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이 엉뚱한 소리를 했다. "외래어 표기법을 바꾸지 않으면 원어민처럼 발음하기 어렵다." 미국에 가서 오렌지라고 했는데 못 알아들어서 '아린지'라고 했더니 알아듣더라라는 얘기도 했다. 착각이 있는 것 같다.
미국에 가서 '오, 렌, 지' 아니라 '아, 린, 지'라고 골백번을 얘기해도 못 알아듣는다. 미국에서 '가죽질의 기름기를 함유한 껍질과 안쪽의 즙이 많은 과육으로 이루어진 감귤 종류의 하나'라는 뜻으로 말을 했는데 상대방이 알아들었다면 순전히 로마자로만 써서 표기하건대 a(o)rinj라고 발음했을 것이다. 그나마 a(o)에 악센트가 있어야지 i에 강세를 주었다면 역시 잘 못 알아들었을 것이다.

■이런 엉뚱한 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영어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다. 영어를 위해서는 한국어로 생활하는 사람의 표기법까지도 뜯어고쳐야 한다는 '오버' 내지는 범주 착오의 오류다.

둘째 언어학적 무지다. 어느 나라에나 있는 외래어 표기법은 그 나라 어문 생활을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하자는 규정이지 남의 나라 말 발음을 정확히 표기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아린지'라고 쓰면 세 음절이다. orange는 두 음절이다. 한글로 아무리 orange에 가깝게 쓰려고 해도 안 되는 일이다.

■그 이유는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바뀔 때 해당 언어의 음운에 맞게 일어나는 변형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본 사람들은 McDonald를 마쿠도나루도로 적는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영어로 대화할 때 마쿠도나루도라고 하지는 않는다.

영어 발음과 음가를 한글로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는 것은 한국어 발음과 음가를 로마자나 기타 문자로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문자는 그 나라 음운과 발음을 제대로 표기하기 위한 필요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중국 문자의 경우는 음가에 가까운 외국어 표기가 거의 불가능한 경우이다. 표음문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코카콜라를 可口可樂(가구가락)이라고 표기함으로써 '커코우커러'라는 식으로 어지간히 발음을 나타내고 '입으로 즐길 만하다'는 견강부회식 의미까지 곁들였다는 점에서 절묘하다고 평하기도 하지만 거의 안쓰러운 수준이다.

그런다고 중국인이 영어를 못 하느냐? 천만의 말씀. 영어로 말할 때는 당연히 CocaCola라고 정확히 발음한다. 외래어 표기법은 죄 없다. 영어 발음을 제대로 못한 사람 잘못이다. 영어 때문에 이런 난센스까지 겪어야 하다니 서글프다.


2007-02-01, 한국일보
이광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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