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민의 뮤직박스 올드 & 뉴] ‘브로콜리 너마저’의 <2009년의 우리들>

1999년 말은 두려움과 설렘이 지배하던 시기였다. ‘밀레니엄 버그’라는 세기말적 묵시록에 대한 두려움과 리셋 버튼을 누르듯 모든 게 새로 시작될 것만 같은 설렘. 그 시절 난 다른 종류의 두려움과 설렘에 몸을 떨었다. 신문사 최종시험 낙방 뒤 절망에 허덕대고 있을 즈음 낭보가 날아왔다. 보결로 합격됐으니 새해부터 출근하라고. 설렘과 동시에 두려움이 밀려왔다. 다짜고짜 새벽 4시까지 경찰서로 가라고 했기 때문이다. 말로만 듣던 공포의 수습훈련이구나, 싶었다. 두려움을 떨쳐낸 건 엉뚱한 상상 덕이었다. 10년 뒤의 난 뭘 하고 있을까? 노련한 민완기자가 돼 있겠지?
“그때는 그럴 줄 알았지. 2009년이 되면,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너에게 말을 할 수 있을 거라. 차가운 겨울의 교실에 말이 없던 우리, 아무 말 할 수 없을 만큼 두근대던 마음. 우리가 모든 게 이뤄질 거라 믿었던 그날은, 어느새 손에 닿을 만큼이나 다가왔는데. 그렇게 바랐던 그때 그 마음을 너는 기억할까. 이룰 수 없는 꿈만 꾸던 2009년의 시간들.”

새해가 밝은 요즘 ‘브로콜리 너마저’의 <2009년의 우리들>이란 노래를 즐겨 듣는다. 모든 게 이뤄질 것만 같았던 2009년이 왔건만, 난 노련한 민완기자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도 행복하다. 브로콜리 너마저 1집 <보편적인 노래>의 예쁜 노래들을 들으며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는 건, 그 어떤 민완기자도 누리기 힘든 호사니까.


[2009.01.09 한겨레21 제743호]
서정민 <한겨레> 기자 blog.hani.co.kr/westmin


한정욱

2009.01.29 11:13:59

이 앨범 정말 대단하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sort
163 기사/보도 최동원-손민한, 기막히게 닮은 꼴 file 2009-12-12 2390
162 사진관련 총알 사이로 ‘셔터의 진실’을 쏘다 file 2006-05-12 2376
161 좋은글 산을 넘으면 또다른 산이 2005-06-02 2373
160 기사/보도 [사설] ‘정치검찰’의 막장 추태 2010-04-09 2373
159 좋은글 세 가지 질문 2005-06-02 2367
158 좋은글 내가 있어야 할 곳 2005-06-02 2366
157 기타 고독한 항해 2009-07-10 2355
156 기타 로이스터가 질 수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 file 2009-10-07 2352
155 좋은글 <네 멋대로 해라> 대사 file [1] 2005-06-02 2346
154 좋은글 [사물과 사람 사이] ‘녹색성장’시대의 케이블카는? file 2009-07-31 2346
153 좋은글 행복해지기를 기다리지 말고 2005-06-02 2343
152 좋은글 오바마의 연설과 그 뒤에 숨은 텍스의 진실 그리고 우리는? 2008-03-21 2327
151 좋은글 진중권 "전여옥 역겹다, 최진실법 걸리나?" file 2008-10-07 2324
150 좋은글 연민과 책임감 2005-06-02 2322
149 좋은글 싫은 일이 있었을 때 2005-06-02 2314
148 좋은글 대한민국이 3류국가인가  2008-03-22 2313
147 좋은글 괘종시계 태엽을 감으며 file 2006-09-22 2306
146 기사/보도 [사설] 방송 3사의 역주행 어디까지 가려나 2010-03-09 2306
145 좋은글 삶에 고통이 따르는 이유 [1] 2005-06-02 2304
144 좋은글 [왜냐면] 광고주 불매운동 아무리 봐도 합법이다 2008-09-05 2304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