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궁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이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월17일 석궁 사건을 일으킨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가 서울동부지법 앞에서 취재진에게 둘러싸여 있는 모습. (사진/ 연합)
▲ 김세균 서울대학교 교수(오른쪽에서 두 번째)를 비롯한 시민단체 대표들이 3월3일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석궁 사건의 진실규명과 법원의 공정한 판결을 촉구하는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사진/ 한겨레 신소영 기자)

“석궁 사건에 대해 중형을 선고한 것은 부당하다. 석궁은 의도적으로 발사된 것이 아니라 우발적으로 발사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3월3일 서울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열린 ‘석궁 사건의 진실규명과 법원의 공정한 판결을 촉구하는 사회 각계 인사 모임’ 주최의 기자간담회에서 김세균(60) 서울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이 자리에는 김한성 전국교수노조 위원장과 이창수 새사회연대 대표, 우영숙 공무원노조 부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김 교수는 “김명호 교수 석궁 사건은 다친 사람이 판사라는 것에 괘씸죄를 적용한 비이성적 판결”이라며 “법원은 불충분한 증거를 인정해 죄를 성립시켰다”고 주장했다.

상해 사건에 징역 4년 선고받아

김명호(52) 전 성균관대 교수는 지난해 1월 박홍우(56)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석궁으로 쏴 다치게 한 혐의(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로 같은 해 10월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현재 항소심을 진행 중이다. 당시 검찰은 김명호 전 교수에게 10년형을 구형했다. 통상의 상해 사건에서 초범이라면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3년이 선고되는 관례에 비춰보면 이례적인 일이다. 최근 재판부가 인정한 증거에 대해 새로운 의혹이 제기되면서, 석궁 사건의 진실 공방이 다시 불붙고 있다. △피해자이자 핵심 증인인 박홍우 부장판사의 진술이 번복되고 있는 것 △박 판사가 맞았다는 석궁 화살이 사라진 것 △박 판사가 당시 입고 있던 와이셔츠에 혈흔이 없는 것 등이 새로운 쟁점들이다. 사법부가 김 전 교수의 유죄를 확신하고 재판을 몰아가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과연 지난해 1월15일 김명호 전 교수와 박홍우 부장판사 사이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던 걸까. 진실은 무엇일까.

당시 언론 보도와 수사보고서, 공판 기록, 증인신문 조서 등을 종합해보면 그날 오후 6시30분께 박홍우 부장판사는 김명호 전 교수가 쏜 석궁을 맞고 병원으로 후송됐다. 판결에 불만을 품은 교수의 소행이라는 보도가 잇따랐다. 김 전 교수는 1995년 1월 자신이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성균관대의 대학입시 본고사 수학 문제에 오류가 있다는 주장을 제기한 뒤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2005년 3월 서울 중앙지법에 ‘교수지위 확인소송’을 내지만 1심에서 패소하고 이어 항소심도 기각당했다. 석궁 사건이 일어난 것은 ‘항소 기각’ 결정이 내려진 직후였고, 박홍우 부장판사는 항소심 담당 판사였다. 김명호 전 교수는 현장에서 검거됐고 석궁과 화살 등이 압수됐다.

화살이 발사될 당시 사건 현장에는 김명호 전 교수와 박홍우 판사 둘뿐이었다. 경비원 김아무개(63)씨와 박 판사의 운전기사 문아무개(33)씨는 화살이 발사된 뒤 두 사람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 현장으로 달려왔다. 피의자 김 전 교수를 제외하면 박 판사는 유일한 증인이다. 김 전 교수는 사건 발생 이틀 뒤인 17일 고법 부장판사를 석궁으로 쏴 살해하려 한 혐의(살인미수 등)로 구속됐다. 박홍우 판사의 증언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박 판사는 사건 당일 서울대병원에서 이뤄진 경찰 조사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중 우측 계단에서 누가 ‘박홍우 판사’라고 불러 돌아보니 김 전 교수가 1.5m 떨어진 계단 위에서 조준해 석궁 화살을 발사했다”고 진술했다. 조준해서 석궁 화살을 발사했다는 것은 살해 의도가 있었다는 말이 된다. ‘사법부를 겨눈’ 석궁의 위력은 엄청났다. 서울 동부지검은 다음날인 18일 이례적으로 김 전 교수에게 “기자들과 접촉해 수사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접견금지 조처’를 내렸다. 김 전 교수는 기자는 물론 외부 인사를 일절 만날 수 없게 됐다. 대법원도 바삐 움직였다. 19일 비상 전국법원장회의를 열고 석궁 사건을 사법부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자 위협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검찰과 법원의 이같은 강경한 초기 조처와 달리 검찰은 지난해 2월8일 김 전 교수를 살인미수 혐의가 아닌 상해 혐의(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로 구속 기소했다. 박홍우 부장판사가 진술을 바꿨기 때문이다. 박 판사는 지난해 1월25일과 2월2일 진행된 검찰 조사에서 “김명호 전 교수가 언제 석궁을 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화살이 배에 꽂혀 있었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구급일지에 “배에 맞고 튕겨져 나갔다”

