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저녁 많은 시청자들이 TV 앞에서 씁쓸함을 맛보았을 것이다. KBS, MBC, SBS 등 3개 공중파 TV가 모두 <밴쿠버 올림픽 선수단 환영 국민대축제>를 동시 생중계했다. 대형 태극기가 화면 가득 비치고 인기 댄스가수들은 춤추고 노래했으며 올림픽 참가 선수들은 약간은 지친 얼굴로 웃음을 지었다. 지난 겨울 올림픽은 위대했다. 사람들은 그 기간 내내 우리 선수들의 선전에 충분히 환호하고 감격했다. 이 때문에 더러 그 기억을 다시 반추하는 것이 식상할 법도 했다. 그러나 채널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보아도 똑같은 쇼 프로그램뿐이었다.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이른바 주말 황금시간대 방송이 그랬다.

당연하게도 3개 방송사에는 시청자들의 채널 선택권을 무시한 전파낭비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겨울 올림픽의 성과는 치하할 만하다. 그렇지만 방송 3사가 정규 프로그램을 바꿔가며 일제히 그 축하 쇼를 생중계할 일은 아니었다. 시청자들의 반응이 이를 입증했다. 3사 시청률은 KBS 1TV 6.6%, SBS 4.3%, MBC 3.9%로 다 합쳐도 14.8%에 불과했다. 덕분에 유일하게 같은 시간대에 정규방송을 내보낸 KBS 2TV의 오락프로 <해피선데이>가 처음으로 시청률 30%를 넘는 반사이익을 누렸다.

궁금한 것은 채널권 박탈, 전파 낭비, 낮은 시청률 등 나쁜 결과를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공동 생중계가 감행된 저간의 사정이다. 우선 정치적 입김이 개입됐음을 의심할 수 있다.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은 올림픽 기간 중 이정수의 쇼트트랙 금메달 소식을 KBS가 단신 처리한 데 대해 아쉬움을 표시했다고 한다. 이어 그는 이명박 정권 2년을 맞아 “동계올림픽에서 기적 같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에 대해 대통령 국정철학의 결실이라고 엉뚱한 해석을 내리기도 했다. 이런 사고구조가 무리수를 유발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은 3사 생중계가 외압보다는 자발적 ‘알아서 기기’의 소산일 가능성이다. 우리는 지금 2개 공영방송마저 대통령의 심기를 우선시하는 형태의 국영방송으로 변질하고 있음을 목도한다. 그 연장선에서 뒤늦게 KBS, MBC가 ‘알아서 기기’로 생중계를 결정한 것이라면 정말 우려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이 정권의 방송장악이 완결상태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민주주의 위기의 증좌다. 자꾸 1980년대 방송의 추억이 떠오르게 만드는 현실에서 이 같은 우려는 결코 비약이 아니다.


2010-03-09, 경향신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sort
163 기사/보도 최동원-손민한, 기막히게 닮은 꼴 file 2009-12-12 2390
162 사진관련 총알 사이로 ‘셔터의 진실’을 쏘다 file 2006-05-12 2376
161 좋은글 산을 넘으면 또다른 산이 2005-06-02 2373
160 기사/보도 [사설] ‘정치검찰’의 막장 추태 2010-04-09 2373
159 좋은글 세 가지 질문 2005-06-02 2367
158 좋은글 내가 있어야 할 곳 2005-06-02 2366
157 기타 고독한 항해 2009-07-10 2355
156 기타 로이스터가 질 수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 file 2009-10-07 2352
155 좋은글 <네 멋대로 해라> 대사 file [1] 2005-06-02 2346
154 좋은글 [사물과 사람 사이] ‘녹색성장’시대의 케이블카는? file 2009-07-31 2346
153 좋은글 행복해지기를 기다리지 말고 2005-06-02 2343
152 좋은글 오바마의 연설과 그 뒤에 숨은 텍스의 진실 그리고 우리는? 2008-03-21 2327
151 좋은글 진중권 "전여옥 역겹다, 최진실법 걸리나?" file 2008-10-07 2324
150 좋은글 연민과 책임감 2005-06-02 2322
149 좋은글 싫은 일이 있었을 때 2005-06-02 2314
148 좋은글 대한민국이 3류국가인가  2008-03-22 2313
147 좋은글 괘종시계 태엽을 감으며 file 2006-09-22 2306
» 기사/보도 [사설] 방송 3사의 역주행 어디까지 가려나 2010-03-09 2306
145 좋은글 삶에 고통이 따르는 이유 [1] 2005-06-02 2304
144 좋은글 [왜냐면] 광고주 불매운동 아무리 봐도 합법이다 2008-09-05 2304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