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가 2008학년도 대학입학전형부터 논술과 심층면접을 강화한다고 하자
5월 10일 연세대 고려대등 서울지역 주요대학들도
논술과 구술을 중시하는 대입전형 입장을 밝혔습니다.
어떤 방법 어떤 변별형식을 통해서라도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려는
대학측의 몸부림을 부정적으로만 탓할 순 없습니다.
또한 수십만명 중에서 수천명을 추려내려는 대학들의 다양한 전형방식에 대해
교육당국이 일률적으로 통제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신입생 선발 때 대학 측이 전가의 보도로 활용할 수 있는 최고의 평가수단이
바로 논술입니다.

수학 문제마저 논술식으로 증명하면서 풀이하라고 요구하는 추세입니다.
논술문제엔 장문의 영어제시문도 종종 등장합니다.
논술고사는 자기생각을 제대로 표현하는가를 평가하는 시험입니다.
논술시험은 모든 과목을 관통하면서
수험생의 종합적 사고능력과 표현력을 검증할 수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시험방식은 구체적으로 요약과 논술로 나눠집니다.
위에 예를 든 논술 기출문제는 요약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문제들입니다.
‘편집자의 벤치’ 오늘은 바로 요약(summary)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요약하라는 문제는 주어진 글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요약을 잘 했다는 말은 제시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파악했다는 말이고
글의 논제 방향 논점을 잘 이해했다는 뜻입니다.
요약한 글에 다시 살을 갖다 붙이고 충분한 근거를
논리적으로 확장시키면 논술 글이 됩니다.

논술이 필자가 먼저 주제를 분명하게 잡고
논거를 대는 과정을 거쳐 설득력을 발휘하는 과정이라면
요약은 장황한 글을 줄여 논거를 찾고 그 논거에서 주제를 뽑아
한 줄 또는 한 문단으로 정리하는 과정입니다.
단순하게 말씀드리면 요약이란 한 줄의 제목을 뽑는 과정입니다.
신문 편집자가 마감시간을 코앞에 두고 기사의 헤드라인을 뽑는 과정과 유사합니다.
글을 요약하는 훈련은 개요를 짜는 능력을 키워주고
궁극적으로는 논술을 제대로 쓸 수 있는 실력의 전제조건이 됩니다.

긴 글을 요약하는 순서를 알아볼까요.
숲 전체를 조망할줄 알아야 솎아내줄 나무가 보입니다.
글 전체 흐름을 알아야 어떤 부분을 빼고 어떤 부분을 남길 것인지 판단할 수가 있습니다.

<1> 요지 파악 (결론 찾기) --- 대부분 맨 뒤쪽에 있는 단락이 결론 단락입니다.
반면 역삼각 구조로 이루어지는 신문 보도기사의 경우 맨 앞 리드가 요지가 됩니다.

<2> 논거 파악 ( 주장의 근거 찾기) --- 필자가 내세우는 결론의 논리적 구성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필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의 뼈대를 찾는 과정입니다.
그 중심문장과 핵심어를 찾아 밑줄을 그으면서 눈여겨 봐두십시오.

<3> 요약문 작성 돌입 --- 먼저 요약문의 길이를 헤아리십시오.
가령 요약문을 서론 본론 결론형태로 원고지 200자 한 장 분량으로 정리하라고 지시된다면
전체내용을 세문장 정도로 정리하면 됩니다.
즉 ‘지금 특정의 문제가 드러나고 있는데 (문제제기)
이러저러하기 때문에 (논거제시)
결국 이렇게 하자고 하는구나(결론 취합)’로 요약하면 됩니다.

원고지 세장분량이라면 이 세 문장을 기본 구도로 조금씩 살을 붙이고
이미 파악된 중심문장들을 추가로 곁들이면 금방 열 문장정도가 됩니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자기 생각을 요약 글에 집어넣으면 안됩니다.
주어진 내용을 축약 요약하는 것이지
자기 논리를 펼치는 주장논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본문 주제와 동떨어진 생경한 어휘사용도 금물입니다.
요약문장이 길어지면 뜻이 변질되기 쉽습니다.
한 문장은 대체로 30자 안팎 분량으로 쓰면 좋습니다.
한 문장엔 중심생각 하나만 담아야 합니다.
되도록 짧게 써야 긴장감을 갖춘 좋은 문장이 됩니다.