최근 이와 같은 박 판사의 당시 진술을 뒤집는 또 하나의 증거가 공개됐다. 지난 2월28일 서울동부지법에서 진행된 항소심 4차 공판에서 공개된 소방 구급일지가 그것이다. 사건 당시 신고를 받고 출동한 서울 송파소방서 종합운동장 파출소 구급반장이 작성한 이 일지의 ‘구급대원 평가 소견란’에는 “피의자가 1~2m 전방에서 석궁으로 활을 쏘았다고 하며 활이 복부에 맞고 튕겨져 나갔다고 함”이라고 적혀 있다. 일지를 작성한 권아무개 구급반장은 <한겨레21>과의 전화 통화에서 “환자의 진술을 그대로 일지에 적었다”고 확인했다. “배에 맞고 튕겨져 나갔다”던 진술이 경찰 조사와 검찰 조사를 거치면서 각각 “활을 맞았다” “활이 배에 꽂혔다”로 바뀐 것이다.

박 판사의 진술이 이처럼 달라져온 것에 견줘, 김명호 전 교수의 진술은 일관됐다. 그는 최초 경찰 진술부터 “석궁 화살은 박 판사와 석궁을 잡고 실랑이를 벌이던 중 우발적으로 발사된 것”이라고 밝혔다. 김 전 교수는 3월5일 서울 성동구치소 접견실에서 <한겨레21> 취재진과 만나 “당시 석궁을 붙잡고 실랑이를 벌일 때 화살이 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화살이 발사된 것을 그때 알았다”고 말했다. 박 판사가 화살에 맞았느냐는 질문에 “박 판사가 비명을 지르지도 않고 손에 힘을 빼지도 않아 당연히 빗나간 것으로 생각했다”며 “최악의 경우 스쳤을 거라는 생각은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박 판사의 진술이 엇갈리고 있는 것을 보면 맞지 않은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조준해서 화살을 쐈느냐, 실랑이 도중 우발적으로 발사됐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고의성이 인정되면 상해죄에 해당되지만 우발적이라면 과실상해죄에 해당한다.

박홍우 판사가 화살을 맞았다면, 그 화살은 이 사건의 중요한 증거다. 그러나 경찰이 현장에서 수거해갔다는 ‘발사된 화살’은 현재 오리무중이다. 박 판사는 지난해 8월22일 1심 7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몸을 일으켜세울 무렵에 화살 하나를 잡았다”며 “화살은 부러져 있었다”고 진술했다. 당시 현장에 달려갔던 경비원 김아무개씨 역시 “박 판사가 ‘갖고 있으라’며 부러진 화살 하나를 줬다”고 <한겨레21> 취재진에게 밝혔다. 김씨는 이 부러진 화살 1개와 김 전 교수 주머니에 들어 있던 정상적인 화살 2개를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게 넘겨줬다고 한다. 그러나 경찰의 수사보고서에는 부러진 화살은 없고, 정상적인 화살 3개의 사진만 실려 있다. 보고서를 작성했던 잠실지구대 안아무개 경위는 “수사보고서는 당시 직원들이 현장에서 수거해온 물품을 그대로 사진을 찍어 작성했다”고 말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김명호 전 교수의 항소심 변론을 맡고 있는 박훈 변호사는 “박 판사와 경비원이 동일하게 부러진 화살의 존재에 대해 증언하고 있고 그것을 경찰에게 넘겼다고 하는데 화살이 사라진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화살 케이스에 있는 나머지 화살의 개수도 의문을 낳고 있다. 경찰은 이를 6개로 파악했지만, 김 전 교수 쪽은 7개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 변호사는 “부러진 화살 대신 케이스에 들어 있던 정상적인 화살 1개를 빼 압수 조서를 작성한 게 아닐까 싶다”며 ‘증거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그 이유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이하 국과수) 감정 결과 압수된 3개의 화살에서 혈흔이 검출되지 않은 사실을 들었다. 만약 3개의 화살 중 1개의 화살이 박홍우 판사의 배에 ‘맞고 튕겼든’ ‘꽂혔든’ 박 판사가 이로 인해 피를 흘렸다면 혈흔이 검출되는 게 마땅하다는 것이다.

