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 노무현이 세상을 떠나기 전 우리에게 남긴 이 한마디는 이제 한국 사회의 대명제가 되었다. 자본권력은 정치권력을 지배하고 법질서마저 농락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렇게 세상만사가 모두 자본에 넘어가버린 지금, 진실로 우리의 일상생활이 재벌의 손아귀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음을 일깨워주는 아수라장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거리응원마저 재벌에 넘어간 것이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우리는 시민이 주도하는 자발적 축제의 가능성을 보았다. 새롭게 발견한 대중의 역동성과 자율적 광장문화의 출발은 우리를 설레게 했다. 그러나 2006년 거리응원 공간에 재벌이 치고 들어와 광장에 좌판을 깔더니 지금은 아예 자기가 집주인인 양 행세하고 있다. 붉은악마도 ‘재벌의 허락’ 없인 응원도 마음대로 못하는 처지가 됐다. 거리응원 공간이 마침내 마케팅 경연장,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고 우리는 이제 재벌 등에 시민 등 터지는 세상을 살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제까지 광장을 놓고 치열한 투쟁이 있어왔는데 최후의 승리는 엉뚱하게도 재벌에 돌아갔다는 점이다. ‘87년 체제’를 상징하는 서울시청 앞 광장은 2002년 이후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공공의 영역으로 기능해왔다. 월드컵 거리응원으로 폭발한 시민의 열정은 이후 미선·효순양 추모 촛불을 거쳐 진보정권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또 서울광장은 탄핵 반대 촛불,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을 통해 국민들의 의지가 살아 숨쉬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한마디로 ‘민의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광장의 폭발력에 기겁을 한 이명박 정권은 광장을 통제했고 민의를 내쫓았다. 서울광장을 다시 ‘관제 단체’를 위한 ‘관제 공간’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민의를 내쫓은 서울시는 기막히게도 ‘월드컵 돈벌이’에 혈안이 된 재벌에 서울광장을 팔아버렸다. 응원은 거리로 나가서 하라는 광고를 전방위로 살포하며 우리의 등을 떠밀고 있는 현대자동차, SKT, KT에 서울광장을 선사한 것이다. 재벌이 시민을 거리로 내몰면 서울시는 이를 서울광장에 쓸어담아 고스란히 재벌에 다시 팔아치우는 일종의 ‘짬짜미’다.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재벌편향적인 서울시의 행태다. 자본이야 이윤이 있는 곳이라면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달려들게 마련이다. 그런데 서울시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이에나들에게 던져줬다. 외국 사람들에겐 수천억원에 이르는 홍보비를 쓰면서 시민을 위해서는 몇 억원이 아까운가. 이리하여 지난 몇 년간 벌어졌던 정치권력과 시민사회 간의 ‘광장 투쟁’은 결국 황당하게도 자본의 승리로 막을 내릴 것인가. 또 지방선거에서 강남에서의 몰표로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강남 시장’으로도 일컬어지는 오세훈 시장은 이젠 ‘재벌 시장’의 영예마저 기꺼이 떠안을 것인가.

사방에 투전판이고 싸움이다. SBS의 단독중계 강행 때문에 KBS와 MBC는 SBS를 고소하는 희대의 촌극을 연출했고, SBS는 1000억원에 달하는 투자액을 건지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돈을 뜯으러 다니고 있다. 또 스폰서는 검찰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응원단에도 있다. 4년 전 상업주의에 물들었다는 비난여론이 비등해지자 개과천선하겠다고 약속했던 붉은악마는 지금도 재벌과 손잡고 다닌다. 또 ‘신상족’이라도 됐는지 월드컵 때마다 새로운 티셔츠를 내놓고 우리더러 새로 사라 한다. 그러고보니 개막을 앞두고 쏟아져나온 티셔츠만 해도 열 개는 넘는다. 응원가도 열 개는 된다. 이들은 서로 자기가 ‘진짜’라며 족발집, 떡볶이집 수준의 원조 경쟁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대표선수, 은퇴선수, 가수, 배우가 모델이 되어 한몫 잡으려 열심히들 뛰어다닌다. 정신이 없다. 김연아가 축구선수였던가 싶다.

집에서 가족과, 치킨집에서 동네사람들과 함께 응원하자. 이참에 우리 동네가게들 장사도 돕자. 혹시 아는가. 이기면 ‘서비스’가 나올지. 무엇보다 재벌들의 돈벌이 도구가 되기를 거부하자. 정치권력과는 몸으로 싸워야 하고 자본권력엔 보이콧으로 반격해야 한다. 다시, 거리응원을 거부하라.


정희준|동아대 교수·문화연구
2010-06-11,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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