요약 능력은 일반인들에게도 중요합니다.
조직에서 프리젠테이션을 종종 해야하는 분들에게 요약능력은
가장 긴요한 기본기입니다
장황한 서류뭉치는 결코 환영받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보고받는 사람에게 사안의 본질을 단도직입적으로 브리핑하면서
한눈에 쏙 들어오는 제목의 보고서를 내놓아야 주목받을 수 있습니다.
그럴려면 요약하고 또 요약해야 합니다.
단 절대적으로 필요한 정보와 결론마저 생략하면 안됩니다.
이참에 단순명쾌하게 요약의 테크닉을 가르쳐주는 책 한권을 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미국의 프로젝트 개발전문가 패트릭 라일리(patrick g. riley)는
2000년에 'the one page proposal'이란 타이틀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2002년 한국에서 을유문화사가 번역 출간했습니다.
‘강력하고 간결한 한 장의 기획서’란 부제를 달고 나왔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이미 읽으셨을 겁니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을 소개해볼게요.
이 두껍지 않은 책의 결론은 모든 기안서 기획서는 한 장으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오직 한 장에 모든 핵심을 담아 사업과 기획의 승부를 걸라는 것입니다.
그가 정의 내린 the one page proposal은 아래의 조건을 만족시키는 서류를 말합니다.

-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 혹은 프로젝트를 둘러싼 모든 객관적 사실, 추론, 상황을 간결하게 표현한다.
- 동의를 얻어내기 위한 것이므로 설득력 있는 언어를 사용한다.
- 구체적인 실행과정을 설명한다.
- 이 모든 것을 the one page proposal 분량으로 프린트한다.

왜 한 장짜리 기획서인가.
이는 제안자가 그 기획서를 읽은 사람의 시간을 배려했다는 뜻이며,
그의 폭넓은 지식과 경험을 이미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그가 정보를 흡수해 신속한 결정을 내릴 능력이 있다는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결정을 내려야 할 경우
인지적 습성상 가장 쉬운 결정부터 먼저 내린다고 합니다.
조사하고 회의를 거쳐야 하거나 자료를 더 보충한 후에 내려야 할 결정은
뒤로 미룬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지나친 정보는 결정을 앞당기는 것이 아니라 지연시킨다고 합니다.

the one page proposal은 총 여덟 개 항목으로 구성됩니다.
1. 제목 --> 2. 부제 --> 3. 목표 --> 4. 2차 목표 -->
5. 논리적 근거 --> 6. 재정 --> 7. 현재 상태 --> 8. 실행
저자 라일리는 이 순서가 사고와 논증의 논리적이고 유기적인 진행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 제목과 부제는 기획서 전체를 규명하고 한계를 명확히 한다.
- 목표와 2차 목표는 기획서의 궁극적인 목적을 규정한다.
- 논리적 근거는 제안된 실행이 필요한 기본적인 이유를 설명한다.
- 재정은 거래와 관련한 금전적인 부분을 명시한다.
- 현재 상태는 일의 현재 상황을 보여준다.
- 실행은 기획서를 작성한 사람이 그것을 읽은 사람에게 원하는 행동을 직접적으로 명시한다.
즉 기획서를 쓰는 사람이 기획서를 받아볼 사람에게 추천을 원하는 것인지,
대출을 원하는 것인지, 투자를 원하는 것인지를 분명히 밝히는 최종단계이다.

아무것도 부탁하는 것이 없으면 기획서가 아닙니다.
the one page proposal를 받아본 사람이 그 자리에서
yes / no 여부를 분명히 밝혀주는 기획서가 최고의 기획서가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3~4분 내에
단순명쾌하게 읽을 수 있는 the one page proposal를 만들 수 있을까요.

- 흥미롭지만 불필요한 사실들을 잘라내라.
기획서 중심내용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문장이 아니라면
빨간 펜으로 과감하게 지우세요.
- 과다한 정보는 잘라내라.
중요한 것을 반복해서 강조하지 마세요. 중첩된 정보는 자칫하면 혼란을 가져다줍니다.
- 뻔한 사항은 잘라내라.
고지식한 내용은 삭제하세요. 매우 독특하고 특별한 것만을 포함시키세요.

the one page proposal에 적용되는 문체는 단순성, 직접성, 명확성입니다.
재능 있는 작가들이 종종 솜씨를 자랑하는 감정적 표현과
미묘한 여운의 문체는 삼가야합니다.
즉 미사여구를 부리지 말아야합니다.
제안하고자 하는 바를 오해의 여지가 없게끔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자 라일리는 당신은 당신의 사업을 도와줄 잠재적 투자자로
톨스토이가 아니라 빌 게이츠를 찾고 있다는 것을 결론적으로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과도함을 피하고 단순함을 유지하십시오.
단 1장짜리 기획서이지만
이 종이 한 장이 세상을 향한 당신의 출사표이자 도전장이 되는 겁니다.

김용길
2005-05-11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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