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경협사무소)에 상주하던 남쪽 정부 인력 11명 전원이 북쪽 요구로 어제 철수했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과 관련해 북쪽이 취한 첫 조처로, 상당 기간 남북관계 경색이 불가피할 듯하다. 하지만 정부는 강경기조 대북정책을 밀고나갈 뜻을 밝히고 있다. 정권 초기 기싸움이라는 성격이 있지만, 남북 두루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다.
우선 북쪽 조처는 선의와 상호 존중을 기본으로 하는 경협 정신에 어긋난다. 북쪽은 ‘핵문제가 타결되지 않으면 개성공단을 확대하기 어렵다’는 김하중 통일부 장관의 지난 19일 발언을 문제삼았으나 경협사무소는 개성공단과 직접 관련이 없다. 이 사무소는 종합적 남북 경협창구 구실을 하는 곳으로, 사무실이 개성공단에 있을 뿐이다. 북쪽은 공식 입장을 문건으로 통보해 달라는 남쪽 요청에도 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 장관 발언에 대한 북쪽 불만은 일리가 있다. 남북은 지난해 ‘10·4 남북 정상선언’에서 “개성공단 1단계 건설을 빠른 시일 안에 완공하고 2단계 개발에 착수”하기로 합의했다. 김 장관 발언은 이 합의와 정면으로 어긋난다. 북한으로서는 개성공단 사업의 안정성과 발전 전망에 대해 우려할 만한 상황인 것이다. 북쪽이 개성공단 업무를 책임진 개성공단 관리위원회가 아닌 경협사무소의 인력 철수를 요구한 것도 공단 사업은 다치지 않게 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개성공단은 화해·협력을 넘어 남북 상생의 모델이 되는 곳이다. 현재 남쪽 기업 67곳이 입주해 일하고 있으며, 180여 기업에서 공장을 짓고 있다. 개성공단은 또한 한반도 상황이 어려울 때 평화를 담보하는 안전판 구실을 한다. 따라서 공단 사업을 핵문제와 직접 연계하는 것은 누구한테도 득이 되지 않는다. 섣부른 정책으로 앞날을 불안하게 할 일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대북정책 강경기조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이번 일이 벌어졌다는 점이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그제 한-미 외무장관 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북한에 대한 6자 회담 당사국들의 시간과 인내심이 끝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핵문제 해결 노력에서 생산적 중재역을 하는 대신 ‘북한 때리기’에 앞장선 것이다. ‘핵 신고 문제에 대한 북한의 조처가 있어야 한다’고 한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의 발언과도 대비된다. 정부의 이런 태도는 핵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불필요한 갈등을 불러오기 쉽다.

그제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드러났듯이, 정부는 노무현·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 성과를 무시하고 그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퇴행적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대북 강경기조로 일관했던 김영삼 정부는 한반도 관련 국제정치에서 소외된 채 아무런 성과를 못 냈다. 노태우 정부 때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도 1차 북한 핵 위기를 거치면서 거의 이행되지 못했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균형감 있고 실현 가능한 대북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이번 일과 비교가 되지 않을 심각한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 정부는 미국의 조지 부시 정부가 이전 빌 클린턴 정부의 모든 대외정책을 뒤집었다가 큰 곤경에 빠진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기 바란다.


2008-03-28, 한겨레신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sort

기사/보도 '명박산성' 쌓은 어청수 청장이 존경받는 CEO? file

  • 2008-11-27
  • 조회 수 2177

▲ 어청수 경찰청장. ⓒ 권우성 ▲ 6월 10일 오후 경찰이 설치한 '콘테이너 장벽'에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경축 08년 서울의 랜드마크 명박산성' 이라고 적힌 현수막과 집회 구호가 적힌 피켓을 붙였다. ⓒ 안홍기 어청수 경찰청장이 '존경 받는 대한민국 CEO' 상...

기타 정주영 ‘위험신화’ 그립소만 file

  • 2006-03-24
  • 조회 수 2176

▲ 울산 현대중공업 현장을 방문한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 정 회장은 “배를 만드는 것은 어려울 게 없다. 우리가 하는 건축공사를 육지에서 수상으로 장소를 옮겨서 건축하는 차이일 뿐이다”라며 복잡한 계산 없이 오로지 모험정신만으로 조선업계에 뛰어들...

