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앞장서서 해야 할 일을 할 뿐입니다. 사실 제 생각만 한다면 이것을 만들 필요도 없습니다. 어려운 동료. 불우한 후배들을 돕자는 취지에서 저처럼 연봉 많이 받고 여유있는 선수가 앞장섰습니다. 은근한 방해도 있지만 뜨거운 격려가 더 많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1년 전. 롯데 소속이던 최동원(현 KBO 경기운영위원)이 한 말이다. 1988년 최동원은 프로야구선수협의회를 창립하려 했다. 선수협의회 논란이 일파만파로 확산되자 그는 언론을 통해 자신의 진정성을 호소했다.

세월이 흘러 지난 9일 선수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롯데 손민한도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누군가는 가야 할 길입니다. 개인적인 사심으로 선수노조를 만들려는 것이 아닙니다. 나 같이 많이 번 선수들이 최저연봉을 받는 대다수의 선수들을 위해 나서야 합니다" 과거 최동원의 발언과 표현만 다를 뿐 의미는 판박이다.

최동원과 손민한. 과거와 현재의 롯데 에이스. 최동원은 선수협의회를. 손민한은 선수협의회의 노조 전환 추진에 앞장섰거나 앞장서고 있다. 구단들의 극렬한 반대에 직면한 상황도 비슷하다. 기막히게도 닮은 꼴이다.

1988년 당시 구단들은 "선수협의회에 가입하는 선수들과는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밝히는 등 강경하게 대응해 창립을 끝내 무산시켰다. 선수협의회 설립에 앞장선 최동원은 괘씸죄에 걸려 후에 삼성으로 트레이드되기도 했다.

노조 추진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는 현재의 구단들도 21년 전과 비슷하게 대응하고 있다. "노조를 만들 경우 야구단을 해체할 수도 있다. 야구단을 해체해도 손해볼 것은 없다"며 선수협의회를 압박하고 있다. 롯데구단은 부인하고 있지만 손민한도 과거 최동원처럼 불이익을 당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최동원과 손민한 사이에 차이점도 있다. 1988년 최동원 옆에는 든든한 팀 동료들이 있었다. 그 때도 삼성 등 일부 구단 선수들은 선수협의회 참여를 거부했지만 적어도 최동원의 소속팀 롯데 선수들은 달랐다. 선수협의회 회비를 납부했고 심지어 "최동원이 피해를 입을 경우 단체행동을 하겠다"는 결의로 끈끈한 의리를 과시했다.

반면 손민한은 홀로 싸우는 듯한 모습이다. 롯데 소속 후배들조차 선수노조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동료들과 함께 나선 최동원도 실패했는데 고군분투하는 손민한이 성공할 수 있을까. 최동원 운영위원은 최근 선수협의회의 노조 추진 움직임에 대해 코멘트를 사양했다.


2009년 12월 11일, 스포츠서울
정진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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