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이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을 연기하기로 합의한 것은 양국 정부의 신뢰성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며, 한국의 군사주권에 대한 훼손이다. 한·미 양국은 2007년 합의 이후 줄곧 2012년 4월 전작권 전환 일정에 이상이 없음을 강조해 왔다. 그런데 전작권 연기 문제에 대한 공론화 절차도 없이 양국 정상이 갑자기 일정을 3년7개월이나 늦춘다면 일종의 대국민 기만극이 아닌가. 더욱이 한국 정부는 유사시 자국 군대에 대한 작전 지휘권 환수를 스스로 포기하고 미국에 연기를 요청했다. 치욕스러운 일이다.

정부가 밝힌 연기 사유는 구차하다. 북한의 위협과 우리의 준비부족을 들었다. 핵 등 북한의 현존하는 위협을 고려할 때 2015년은 되어야 우리 군이 자체적으로 정보 획득능력과 전술지휘통제체계(C4I), 정밀 타격능력 등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이 김성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의 설명이다. 특히 정부는 우리 군과 미군의 C4I 연동체계 구축작업 진행 속도 지체를 주요 연기 이유로 꼽고 있다. 2012년 한국·미국·중국·러시아 등의 최고지도자가 바뀐다는 사실도 정부는 거론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설명은 설득력이 없다. 북한 핵문제는 이미 고려했던 사항으로 한반도가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 있는 한 전작권 전환 여부와 관계가 없다. 주변국의 지도자 교체는 이미 알고 있는 사항이다. 또 우리 군의 독자적 작전 능력 부족은 정부가 노무현 정부의 ‘국방개혁 2020’ 예산을 축소한 것과 상당 부분 관련이 있다. 정부가 의도적으로 전작권 환수 시기를 늦추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정부가 전작권 환수를 한·미 동맹 붕괴와 동일시하는 일부 강경 보수세력의 주장을 받아들여 전작권 환수 연기라는 정치적 결정을 내렸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전작권 환수 연기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혜택은 전무하다. 반면 부담이 증가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미국은 그동안 간헐적으로 보수단체에서 전작권 전환 연기를 주장할 때마다 불가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 미국의 신속기동군화를 위한 해외주둔군 재배치 계획 때문이었다. 그런 미국이 정부의 요청을 수용했을 때는 적어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 미사일 방어(MD) 체제 참여, 아프가니스탄 전투병 파병 등과 같은 미국의 관심사를 두고 한·미가 뒷거래를 하지 않았겠느냐는 의혹이 일 수밖에 없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가 협의에서 정부의 대폭적인 양보를 예상하는 시각도 있다.

이명박 정부는 임기 내로 예정되어 있던 전작권 환수라는 역사적 과업을 팽개쳤다. 현 정부가 전작권 환수에 대해 명확한 의지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뜻이다. 그런 만큼 이제 국회가 전작권 전환 과정을 감시·감독할 필요가 있다. 국정조사권을 발동해서라도 밀실에서 진행된 한·미 간의 전작권 전환 연기 결정과정과 연기 사유를 따져야 한다. 우리의 독자적인 작전 능력 개선 작업이 지지부진한 이유도 국회가 밝혀내야 한다.


2010-06-28,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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