좋은글 불편한 진실과 노무현

  • 2008-02-22
  • 조회 수 2169

우스갯소리로 이명박 당선자 압승의 일등 공신은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한다. 사실 대선 결과가 알려지자마자 언론은 노대통령에 대한 '응징'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이번 대선은 이명박 당선자에 대한 호불호보다 노 대통령에 대한 증오가 선거 결과를 갈...

좋은글 미역에 뿌린 소금, 배추에 뿌린 소금 [1]

  • 2006-12-01
  • 조회 수 2159

똑같은 소금도 대상에 따라 효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미역에 뿌리면 팔팔 살아나고, 배추에 뿌리면 시들시들 죽어버린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즐겁게 사는 사람에겐 즐거울 낙樂, 불평하며 사는 사람에겐 괴로울 고苦. - 최윤희의《유쾌한 행복사전》중에서 -

좋은글 신혼부부, 트럭을 탄들 어떠리 file

  • 2007-10-21
  • 조회 수 2158

전라남도의 한 읍내를 지나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광경이다. 결혼식을 막 마치고 신랑과 신부가 퍼레이드를 하기 위해 트럭을 타고 거리로 나섰다. 어떤 사람은 롤스로이스 자동차를 타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가 만든 드레스를 입고 값비싼 보석을 온 ...

기사/보도 놀이공원과 광장의 차이 모르겠니? file

  • 2009-09-22
  • 조회 수 2151

▲ 스웨덴 칼마르 시의 스토르토리에트 광장(생각의 나무 제공) ▲ 네덜란드 로테르담 시의 스하우뷔르흐플레인 광장(생각의 나무 제공) 당신의 머릿속에 있는 광장은 어떤 이미지인가. 누군가는 함성이 들리는 사회적 투쟁의 공간을 광장과 동일시할 수도, 혹...

기사/보도 ‘… 동막골’ 빛낸 사투리의 힘 file

  • 2005-08-25
  • 조회 수 2150

《개봉 18일째인 21일까지 관객 456만 명을 빨아들이며 흥행 질주 중인 영화 ‘웰컴 투 동막골’. 6·25전쟁 당시 강원도 두메산골에 있는 동막골에서 마주친 남북한 군인들의 화해와 우정을 다룬 이 영화가 관객의 마음을 훔친 까닭은 뭘까. 가장 먼저 사투리의...

좋은글 오 자히르....! file

  • 2005-11-25
  • 조회 수 2146

<지난해 봄 카자흐스탄의 고원을 찾은 파울로 코엘료. 그의 신작 ‘오 자히르’에서 프랑스에 사는 소설가인 주인공 ‘나’는 사라진 아내 에스테르를 찾아 카자흐스탄까지 간다> 파울로 코엘료가 쓴 "오 자히르"라는 책이 있다 이책은 일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

기사/보도 [부글부글] 듣보잡 거시기의 거시기한 소동 file

  • 2009-08-17
  • 조회 수 2143

‘거시기’를 아는가? 국어사전에도 어엿하게 등재된 단어 ‘거시기’란 ‘이름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 곤란한 사람 또는 사물을 가리키는 대명사’다. 삼국시대 말 백제를 배경으로 한 영화 <황산벌>에서 계백이 병사의 이름을 묻자 병사는 문득 말한...

기사/보도 “전 국민을 거지로 아나?” file

  • 2008-10-26
  • 조회 수 2137

유가환급금, 돈 받고 성내는 이유 [2008.10.24. 한겨레21 제732호] [줌인] 세금 환급은 ‘일회성 대국민 생색내기 프로젝트’, 부자들을 위한 감세는 화끈하게 지속적으로 “전 국민을 거지로 아나?” 10월13일 저녁 서울 마포 공덕동의 한 호프집. 흐릿한 불빛 ...

기사/보도 황석영 ‘변절’ 논란…“李정부 중도실용” 평가에 “궤변” 비판 file

  • 2009-05-15
  • 조회 수 2132

이명박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에 동행한 소설가 황석영씨(사진)가 이명박 정부를 ‘중도실용 정부’로 평가하면서 “큰 틀에서 동참해서 가도록 노력하겠다”고 한 것을 두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진보 진영은 14일 정치권, 문화계, 학계를 망라해 일제히 ‘...

