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갯소리로 이명박 당선자 압승의 일등 공신은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한다. 사실 대선 결과가 알려지자마자 언론은 노대통령에 대한 '응징'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이번 대선은 이명박 당선자에 대한 호불호보다 노 대통령에 대한 증오가 선거 결과를 갈랐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권이 BBK 등을 통해 이 후보의 대통령으로서의 자질 공방에 아무리 불을 지펴 보려고 해도 국민들은 끄떡도 안 했다. 노 대통령을 응징할 수만 있다면 막대기를 꽂아 놓아도 뽑을 수 있다는 태도였다.

사람들이 왜 이토록 노무현을 증오하는가?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그가 박정희나 전두환처럼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것도 아니고, 천문학적인 돈을 해먹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김영삼처럼 나라 살림을 거덜낸 것도 아니다. 대선기간 동안 후보들이 이구동성으로 경제를 살리겠다고 목청을 높였지만 우리 경제가 왕창 죽어버린 것은 아니다. 거시경제의 지표는 좋아졌다.

양극화와 부동산 실책을 든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실책이다.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공도 많았다. 정치 사회부문의 권위주의는 사라졌고 지난 5년 동안 국가의 기본과 기업체질을 튼튼히 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갈 성장의 잠재력을 많이 축적시켜 놓았다. 과거보다는 대외 신인도가 많이 높아져 수출시장에서도 주식 시장에서도 그 결실이 하나 둘 나타나고 있다. 돈 적게 드는 선거도 이뤘다.

그러니 단순히 실책만으로 정도를 넘어서는 증오를 설명하기는 무언가 부족하다. 노대통령에 대한 비난 이상의 증오, 살기마저 느껴지는 분노는 그가 우리 역사의 잊고 싶은 그 역린(逆鱗)을 끊임없이 들추면서 우리를 괴롭혀 온 데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노 대통령은 집권 5년 동안 보기 싫은 진실, 이른바 '불편한 진실'을 보도록 끊임없이 들추어 왔다.

그 문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친일 청산의 문제이고, 그것에 기생하고 있는 대한민국 지배계층의 정통성의 문제이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왜곡된 의식의 문제이다. 그것이 실타래처럼 얽혀서 이념 문제가 되고 남북 문제가 되어 우리의 발목을 꼼짝달싹 못하도록 만들어 왔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쉬쉬하는 침묵의 카르텔이었다.

노무현 집권으로 그 카르텔에 금이 가면서 목하 대한민국의 지배계층의 기원과 본성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었고 그 과정에 지배계층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특단의 조치까지 감행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탄핵에서 다시 살아났지만 그때부터 노무현은 고립되었고, 여당조차도 더 이상 아군이 아니었다.

정동영의 실용주의는 바로 그 이탈의 신호탄이었다. 사실 여당이라 해도 아군인 척은 했지만 아군인 적은 없었다. 그들도 엄연한 지배계층이었고 침묵의 카르텔의 일원이었다. 대선에 패배하고 난 뒤 모두가 노무현 탓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태도를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정·언·관의 융단 폭격 속에 민심의 이반도 함께 일어났다. 왕조 시대라면 이미 탄핵으로 반정(反正)이 완성된 것이다.

불편한 진실은 지배계층 만의 문제도 아니다. 사실 어느 누구도 우리의 역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노무현 자신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는 역사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이다. 그 어두운 과거, 그 불편한 진실을 가능하면 대면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끊임없이 대면시키고 그래서 우리의 심기를 건드려 온 것 그것이 노무현 정부 5년의 일이었다. 그것을 없는 듯이 덮고 그 위에 무엇을 쌓아도 결국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것, 그것이 그의 신념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한두 번도 아니고 자꾸만 들추어내는 그 불편한 진실은 모두의 울화통을 터지게 했다.

이명박 정부의 출현은 불편한 진실을 이제 그만 덮자는 선택으로 보인다. 정치 경제 사회에서 실용을 앞세워 민생을 살리겠다는 이명박 당선자의 입장은 "이제 좀 조용히 살고 싶다. 입 좀 다물고 돈만 좀 벌게 해 주라"는 다수의 요구와 잘 부합한다.

어두운 진실을 밝은 햇빛 속에 드러내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노무현 정부 5년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지금은 모든 것이 퇴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단지 순탄한 대한민국호의 순항을 위해 호흡조절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세속적 정치가이면서 성직자나 학자들조차 감히 하지 못한 진실에 대한 열정과 도전으로 "임금님이 발가벗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었다. 역사는 그를 잊지 않을 것이다.

2007.12.27, 국제신문
김미선 수석 논설위원 mskim@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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