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수 경제팀의 정책 방향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한마디로 수출과 투자를 통한 성장을 우선시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환율 상승을 용인하고, 금리도 낮출 수 있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내고 있다. 이런 정책 방향은 국내 물가상승을 유발하고, 내수를 침체시킬 가능성이 높다. 자칫하면 한국경제를 진짜 위기국면으로 몰아갈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정책들이다.
자원이 빈약한 우리 경제는 그동안 수출에 기대어 성장해 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 경제 구조와 대외 여건이 많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수출이 늘면 관련 하청업체들에도 그 과실이 돌아가는 등 국내 경제가 호황국면을 맞았다. 지금은 수출이 늘어도 고용이 많이 늘지 않을 뿐더러 국내에 떨어지는 게 별로 없다. 그런데도 강만수 경제팀은 과거의 패러다임을 그대로 적용하려고 하고 있다. 오히려 수출의 성장 기여도를 줄이고, 내수를 확대해야 할 상황이다.

환율 상승을 용인하는 듯한 강만수팀의 언급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수출 증대를 통한 성장 정책이 효과를 보려면 높은 환율이 뒷받침돼야 한다. 하지만 과거 사례를 보면 이런 정책은 별 효과도 보지 못하면서 부작용만 낳은 채 실패했다. 2003~2004년 사례에서 보듯, 환율 상승은 성장률 높이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도 않으면서 몇몇 수출 대기업의 배만 불렸다. 그리고, 환율을 방어하느라 막대한 국가 재정만 허비했다.

어제는 금리 문제까지 언급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통화관리로는 물가를 잡는 데 한계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는 물가상승은 수급 조절 등 미시정책을 통해 따로 관리할 수 있으니 성장을 위해선 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대단히 자의적이고, 아전인수식 발상이다. 금리를 내리면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려 물가가 오른다는 것은 경제학의 기초상식이다. 성장을 위해 물가를 희생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내비친 셈이다.

성장과 안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안정을 택해야 한다. 특히 대내외 경제상황이 지금처럼 좋지 않을 때 성장 위주 정책을 펴게 되면, 성장률도 높일 수 없을 뿐더러 물가상승, 내수침체라는 고질병만 더 키운다. 제발 70년대식 틀만 고집하지 말고, 역사의 경험에서 무엇이 옳았는지를 배우기 바란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2008-03-21,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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