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기’를 아는가?
국어사전에도 어엿하게 등재된 단어 ‘거시기’란 ‘이름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 곤란한 사람 또는 사물을 가리키는 대명사’다. 삼국시대 말 백제를 배경으로 한 영화 <황산벌>에서 계백이 병사의 이름을 묻자 병사는 문득 말한다. “지 이름이 뭐가 중요하요. 그냥 거시기로 해두쇼.” 그의 이름은 ‘거시기’였다.
언론계를 배회하는 인물 중에도 ‘거시기’가 있다. 좌파에서 우파로 변절한 것이 분명한데, 본인은 한사코 변절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니 변절했다고 말하기도 곤란한 그를 설명하려면 결국 좌파에서 우파로 ‘거시기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를 보수 논객이라 칭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따금 과격한 언사로 눈길을 끄는 것 외에 딱히 기억에 남는 글이 없으니 논객이라 소개하기도 좀 ‘거시기’하다. 한때 안티조선 운동에 앞장서다 이제는 <조선일보>와 찰떡 호흡을 맞추고 있으니 이력 또한 ‘거시기’하다.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는 그를 ‘듣보잡’ 혹은 ‘변듣보’라 칭했는데, ‘듣보잡’이란 표현도 본인이 싫어하니까 듣보잡이라 말하기도 껄끄러운 그는 천상 ‘거시기’다.

‘거시기’는 그동안 ‘거시기’한 발언과 글로 ‘거시기’한 소동을 많이 빚었지만 ‘지적’ 수준만은 세계적이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파동 당시 이른바 ‘청산가리 발언’으로 주목을 받은 배우 김민선씨와 그를 편든 배우 정진영씨에 대해 ‘거시기’는 ‘지적 수준이 안 되는 자’들이라며 거침없이 ‘지적’하고 나섰다.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와 관련해 김민선씨를 비난하고 나서자 정진영씨가 침묵하는 김씨를 대신해 전 의원에게 비판을 가했고, 이게 마침 ‘거시기’의 눈에 띈 것이다. ‘거시기’는 8월13일 자신이 운영하는 홈페이지 글을 통해 “김민선은 물론 정진영조차도, 사회적으로 파장을 미칠 만한 자기 의견을 개진할 지적 수준은 안 된다”며 “지적 수준이 안 되는 자들이 인지도 하나만 믿고 자기들의 의견을 밝히기 시작할 때, 대한민국의 소통체계는 일대 혼란에 빠진다”고 말했다. 글 한 편으로 배우 김씨와 정씨 두 명을 동시에 ‘거시기’해버린 것이다.

부글부글은 ‘거시기’에게 이렇게 조언하고 싶다.
“지적 수준이 안 되는 자가 인지도 하나만 믿고 자신의 의견을 밝”혀도 “대한민국의 소통체계가 일대 혼란에 빠지는” 일은 결코 없다. 그러니 ‘거시기’는 앞으로도 대한민국 소통체계 걱정 마시고 마음껏 ‘거시기’ 하시라. 우리는 단지 ‘거시기’가 참으로 ‘거시기’하다고 느낄 뿐이다!

(‘거시기’의 실명은 밝히지 않는다. ‘거시기’의 이름을 인터넷에서 검색할 때 <한겨레21>의 ‘부글부글’이 뜨는 사태는 대단히 ‘거시기’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2009.08.21 한겨레21 제774호]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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