기사/보도 일기예보에도 무너지는 KBO 리더십

  • 2009-05-15
  • 조회 수 2127

" 감독들이 KBO 행정을 대놓고 비판하는 게 말이 됩니까? " 지난달 한국야구위원회(KBO) 고위 관계자가 했던 말이다. 무승부를 패전으로 간주한 승률 공식 변경과 월요일 경기 편성에 대해 현장의 불만이 터져나오던 시점이었다. 일리없는 말은 아니다. 메이...

기사/보도 어디선가 나타난다 ‘실천 개그’ file

  • 2006-12-13
  • 조회 수 2126

2주 전쯤인가, 택시를 타고 시청 앞을 지나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덕수궁 문 앞이 시끌벅적했다. 덕수궁 앞 수문장 교대식이 저렇게 인기가 많았나 싶어서 자세히 들여다봤다. 그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그곳에 바로 압구정동 최신 패...

기사/보도 오렌지와 아린지

  • 2008-02-01
  • 조회 수 2124

그제 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이 엉뚱한 소리를 했다. "외래어 표기법을 바꾸지 않으면 원어민처럼 발음하기 어렵다." 미국에 가서 오렌지라고 했는데 못 알아들어서 '아린지'라고 했더니 알아듣더라라는 얘기도 했다. 착각이 있는 것 같다. 미국에 가서 '...

좋은글 1장 기획서로 승부하라 ... 요약하고 또 요약하라. file

  • 2005-06-02
  • 조회 수 2121

서울대가 2008학년도 대학입학전형부터 논술과 심층면접을 강화한다고 하자 5월 10일 연세대 고려대등 서울지역 주요대학들도 논술과 구술을 중시하는 대입전형 입장을 밝혔습니다. 어떤 방법 어떤 변별형식을 통해서라도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려는 대학측의 ...

기사/보도 여자는 남자의 미래

  • 2005-06-02
  • 조회 수 2120

거리에서 어떤 남자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느낄 때, 물론 그녀는 기쁘다. 나아가 그 남자가 꽤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있거나 게다가 비싼 스포츠카를 타고 있다면 그녀의 기쁨은 더욱더 클 것이다. 그것은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올랐다는 ...

기사/보도 바바리맨은 있는데 바바리우먼은 왜없지? [2]

  • 2005-08-05
  • 조회 수 2118

대한민국 남성이 성기를 노출해선 안되는 또다른 이유 지상파 생방송 출연자가 바지를 내려 성기를 드러내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사람은 없다. 그 놀라움은 찰나적인 인지의 공백상태를 낳는다. 댄서들의 점프는 역동적이다. 하지만 관객과 시청자들은 일시...

좋은글 영어 교육보다 급한 것

  • 2008-02-01
  • 조회 수 2116

그토록 걱정했던 일이 그예 벌어지고 있다. 교육은 제발 내버려둬 달라고, 혹여 바꾸더라도 서두르지 말자고 누누이 말했다. 하지만 새 정부 들어서기도 전에 날마다 폭풍, 아니 태풍이 분다. 그 동안 교육 말도 많고 탈도 많았으니 뭔가 해야 한다는 의욕은 ...

기사/보도 "인권위 조직 축소… 부끄러운 나라 전락 위기" file

  • 2009-07-09
  • 조회 수 2116

안경환 인권위원장 이임사 임기를 3개월 남짓 앞두고 전격 사퇴한 안경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현 정부의 인권 인식에 대해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냈다. 안 위원장은 8일 인권위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인권에 관한 한 이 정부는 의제와 의지가 부족하고 소...

기사/보도 코 베인 건 붉은악마인가 국민인가 file

  • 2006-03-07
  • 조회 수 2110

▲ 지난해 10월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독일월드컵 최종 예선 사우디전에서 새로운 구호 '함께 가요(Reds, Go Together)'를 공개한 붉은악마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2002년 6월 시청 앞 광장의 붉은 악마 축구 응원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진정 지...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