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해 12월 충남 태안군 만리포 북서방 5마일 해상에서 항해중이던 홍콩선적 14만6천t급 유조선 ‘헤베이 스피리트’ 와 삼성중공업 소속 해상크레인을 적재한 1만1800t급 부선이 충돌하면서 1만2000㎘가 넘는 원유가 해양으로 유출됐다. 연합
▲ 태안군에서 구름포 해안에서 자원봉사자들이 기름을 닦아내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름은 사람의 힘이 아닌 미생물을 통해 닦아낸다. 조홍섭 기자

사고 배 명칭 따 이름 짓는 게 국제적 관행
인재인데도 천재처럼…삼성중 뺀 채 ‘예인선’

제5금동호 사고(1993), 시프린스호 사고(1995), 제1유일호 사고(1995), 호남사파이어호 사고(1995), 제3오성호 사고(1997)….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주요 유조선 기름유출사고의 명칭이다. 모두 사고를 일으킨 배의 이름을 땄다. 이런 이름짓기는 ‘엑손 발데즈호 사고’처럼 국제적으로도 일반적인 관행이다.
그런데 왜 언론에서는 이번에 벌어진 사고를 ‘허베이 스피리트호 사고’라 하지 않고 ‘태안 기름유출사고’라고 부를까? 언론학자들이 이런 잘못된 이름짓기는 가해자는 사라지고 피해자만 부각시킨 언론의 잘못된 보도태도에서 비롯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언론재단 등 세미나서 비판…성희롱 ‘우 조교 사건’도 마찬가지

31일 충남 태안군 안면읍 오션캐슬에서 한국언론재단, 충청언론학회, 환경운동연합이 공동으로 연 세미나 참가자들은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고에서 언론의 구실을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이창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언론이 특정 사건을 이름 짓는 방식은 그 사건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보여주는 핵심적 프레임”이라고 주장했다. 1993년 서울대 교수가 여성 조교 우씨를 성희롱한 사건을 언론이 ‘우 조교 사건’으로 부르면서 가해자인 남자교수는 사건의 중심에서 사라지고 피해자만 주체로 떠오른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사고가 인재(人災)인데도 대부분의 언론은 마치 지진이나 태풍이 난 것처럼 ‘천재’(天災)로 다룸으로써 재난을 빚은 회사에 보도의 초점이 맞춰지는 것을 피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보도에서 사고의 중요한 당사자인 삼성중공업이라는 실명을 명시하지 않고 ‘예인선’이라는 익명으로 처리한 예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자원봉사는 태안 살리고, 자원봉사 보도는 삼성만 살렸다” 꼬집어

‘삼성 텔 미’란 환경단체가 만든 동영상이 온라인상에서 인기를 끈 것도, 일반 시민들은 기업의 책임에 높은 관심을 갖는데도 언론보도가 이를 충분히 다루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한다고 이 교수는 주장했다.
그는 이번 사고에 대한 언론보도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재앙의 원인과 책임소재는 제대로 규명하지 않고 자원봉사자들의 미담만을 전달하기에 바빴던 점”이라고 지적했다. 자원봉사의 기여와는 별개로, 언론은 자원봉사를 미화하는 보도를 쏟아내면서 책임소재 규명 등 정작 중요한 현안들을 묻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는 “자원봉사는 태안을 살리고, 자원봉사 보도는 삼성만 살렸다”고 꼬집었다.

“재난 발생지가 농수산물 생산지일 땐 지명 쓰지 않는 것 상식”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재난 발생지가 주요한 농수산물 생산지일 때는 자칫 지역민의 생계가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 지명을 이름에 쓰지 않는 것이 상식”이라고 말했다.
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들은 이 사건을 ‘삼성중공업 서해 기름오염사고’라고 부르고 있다.
이처럼 관례에도 어긋나고 지역에 해로운 명칭이 통용되도록 방치한 것은 지자체가 미디어 홍보대책에 나설 겨를과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점도 지적됐다. 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9·11 사태 때 줄리아니 뉴욕시장은 하루에도 몇 번씩 언론브리핑을 하면서 뉴욕이 관광과 상업의 중심지로서 이미지 손상을 입지 않도록 애썼다”며 “태안군에서 그런 고도의 미디어 홍보대책이 이뤄지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실제로, 수도권매립지는 애초 ‘김포 매립지’였으나 김포 주민들의 강력한 요청으로 환경부가 이름을 바꿔 주었다.
한편, 이번 사고가 재난인데도 방재기관의 의무가 있는 언론이 피해자를 위한 보도가 아니라 시청자나 독자 중심의 보도로 일관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연 선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언론이 피해자들을 위한 정확한 피해통계나 피해보상·배상 등 생계대책을 보도하는 데 매우 인색했다”며 “반면 아주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단어를 사용해 오염피해나 오열하고 분노하는 장면들을 클로즈업시켜 상업화한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2007-02-01, 한겨레신문
태안/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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