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문화방송> ‘피디수첩’ 무죄선고 뒤 검찰이 보인 반응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반성은커녕 법원 탓만 하고 있다. 애초 기소부터 법률적으로 무리였지만 무죄판결 뒤의 주장도 억지와 강변 일색이다.
‘민사재판 결과를 형사재판이 뒤집었으니 잘못된 판결이다’라는 식의 논리부터 말이 안 된다. 그런 주장은 정치적 선동의 구호는 될지언정 법률가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민사와 형사 소송은 접근 방식부터가 다르다. 법원 지적대로, 반론·정정보도를 청구하는 민사소송에선 세세한 부분의 사실 여부를 개별적으로 따지는 반면, 처벌 여부를 정하는 형사재판에선 보도의 전체적인 내용으로 평가한다. 책임을 묻는 기준이 다른 만큼 형사재판에선 더 엄격한 증명이 있어야 한다. 검찰이라고 이를 모르진 않을 게다. 그런데도 검찰은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지 못한 것을 인정하지 않고, 정치적 언사들로 법 밖에서 법원을 비난하는 데 급급했다.

검찰이 상식적인 법 논리조차 무시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에 대해선 법원의 조정을 받아들인 것이 배임이라고 기소했다. 법원이 무죄 말고 어떤 판결을 할 수 있었겠는가.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에 대해선 사문화한 법조항을 들이댔고, 광고주 불매운동에는 미국 판례까지 끌고 왔다. 현행법 체계나 법 정신에 비춰 처벌할 근거와 이유가 없는데도 억지로 기소하려다 보니 빚어진 일이다. 하나같이 정권의 정치적 이해가 걸린 사건들이었으니 ‘무리한 청부수사’였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이런 행태는 이미 검찰 조직 전체를 좀먹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정권이 관심을 보인 사건들을 처리한 검사들은 잇따른 무죄판결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승진하거나 영전했다. 법 논리야 어떻든 정권의 뜻에만 맞추면 출세하는 풍토에선 정치적 중립은 기대하기 힘들다. 시국사건 말고도 무죄 사건 수가 최근 크게 늘어난 것을 보면 검찰의 직업적 엄정함도 많이 무너졌다. 상당수는 검찰의 실수 탓이다. 대검 중수부 사건의 무죄율은 일반 형사사건보다 더 높다. 주요 사건일수록 무리하고 미진한 수사가 많다는 방증이다. 그래도 괜찮다는 분위기라면 더 큰일이다.

검찰은 이제라도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법원을 공격해 제 입지를 넓히려 꾀를 쓸 때가 아니다. 문제는 법원이 아니라 검찰이다.


2010-01-21,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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