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이 아니라도, 생살 뜯는 아픔이다. 가슴 미어지고 기가 막히는 원통함이다. 오열에 떠는 애도의 상청 앞에서 옷깃 여민다. 그대 영면하시게나. 사랑하는 부모 형제, 피눈물 흘리는 처자식, 돌아서면 그리운 님을 두고 어찌 눈을 감겠는가마는. 그러나 어찌할 건가. 더는 돌아올 수 없는 불귀의 객. 원통한 기억일랑 털어버리고, 이고 졌던 짐 남은 이들에게 맡기시고, 훌훌 떠나시게, 이 무지막지한 폭력과 거짓의 땅을.

돌아서면 더 원통하다. 떠나는 순간까지 그들의 죽음을 누더기로 만드는 저 위선의 말장난들. 그까짓 영웅 칭호 하나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속좁음 때문이 아니다. 허황된 수사로 애도 분위기를 과장해 제 잘못을 덮어버리려는 저 잔꾀가 기막히고, 통한의 죽음마저 화려한 꽃장식 속에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저 정치적 상술을 용서하기 힘든 까닭이다.

이번에도 정운찬 총리다. 그는 엊그제 담화에서 “그들은 온몸으로 숭고한 애국정신을 보여준 이 시대 이 땅의 영웅”이라고 말했다. 2함대 분향소 방명록에는 ‘당신들은 우리의 영웅입니다’라고 적었다. 영웅신화 만들기에 앞장선 것은 아니지만, 그 신화를 정 총리는 공식화했다.

불을 지피고 부채질한 것은 이 정권의 나팔수들이다. <한국방송>은 ‘천안함의 영웅들 당신을 기억합니다’라는 특별 생방송 프로그램을 두 차례나 내보냈다. 이승복 어린이 영웅신화의 주인공 <조선일보>는 자사 홈페이지에 일찌감치 ‘천안함 영웅들을 추모합니다’라는 글귀를 게시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나라당은 ‘우리들의 영웅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펼침막을 선거에 활용하는 기민함을 과시한다.

이순신, 권율 장군, 김좌진, 홍범도 장군쯤은 돼야 영웅 호칭을 쓰던 게 이 나라였다. 서해 북방한계선 전투에서 희생당한 장병들에게도 쓰지 않았다. 다민족 다인종 국가로서 모래알 같은 국민을 통합하고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 영웅 호칭을 일삼아 붙여주는 미국이지만, 지금처럼 영문 모를 사고로 순직한 이들까지 영웅으로 추앙하진 않는다.

이제는 이 불편한 의문과 불편한 진실을 말해야 한다. 자칫 그들의 죽음을 폄하하는 것으로 매도될까 입을 닫았던 두려움을 털어내야 한다. 3월26일 밤 9시20분께 천안함은 통상적인 초계활동 중이었고, 근무가 끝난 승조원들은 가족, 친구, 애인과 통화 혹은 문자를 하거나, 부족한 운동량을 채우기 위해 체력단련을 하거나, 근무를 위해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고 있었다. 폭발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일어났다. 숭고한 애국심을 온몸으로 보여줄 자세도 아니었고, 그럴 시간도 없었다. 하다못해 자위 차원에서 몸부림칠 겨를도 없었다. 그들은 참혹한 희생자였다.

설사 정부와 군, 보수언론이 추정하듯이 북쪽 중어뢰의 버블제트로 말미암은 사고라 하더라도, 그들이 비명에 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건, 적이 후방 깊숙이 침투하도록 무방비였던 경계태세, 어뢰가 배 밑에서 터질 때까지 작동하지 않은 음향탐지기 등 엉망진창인 방어체계, 침몰 뒤 사흘이 지나도록 침몰한 선체를 찾지 못한 총체적 부실 등 군 통수권자의 안보 무능력만 드러낼 뿐이다. 첨예한 대결정책으로 이런 사태를 초래한 이 정권의 정책적 실패만 부각시킬 뿐이다.

정부의 펼침막은 이렇게 다짐한다. ‘대한민국은 당신들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그렇다, 꼭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기억할 건 영웅신화가 아니라, 원통한 죽음의 진실이어야 한다. 그래야 이 터무니없는 참극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고, 하루에도 열두번 가슴을 쓸어내리는 군 장병의 부모들도 안심시킬 수 있다. 그래야 “엄마가 군대 가라고 해서 미안하다”라는 한 유가족의 울부짖음도 이번으로 그친다.


2010-04-28, 한겨레신문
곽병찬 편집인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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