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나 소탈하고 시원시원한 웃음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을 것만 같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오늘 우리 곁을 떠난다. ‘새 시대의 맏형’으로 살려 했으나 결국 ‘구시대의 막내’로 이 시대의 온갖 모순을 한 몸에 떠안고 영영 우리 곁을 떠나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힘겹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희망이었다. 봉하마을 시골에서 태어나 개구리 잡고 진달래 따 먹으며 자란 그는 우리 모두의 어린 시절 바로 그 모습이었다. 그는 지지리도 가난했던 학창시절을 꿋꿋이 이겨내며, 학벌 없고 배경 없는 보통사람도 떳떳이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준 사람이었다.

그는 이 시대의 모순에 정면으로 맞선 투사였다. 군사독재 시절엔 최일선에 서서 최루탄을 뒤집어쓰고, 지는 싸움인 줄 뻔히 알면서도 지역감정을 깨부수기 위해 온몸을 던졌다. 장인의 부역 문제가 나오자 “그럼 내 아내를 버리란 말이냐”며 그 지긋지긋한 ‘레드콤플렉스’를 한숨에 날려버리기도 했다.

그는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을 위한 서민 대통령이었다. 그는 낮은 곳으로 내려와 아프고 힘든 이들을 토닥거려줬다. 기득권층보다는 사회적 약자를,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을, 수도권보다는 지역을 더 생각하는 정책적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모든 권위를 내던지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했던 사회개혁가였다. 그는 검찰권력을 포기하고, 언론권력과 타협하지 않고, 수도권 기득권층과의 일전을 불사했다. 그런 싸움이 자신에게 불리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이 옳은 길이라 믿었기에 뻔히 손해 보는 줄 알면서도 바보같이 그 길을 갔다.

그는 마음씨 좋은 우리의 이웃이었다. 고향에 내려간 뒤 밀짚모자를 쓰고 손녀를 태운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는, 동네 슈퍼에서 담배 한 대 꼬나물고 앉아 있는 그 모습은 영락없는 옆집 할아버지였다.

그런 그를, 고향에서 또 하나의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겠다는 소박한 꿈을 가졌던 그를 그대로 놔뒀으면 안 되는 것이었을까. 검찰과 보수언론, 그리고 이명박 정부는 그의 그 소박한 삶마저 철저히 짓밟아버렸다. 그 과정에서 그가 느꼈을 치욕과 좌절을 생각하면 방관자로 뒷짐 지고 있었던 우리가 한없이 부끄럽고 참담해진다. 그가 떠난 뒤에야 그것을 깨달은 우리가 바보인지 모른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이제 외롭지 않다. 부엉이바위 위에서는 혼자이고 힘들었겠지만 아래로 내려온 뒤에는 모두가 함께하고 있으니 말이다. 봉하마을에서, 대한문 앞에서, 서울역에서, 전국 방방곡곡에서 국민들이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불같이 살다가 뜨겁게 삶을 마감한 그는 우리 모두를 바보로 만들고 떠난다. 그 소탈한 웃음을 지으며 편안히 가기 바란다. 그는 떠나지만 ‘바보 노무현’은 영원히 국민과 함께할 것이다. 두 손 모아 명복을 빈다.


2009-05-28,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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