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지금 유례를 찾기 힘든 위기에 빠져 있다. 국가 최고 수사기관이자 유일한 소추기관으로 마땅히 지녀야 할 권위와 신뢰가 크게 손상당한 탓이다. 주권자인 국민이 드러내보이는 검찰 불신은 매우 크다. 절대다수 국민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정치보복 탓이며, 그 주된 책임은 검찰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 수사가 공정하지 않았다는 국민 역시 절대다수다. 신뢰를 잃은 검찰이 설 땅은 없다.

검찰이 사법기구라기보다 권력의 도구로 비치게 됐다는 점은 더 심각한 문제다. 우리 법체계는 검사를 공익의 대변자로 상정하고 있지만, 실제 그리 생각할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검찰이 권력의 뜻을 좇아 표적수사와 청부수사를 예사롭게 한다는 비난은 진작부터 공공연했다. 이번 일로 그런 인식은 더 굳어졌다. 이제는 검찰이 스스로 권력기관으로 군림하려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견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당연하다.

이런 마당에 검찰이 ‘우리가 뭘 잘못했느냐’는 식으로 반응해선 안 된다. 지금은 이번 일에 대한 검찰 책임을 묻는 것을 넘어, 수십년 묵은 검찰의 악폐를 제대로 뜯어고쳐야 할 때다. 검찰도 스스로 쇄신에 나서야 한다. 이에 저항하다 더 큰 화를 자초할 일이 아니다.

그 출발은 당연히 잘못을 드러내는 것부터다. 노 전 대통령 수사가 표적수사라는 논란에 대해선 특별검사를 세워서라도 정확한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표적수사를 이끌었거나 불필요한 모욕주기 따위 월권을 저지른 이들에 대한 책임 추궁도 따라야 한다. 대통령도 이 부분에 대해 사과를 주저해선 안 된다.

근본적 쇄신은 더 중요하다. 이번 일 말고도 검찰이 애초 수사 대상이었던 혐의와는 무관한 혐의로 수사 대상자를 먼저 구속하거나 언론에 혐의를 슬쩍 흘리는 따위의 떳떳지 못한 압박수단을 동원한 일은 흔히 있었다. 그런 무리한 수사로 고초를 겪은 끝에 결국 무죄로 드러난 이들도 한둘이 아니다. 법치주의의 근본 정신은 범죄 처벌을 앞세우다 절차적 정의가 무시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하물며 정치적 목적 탓에 그리한다면 사법 정의는 찾을 길 없게 된다. 검찰은 별건구속 따위를 관행이라는 핑계로 더는 정당화하지 말아야 한다. 법원도 이런 시도에 대해선 불구속 수사와 재판을 확대하는 등 피고인의 방어권을 적극 보장할 방안을 강구하는 게 옳다.

검찰 권력을 견제할 제도적 방안 마련은 가장 시급한 문제다. 한국의 검찰에는 제 뜻대로 기소하고 말고를 정할 수 있는 독점적 기소권한이 있다. 그 조직은 상명하복의 검사동일체 원칙을 뼈대로 하고 있다. 대통령은 그 수장인 검찰총장을 국회 청문회 결과에 관계없이 뜻대로 임명할 수 있다. 검찰의 무한정한 힘을 권력이 멋대로 쓰는 데 아무런 견제장치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정치검찰’ 시비도 여기서 비롯된다.

이를 바로잡자면 수사, 특히 권력형 비리 수사를 맡은 조직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확보해야 한다. 검찰과는 별도로 고위 공직자 비리 수사를 맡을 전담기구를 설치하는 것도 그 한 방법이다. 검찰총장 직속인 대검 중수부 등 지금의 비리 수사 체제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서 자칫 표적수사나 기획수사 따위로 변질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검찰총장 선임위원회를 두거나 검사 인사제도를 혁신하는 것도 권력의 검찰 사유화를 막는 방안이 될 수 있다. 공무원의 일부 범죄 등에 한정된 지금의 재정신청 대상을 모든 범죄로 전면 확대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런 쇄신이 정부나 검찰만으로 이뤄지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그리하다 좌초한 일도 여러 차례다. 법조계 말고도 여야와 학계, 시민사회까지 모두 머리를 맞대도록 해야 한다.


2009-06-02,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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