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 문화관광부 장관이 서울대에 연극영화과가 생길 필요가 있다고 했다는 소식을 듣고 역시나 싶었다. 광대 출신에서 장관자리에 오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줄 알았더니 핏줄은 못 속이는구나 싶어서였다. 그의 핏줄은 서울대다. 그가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은 대부분의 서울대 출신들처럼 그도 광대보다는 서울대 출신이라는 것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살았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서울대 동창회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제 문화예술 방면에도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럼 다른 대학의 연극영화과들은 전문적인 교육을 못하고 있다는 말인가. 아니면 서울대가 하면 뭐든지 더 잘한다는 신념이거나, 좀 잘 되어가는 분야면 서울대가 빠질 수는 없다는 생각 때문인가. 그는 또 서울대가 다른 대학보다 문화예술 분야의 실기가 약한 편이라고 했다. 그러나 대학에 따라 이론이 강하거나 실기가 강한 대학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이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서울대엔 미대도 있고 음대도 있다. 엄청난 국고를 쓰는 서울대에 왜 미대와 음대가 있어야 하는지 나는 오랫동안 답답했다. 서울대 구조조정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미대와 음대 등 예술교육은 전문적인 기관에서 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왜 서울대학이 모든 분야를 망라해야 하는가. 그 대학 출신이 미술계와 음악계에서 실기면에서나 이론면에서 그가 말하는 큰 역할을 했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 다만 간판만은 확실한 구실을 하고 있어서 문화권력의 핵심이나 선거판에는 서울대 출신들이 설쳐가며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식으로 중요 직책을 맡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예술의 길은 험난하다. 성공하는 사람은 몇 안 된다. 가난과 배고픔이 일상이다. 소위 쟁이나 장인의 길은 학벌과는 무관하다. 좋은 학벌을 가진 사람들이 추구하기는 어려운 길이다. 샛길로 빠질 방법만 있다면 빠져나오고 포기하고 싶어지는 분야다. 우리 사회에서 서울대 출신이라는 간판이 얼마나 위력을 발하는데, 그것으로 쉽게 가는 길이 있고 또 유혹하는데, 멀고 험하고 가도가도 끝이 나지 않는 예술가의 길을 가겠는가. 백남준이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우리는 모른다. 정명훈이 서울대를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그들이 서울대를 나왔다면 일찌감치 문화권력의 길을 택하지 예술가의 길을 가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믿는다.

얼마 전까지 50여 대학의 연극영화과에서 해마다 1500명 가량의 인력이 배출됐다. 최근에는 연극영화과에 학생들이 몰린다니까 영상영화 관련 유사학과가 급속히 늘어서 아마도 100여곳 정도는 되지 싶다. 과잉공급에 포화상태다. 서울대에 연극영화과 없어도 우리나라 연극영화 잘 하고 있다.

김명곤 장관이 수장인 문화관광부의 예산을 쓰는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전문적인 문화예술인들을 기르자고 만든 학교다. 영어로는 내셔널 유니버시티다. 부여에 있는 한국전통예술학교도 전통예술대학이 됐다. 학교라는 이름으로 전문가를 양성한다고 했는데 어느 사이에 모두 대학 이름을 달고 있다. 한국인이 많이 다니는 프랫이나 파슨스, 줄리아드, 아스펜,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 리즈 등은 모두 전문 예술인들을 기르는 학교다. 스쿨이나 인스티튜트다. 대학이라는 이름을 붙여야만 되는 것은 학벌을 숭상하는 우리 사회의 반영이다.

서울대에 연극영화과를 만들어 전문적인 예술인을 키워야 한다는 것은 퇴영적이고 권위적인 발상이다. 서울대 만능주의와 싹쓸이주의다. 이제 축구도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이왕이면 이참에 축구학과나 월드컵학과도 서울대가 나설 때다, 하시는 게 어떨지?


언론인
2006-06-15,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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