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18일째인 21일까지 관객 456만 명을 빨아들이며 흥행 질주 중인 영화 ‘웰컴 투 동막골’. 6·25전쟁 당시 강원도 두메산골에 있는 동막골에서 마주친 남북한 군인들의 화해와 우정을 다룬 이 영화가 관객의 마음을 훔친 까닭은 뭘까. 가장 먼저 사투리의 힘을 꼽을 수 있다. 동막골이라는 유토피아의 ‘공용어’인 이 강원도 사투리는 단순히 몇 개의 단어만 열거될 뿐인데도 사람을 웃게도 울게도 만드는 마술을 부린다. 그건 아마, 이들 사투리가 어떤 경우에도 진실만을 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웰컴 투 동막골’ 속 사투리의 비밀을 밝힌다.》

▽①‘동막골 용어사전’▽

  동막골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단어(혹은 문장)는 다음 세 가지다.△아프다 △부애가 났다 △먹다. 우선 ‘아프다’는 단어는 치명적 사고나 위기의 상황에서도 다소 ‘한가하게’ 사용된다. 이는 ‘더 아프고 덜 아프고’의 정도 차이 없이 ‘아픈 건 그냥 아픈 것일 뿐’으로 받아들이는 마을 사람들의 과장 없고 순박한 정서를 드러낸다.
  “여 누워있지 마라. 뱀 이거 깨물믄 마이 아파. 우터(어찌) 그래 아픈지.”(병사들에게 여일이) “여가(여기가 ·배가)…뜨구와…마이 아파.”(복부에 총을 맞은 여일이)
  또 ‘부애가 났어요?’란 말은 ‘화가 치밀었느냐?’는 뜻. 마을 사람들은 말 뜻 그대로 사용하지만, 주로 상대의 면전에서 그 말을 사용해 상대의 속을 ‘본의 아니게’ 뒤집어 놓는다.
  “근데 저 양반은 먼 부애가 저래 났어요?”(굳은 표정의 국군 현철을 보면서 마을 사람 달수가) “얼른 일루(평상 위로) 올라와. 이 사람들 부애가 마이 났아.”(마을 사람들이 벌통을 보고 온 용봉을 보고)
  ‘먹다’라는 단어는 ‘공동생산 공동분배’의 공산제 사회인 동막골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단어. 동막골 촌장이 사용하는 말의 80%는 ‘먹는 것’과 관련된다. ‘뭘 좀 먹이는 것’은 리더십의 원천이기 때문.
  “뭐르 좀 묵었어요?”(국군인 현철과 상상을 처음 만난 촌장이 걱정하면서) “뭐르 그래 빤히 쳐다보나. 회 하이 가서 식솔들 좀 멕이야지.”(국군을 구경하며 웅성거리는 마을사람들에게 촌장이) “인제 그만하고…머르 좀 먹어야지?”(남북한 군인이 팽팽히 맞서자 촌장이 말리며) “뭐를 마이 메게이지 머.”(북한군 장교 수화가 ‘위대한 영도력’의 비결을 묻자 촌장이)

▽②‘미친년’의 ‘안 미친’화법▽

  자타공인 ‘미친년’인 여일(강혜정)은 알고 보면 동막골에서 가장 논리적으로 말하는 주민이다. 그는 자신의 빨리 달리기 비결을 과학적 인과관계를 담아 섬세한 ‘메커니즘’으로 설명할 줄 안다.
  “내 좀 빨라. 난 참 이상해. 숨도 안 멕히고…. 아래 이래 팔을 빨리 휘저으믄, 다리도 빨라지미. 다리가 빨라지믄 팔은 더 빨라지미. 땅이 뒤로 막 지나가미…. 난 참 빨라. 우터 이닷한지(어째서 이런지)….”
  대부분의 광인(狂人)들은 자신의 정신상태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일은 다르다.
  “으때…, 멋지나?”(헬멧을 쓴 아이 동구가) “수박 껍데기르 뒤집어 쓴 거 같다.”(여일) “미친년한테 물어본 기 잘못이지….”(동구) “동구 니가 말하는 미친년에 난(나)도 끼나?”(여일) “이래이(이것 보시요)…. 우리 마을에 미친년이 뭐 여러 개 있나? 니 머리에 꽃 꽂았제?”(동구) “(수긍하며) 내가 미친년인거 아는 사람 많나?”(여일)
  여일은 알고 보면 인정과 수긍과 포용의 정신을 지닌 ‘대 자연의 어머니’인 것. “너나 잘 하세요”하면서 상대의 콧대부터 짓누르는 ‘친절한 금자씨’보다는 더 친절하다고 볼 수 있다.

▽③환상의 ‘한 발 빼기’▽

  동막골 사람들은 ‘더불어 산다’는 것의 기본을 안다. 상대와 의견이 다르더라도 대놓고 충돌하는 법이 없다. 강하게 주장하다가도 상대가 반발하면 일단 고개를 숙이고 보는 삶의 지혜를 가졌다.
  “내 보기엔 그만하면 사람들 싹 다 괜찮던데?”(군인들을 칭찬하면서 마을 사람 석용이) “형님요, 그리 사람 볼 줄을 몰라요.”(마을사람 응식이 화를 내며) “그리니? 내 말을 가슴에 …너무 이래 담지 마….”(석용)
  

2005-08-25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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