판사는 “피해자 혈액을 어떻게 확보하냐”

박홍우 판사는 당시 속옷 상의, 내복 상의, 와이셔츠, 조끼, 양복 상의 순으로 옷을 입고 있었다. 증거로 제출된 박 판사의 옷에는 화살이 관통한 구멍이 나 있었다. 속옷 상의와 내복 상의 그리고 조끼에는 구멍 주위로 피도 묻어 있었다. 그러나 와이셔츠는 깨끗했다. 화살이 옷을 뚫고 들어가 상처를 입혔다면 피는 속옷에서부터 조끼까지 순차적으로 배어나야 한다. 그런데 유독 조끼 안에 입은 와이셔츠 구멍 주위에만 피가 묻어 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김명호 전 교수 쪽은 ‘증거 조작 의혹’을 제기했으나, 지난해 10월15일 재판부는 “증거물이 조작됐다고 볼 아무런 자료가 없는 이상 이와 같은 사실만으로 각 증거물이 조작됐다고 볼 수 없다”면서 김 전 교수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그렇다면 나머지 옷에 묻은 혈흔은 박 판사의 혈흔이 맞을까? 국과수는 사건 발생 15일 뒤 공개한 유전자 분석 감정에서 증거로 제출된 박 판사의 옷에 묻은 혈흔에 대해 “동일한 남성의 유전자형이 검출됐다”고만 밝혔다. 박훈 변호사는 “경찰이 유전자 분석 감정을 의뢰하면서 박 판사의 혈액 샘플을 보내지 않아 각 혈흔이 단순히 ‘동일 남성의 것’이라는 결과만 얻었다”며 “그 혈흔이 박 판사의 것이라는 증거가 없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해 12월10일 열린 항소심 2차 공판과 올해 1월28일 열린 3차 공판에서 혈흔 검증 신청을 제기했지만 두 번 모두 기각당했다. 지난해 2차 공판의 이아무개 재판장은 박 변호사의 혈흔 검증 요청에 “1심에서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 (그런) 주장을 하냐”며 “그것 없이도 이번 재판을 할 수 있다. 다른 증거 신청을 하라”며 기각했다. 이 재판장은 올해 3차 공판에서도 “피해자의 혈액을 어떻게 확보하냐”며 기각 결정을 내렸다. 박 변호사는 “혈액 확보는 법원의 권한인데, 피해자에게 피를 달라고 하든지 압수 수색 영장을 발부해서 집행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을 폈으나, 이 재판장은 “적절하지 않기 때문에 기각한다”고 혈흔 검증 요청을 재차 거부했다.

<한겨레21>은 취재 과정에서 박 판사가 증거로 제출한 옷이 사건 현장에서의 상태가 아닐 수 있다는 진술을 들었다. 박 판사의 아파트 경비원 김아무개씨는 3월5일 <한겨레21> 취재진을 만나 “사건이 일어나고 이틀 뒤 출근했을 때 박 판사의 어머니가 ‘옷을 빨기 위해 물에 담갔더니 피가 흥건하게 배어나와 가슴이 떨렸다’는 말을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내가 그것은 증거인데 빨면 안 된다고 하니 박 판사의 어머니가 ‘내가 그런 걸 어떻게 알아. 내놨으니까 빨았지’라고 했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박 판사의 옷은 수거 과정이 불분명하다. 박 변호사는 “누가 옷을 수거해갔는지 사실 조회를 신청했지만 검찰 쪽으로부터 ‘모르겠다’는 최종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박 판사 아파트 경비원의 새로운 증언

석궁 사건과 관련해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지만 새로운 의혹이 제기되고, 궁금증은 커지고 있다. 박 판사는 왜 진술을 바꿨을까. 사라진 화살은 어디 갔을까. 혈액은 누구의 것일까. 옷을 빨았다면 증거로 제출된 피 묻은 옷은 무엇일까. <한겨레21>은 이와 관련해 박홍우 부장판사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지만 박 판사는 “그 사건에 대해서는 말하기 곤란하다”고만 밝힌 뒤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 한겨레21 김경욱 기자dash@hani.co.kr
2008-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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