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법무부 지원을 받아 ‘법질서 확립’ 캠페인을 시작한다는 소식이다. 방송사들이 그 동안 금연 캠페인 등을 벌여온 만큼 이런 공익광고 자체를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고 본다. 그럼에도 주목하게 되는 것은 이 공익광고의 시기와 내용이다.

지금 언론은 어떤 상황인가. 전국언론노조는 이명박 정권의 미디어 관련법안 개정 강행을 막기 위해 총파업에 돌입해 있다. 재벌과 족벌신문들에 지상파 방송 진출을 허용하는 것이 여론독과점을 초래해 민주주의에 심대한 위협이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 정권은 이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강경 대처하겠다는 입장이다. 방송파업을 ‘밥그릇 지키기’로 폄훼하는 족벌신문들의 논조도 여전하다. 이 대통령은 “방송 통신은 경제논리로 봐야 한다”는 발언으로 여기에 가세했다.

KBS의 법질서 캠페인을 액면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분명하다. 올 해 방송계 최대 이슈 중 하나는 KBS의 ‘변질’이었다. KBS는 사장 강제 교체 후 비판적 프로그램 개편, 대통령 정례연설 편성 등 현저하게 정치적 중립성을 잃은 모습을 보여왔다. 이를 관영방송의 부활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KBS가 법질서 캠페인을 벌인다는 소식은 암울했던 30년 전 ‘땡전뉴스’의 기억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시청자들은 이제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법을 지키라’는 공익광고를 접해야 할 처지다.

더욱 염려되는 것은 이 독선적 정권이 주도하는 법질서 캠페인 독려가 ‘악법도 법이다’라는 발상의 소산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은 그 동안 수없이 법질서와 국가정체성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법질서와 국가정체성이란 것은 정리가 안 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령 복면금지를 규정한 집시법 개정안이나 4·19혁명을 데모로 표현한 교과부 자료, 김구를 테러리스트라고 쓴 대안 교과서에 대해 그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다.

KBS는 지난 여름 언론노조를 탈퇴해 파업에 동참할 의무는 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 방송사가 파업에 관한 방송을 외면한 채 집권세력의 구미에 맞는 캠페인에 나서는 것을 보는 우리의 심정은 착잡하다.


2008-12-29, 경향신문

한정욱

2008.12.29 09:44:25

이탈리아가 어떤 꼴이 났는가를 보면, 우리가 따라갈 길이 보여 착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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