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언론의 자유’라는 화두를 붙잡게 만드는 세월이다. 어제 이 정권이 끝내 정연주 KBS 사장을 해임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해임안에 서명하면서 “KBS도 이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필시 KBS가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뜻이리라. 이 정권 담당자들은 KBS가 노무현 정권의 ‘코드인사’로 임명된 정연주 사장에게 볼모로 잡혀 좌편향 편파방송을 했다고 주장해 왔다. 따라서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을 국민의 품으로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 일관된 입장이다.

이 시점에서 국민의 방송, 국민의 품이란 말 등에서 즐겨 동원되는 ‘국민’의 의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애국심이나 민족주의의 경우에 종종 볼 수 있듯 국민이라는 말도 권력의 본심을 감추기 위해 자의(恣意)적으로 이용된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권이 말하는 ‘국민의 방송’은 과연 무엇인가. 또 이런 방식으로 권력기관을 총동원해 방송을 ‘국민의 품’으로 돌려준다는 일이 가능한 것인가.

이 정권의 길지 않은 행적을 돌아보면 답은 어렵지 않다. 이명박 정권은 선대위의 상임고문 최시중씨를 방송통신위원장에 임명한 것부터 시작해 스카이라이프 사장, 아리랑TV 사장, YTN 사장 등을 이 대통령 후보 시절 언론특보로 채워왔다. 그 과정에서 무리한 코드인사와 ‘낙하산 인사’가 자행됐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고작 몇 달 새에도 코드인사를 일삼아 온 이 정권이 “코드인사를 바로잡기 위해” 정연주 사장을 해임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진정성을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이 정권은 이번 해임에 정치적 공방은 있을 수 있지만 법리적 문제는 없다며 해임의 합법성을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정 사장은 “대통령에게 해임권이 있다면 그냥 해임하면 될 일을 왜 권력기관을 총동원했느냐”고 묻고 있다. 이 정권이 감사원, 검찰, 국세청, 방송통신위를 동원한 것은 사전 각본에 의한 억지 해임임을 입증한다고 하겠다. 검찰은 정 사장 해임에 보조를 맞춰 이르면 이번주 중 영장을 발부받아 강제 구인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점쳐진다. 최고의 사정기관인 검찰이 정권의 시녀가 됨으로써 공영방송의 사유화에 앞장서는 모습이다.

우리는 사회 제분야에 걸친 민간 독재의 조짐 속에서 언론도 매우 절박한 기로에 섰음을 통감한다. 바로 언론 자유의 심각한 후퇴다. 이는 이미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정권이 탈법적으로 신뢰도·영향력 1위라는 공영방송 사장을 갈아치우는데도 족벌신문들은 환영 일색이다. 양측의 동종교배적 성격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이 나라 언론의 장래를 위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시간을 거슬러 이명박 정권판 ‘땡전뉴스’를 바라는 것인가.


2008년 08월 12일,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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