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광고주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인 이들을 검찰이 기소하였다. 독자들이 언론사에 대하여 절독 운동을 벌이는 것은 합법이지만, 언론사 광고주를 상대로 한 불매운동(이른바 2차 불매운동)은 미국에서도 위법하다는 주장을 검찰이 거듭 내세우고 있고, 얼마 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비슷한 이유로 관련 게시물 삭제 결정을 내린 적도 있다. 미국 사례가 중요하긴 한 모양이니, 어떤 사례가 있는지 좀 자세히 보자.

캘리포니아의 지역 신문인 <풋힐 타임스>는 보수 성향의 무료 신문이다. 이 신문을 못마땅히 여긴 한 환경단체는 회원 소식지에서 다음과 같이 울분을 토로하였다. “풋힐 타임스는 신문이라 부를 가치도 없다. 이 누더기는 지난 선거에서 (보수진영 인사) 당선에 주요한 역할을 한 이래, 명백한 사실마저 무시하고, 부정확한 보도를 일삼으며, ‘기사’라는 미명 아래 편집자의 의견을 적나라하게 내세워 왔다.” 이어 이 환경단체는 “풋힐 타임스에 광고를 싣는 광고주들을 접촉하는 것은 어떨까요? 언론의 자유도 좋지만, 악의적이고 무책임한 저널리즘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설마 그런 신문에 광고하는 기업의 제품을 팔아주기를 원하지는 않겠지요?”라며, 풋힐 타임스에 광고를 실은 80여 광고주의 명단과 연락처를 게재함과 동시에 이렇게 안내하였다. “이 명단은 귀하가 풋힐 타임스 광고주들을 접촉하기를 원하는 경우 귀하의 편의를 위해서 제공하는 것입니다.”

풋힐 타임스는 이 환경단체가 자사의 영업을 방해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피고로 지목된 환경단체가 원고 주장은 재판할 필요도 없이 당장 배척되어야 한다며 소 각하를 신청하였으나, 제1심 법원은 그래도 재판은 해 봐야 한다는 이유로 피고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결정에 대하여 피고가 항고하였으며,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은 1심 법원의 결정을 전원일치로 뒤엎고, 피고의 손을 들어 주었다. 즉, 원고의 주장은 재판해 볼 건덕지도 없이 아예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원의 논거는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첫째, 불매운동의 이유가 순전히 경제적인 것이라면 경쟁법 등이 비중 있게 고려되어야 하므로 불매운동을 단속할 근거가 상대적으로 많겠으나, 정치적 이유로 행해지는 불매운동에 국가가 개입하고 규제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와 정치활동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크므로 허용될 수 없다. 둘째, 언론사가 편집 방향과 논조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어야 함은 당연하지만, 독자 또한 언론사의 편집 정책을 변경시키고자 불매운동 등의 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 셋째,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는 공권력에 의한 침해를 뜻하는 것이므로, 독자나 시민이 언론사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법리는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언론사 광고주에 대한 독자의 불매운동 때문에 언론사가 누려야 할 표현의 자유가 침해된다는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 넷째, 광고주에 대한 독자의 불매운동이 언론사에 경제적인 압박을 가하게 된다고 하지만, 언론사에 대한 경제적 압박은 이처럼 독자만이 가하는 것이 아니다. 광고주 스스로도 광고 중단 등의 수단으로 언론사를 압박하여 편집 정책에 영향을 끼치려 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므로, 유독 독자에 의한 경제적 압박만을 위법하다고 볼 수는 없다.

이 사건(Environmental Planning & Information Council v. Superior Court, 36 Cal.3d 188) 판결은 1984년에 나온 이래 언론사와 관련된 소비자 불매운동에 대한 중요한 전거가 되고 있다.

도대체 한국 검찰이 참조하였다는 ‘사례’라는 것이 어떤 사례였는지, 참조할 만큼 사안의 유사성이나 있는지, 필자로서는 알기 어렵다. 한국 사례라면 누구든지 그 내용을 읽어보고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외국 사례를 언급하며 자기 주장을 내세우면서, 정작 그 내용을 확인할 분명한 전거를 제시하지 않고 얼버무리는 행위는 왠지 미덥지 못하다.


김기창 고려대 법대 교수
2008-09-04,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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