의 하늘은 높은 습도와 스모그로 답답했고, 도시화에 따른 농촌 분해와 사회적 양극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었다. 이 양극화의 균열을 미봉하면서, 일체화된 국민적 이데올로기로 접합시키려는 시도가 애국주의로 보였는데, 화북지역의 오지에조차 ‘항일항전지 견학’이라며 낡은 관광버스가 빈번하게 오르내렸다. 중국 사회의 태엽도 한층 오른쪽으로 감기는 듯했다.

타이에서 발생한 군사 쿠데타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정치군인들이 준동할 수 있다는 낡은 흑백영화의 돌연한 재현 같아 섬뜩했다. 남아시아의 지정학적 세력 균형 탓에 단 한 번도 외세의 지배에 노출되지 않은 타이는 기묘하게도 자체 민주제의 파행의 원인이자 결과인 군사 쿠데타로 국력을 지속적으로 낭비하고 있다. 태엽은 무리하게 오른쪽으로, 일방적으로 감기고 있는 듯하다.

한국에서는 연일 ‘라이트’ ‘뉴라이트’ 하는 단어들이 구호에 멈추지 않고 정치세력화하고 있다. 그 반면 민주화 세력은 사분오열되어 있는 듯하고, 마치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독일의 ‘보수혁명’의 캐치프레이즈를 모방하는 듯한 전향 좌파의 우경화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기묘한 냉소와 자탄, 위기감이 태엽의 균형감각을 잃게 하고 있다.

괘종시계의 태엽을 좌우로 공평하게 감으며 나는 생각한다. 고장난 시계는 고칠 수 있지만, 태엽이 끊긴 역사는 어찌할 것인가.

2006-09-21, 한겨레신문
이명원 문학평론가·〈비평과 전망〉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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