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자히르....!

좋은글 조회 수 2146 2005.11.25 19:45:47


<지난해 봄 카자흐스탄의 고원을 찾은 파울로 코엘료. 그의 신작 ‘오 자히르’에서 프랑스에 사는 소설가인 주인공 ‘나’는 사라진 아내 에스테르를 찾아 카자흐스탄까지 간다>

  파울로 코엘료가 쓴 "오 자히르"라는 책이 있다

  이책은 일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에 대한 자각을 상실한 채, 삶을 오로지 관성으로 바라보았던 어떤 남자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 아내의 빈자리를 바라보면서, 비로소 그것이 공기나 물처럼 자신에게 없어서는 안될 가장 소중한 것이었음을 깨닿는다는 얼개를 가지고 있다.
                                                                                                          
  이책에 제목으로 쓰인 "자히르"라는 개념은 이렇게 설명되어진다.

  "보르헤스에 따르면 '자히르'는 이슬람 전통에서 유래된 개념으로 18세기경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랍어로 자히르는 눈에 보이며 실제로 존재하고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일단 그것과 접하게되면 서서히 우리의 사고를 점령해 나가서 결국 다른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어떤 사물 혹은 현상을 말한다, 그것은 신성( 神性)일수도 있고 광기(狂氣)일 수도 있다,

  이 개념에서 보자면 "자히르"란 특정 종교를 신앙하는 사람에게는 경배의 대상이기도 하고, 무당이나 주술사에게는 자신이 모시는 신(神) 이기도 하며, 가시꾼에게는 거짓이, 여인을 쫒는 스토커에는 그것이 사람이기도 하고, 심지어 살인마에게는 그것이 생명이기도 한 그런것인 셈인데. 이 소설에서 "자히르"는 주인공의 아내, 혹은 아내의 빈 자리로 설정되어 있다.

  소설에서 아내는 주인공을 사랑하고 신뢰하며 강력한 동반자이자 지지자로 존재하지만, 주인공은 언제나 그의 아내를 언제나 그자리에 그렇게 있는, 혹은 있어야하는 일상으로 받아들인다, 주인공은 아내를 사랑하지만 아내의 고민을 듣기를 원치 않고, 아내를 존중하지만 아내의 생각을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그는 아내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고민하는 아내에게 내내 사랑을 가장한 회피로만 일관한다,

  즉 그에게서 아내란 항상 제자리에 있는 사람, 내가 필요하면 언제나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 따뜻한 품이 그리우면 항상 안을 수 있는 사람이었을 뿐, 또 아내란 "우리"라는 틀에서만 존재하는 존재하는 사람일 뿐, 때로는 아내가 "그녀"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거나, "나"로 존재하는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즉 그에게 있어서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성공을 위한 노력들은 모두 "우리 것"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었고, "나"를 이야기하는 아내는 "가진 여자의 투정"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러던 어느날 주인공인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기위해 떠나버린 아내의 빈자리를 보면서 그제서야 항상 곁에 존재했던 아내의 의미를 떠올리게 되고 그는 그때서야 비로소 "남자"가 된다

  이 소설에서는 뒤늦게 "남편"이 아닌 "남자"가 되어 아내의 환영을 쫓는 그의 자각을 "자히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자히르란 소설의 주인공처럼 "사랑" 일 수도 있지만 아닐수도 있다.

  현대인은 관계속에서 자신의 존재가 규정된다.

  직장에서는 대리,과장,부장,사장으로, 국가에서는 시민 관료 정치인으로, 가정에서는 남편 아내 자식으로, 이렇듯 "나"라는 개념은 관계속에서 상대적인 것이다, 만약 국가,사회,가정이라는 관계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는 대체 무엇으로 규정 할 수 있을까?

  또 이때 나는 무엇일까?

  사실 이 물음에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히말라야의 구름을 깔고앉은 구루이거나 현자일지 모른다,

  그러나 만약 당신의 자히르는 무엇입니까? 당신의 삶을 주도하고 당신의 정신을 지배하며 당신의 사고를 점령하는 자히르는 무엇입니까? 라고 질문 한다면 그것에는 답할 수 있을까?

  이때 우리는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는 것일까? 기러기 아빠는 자식들의 성공을, 연인은 그와 그녀의 이름을, 대권을 꿈꾸는 사람은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자히르라고 말하는 것일까? 혹은 은퇴를 위한 준비, 10억 만들기. 부자아빠가 되기를 꿈꾸는 골드러쉬들이 우리들의 자히르일까?

  또 사회적 자히르는 무엇일까?

  경제발전, 일자리, 연봉, 절세 이런것들이 혹시 오늘 우리의 머리속을 지배하거나 사고를 점령하고 있지는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혹시 우리나라의 자히르는 무엇일까? 선진국, 일등국민, 개발,. 혹시 이런것들이 통일, 평화, 사랑, 박애와 같은 보편적 가치를 밀어내고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는 자히르로 자리잡고 있지는 않을까?

  또 이런 자히르가 우리의 사고를 사로잡으면서 정작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힘없는 약자를 구석으로 밀어내어버리지는 않았을까..

  정말 우리는 "우리"라는 이름을 앞세워 "너"의 희생만을 요구하지는 않았을까?

  만약 지금 우리의 머리를 사로잡고 있는 "자히르"가 사상최고치를 돌파한 주식시장이나, 변액보험, 부동산이라면 언젠가 우리는 내가 진짜 잃어버린 무엇인가를 찾아 그 소설의 주인공처럼 부유해야하는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지금 당신의 자히르는 무엇입니까?


2005-11-25, 동아일보
박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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