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Up & Down의 충격

80년대 중후반, 한국에서 '헤비메틀'이라는 음악장르가 개화기를 거쳐 한창 꽃을 피우고 있었다. 당시의 Big3였던 시나위, 백두산, 부활을 필두로 작은하늘, 태백산맥, H2O, 외인부대 등 이후 한국 음악씬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게 되는 쟁쟁한 뮤지션들이 수면위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들은 송설라이브 클럽이나 파고다 연극관등 일부 매니아들의 한정된 공연장을 벗어나 공중파에 출연기회도 생기고 TV브라운관을 통해 심심치 않게 쇼 프로그램에 등장하기도 하였다.

그 중 단연 돋보이는 앨범은 시나위가 87년 발표한 두번째 앨범 Up& Down 이었다. 당시 가장 아쉬움을 주는 부분은 '레코딩' 문제였는데, 실제로 시나위 1집의 경우 밴드나 엔지니어들이 미숙한 점이 많아 악기의 소리나 가사마저 제대로 알아듣기 힘든 부분이 많았다. 물론 지금과 비교하면 시나위2집도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당시로써는 상당히 깔끔하며, 노래들 또한 초기 '헤비메틀'의 수작들로 채워져 있었다.

Up&Down은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 '대히트'를 기록하여 15만장이 넘는 판매량과 '새가 되어 가리' '빈 하늘' '해저문 길에서'등의 히트곡을 음악잡지의 상위랭킹안에 서너곡씩 올리기도 하였으며 라디오에서도 심심치않게 흘러나왔다.한마디로 80년대 한국 Rock음악의 '쾌거'였으며 지금까지도 '명반'으로 손꼽히고 있는 앨범이었던 것이다.

분위기 파악 못하는 찬양가

그런데 당시 락키드 였던 내게 최고의 곤욕은 시나위 앨범안에 있는 '건전가요'인 '아! 대한민국'을 듣는 것이었다. 방안에서 한창 볼륨을 높이고 음악을 듣다가도 정수라씨의 '아아~ 대한민국'이 흘러나오면 분위기는 완전히 '뽕짝'이 되어버렸다. 지금은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지만 당시 '대한민국'을 좌지우지 하던 대머리아저씨의 업적찬양과 국민계몽을 위한 노래가 대한민국 가수의 앨범이라면 어떤 앨범이든 1곡이 들어가야했다. 그것은 부활과 백두산에게도 예외일수 없었다. 횡포도 이정도면 '만행'에 가깝다.

더구나 그때는 MP3같은것이 없던 레코드판과 카세트 테이프의 시절. 노래를 선곡해서 틀수도 없고, 일단 플레이를 시켜놓으면 중간에 가서 끄지 않는 이상 마지막까지 모든 노래를 듣지 않을 수 없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밴드들의 자존심이 상당히 상했을 것 같다. 물론 들국화 같은 밴드는 '우리의 소원'을 직접 노래해서 싣는 차선책을 택하기는 했다. 록 밴드의 앨범에 난데없이 다른 가수의 '찬양가'를 싣는 것은 차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누가 악몽을 보상하랴

그러다 보니 당시의 건전가요는 안 외울래야 안 외울수가 없었다.정확히 말하면 '세뇌'당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아! 대한민국'을 필두로 '아~아~ 믿음속 상거래로 만들자 밝고 따뜻한 사회' 라는 가사가 인상적이었던 혜은이씨의 '시장에 가면' 해바라기와 이문세의 앨범에도 수록되었던 '어허야 둥기둥기' 등 당시의 건전가요는 고스란히 나의 학창시절의 기억속에 '저장'되어 버린것이다. 시간이 많이 흐르긴 하였으나 가끔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는 '시장에 가면'을 생각하면 정말 세뇌란게 얼마나 무서운지 깨닫게 된다.

당시의 담당관청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만행'을 저지른 것일까? 왜 반항정신의 기수들인 '락커'들에게 그런 '맹세'를 강요한 것일까? 그런 법을 만든 사람들이 지금은 '반성'은 하고 있을까? 록음악을 하는 밴드들로써는 눈물을 머금고 '타협'을 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앨범을 발매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당시 한국의 '헤비메틀 전성기'를 이끌던 많은 밴드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해드리고 싶다.

'빛나던 시절에 고생많이 하셨습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06-06-16, 인터넷한겨레
혹성탈출
출처 : http://wnetwork.hani.co.kr/borntor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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