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역사적인 6.15 남북정상회담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공동선언이 있은 지 5년째가 되는 날이다. 지금 평양에서는 이 날을 기념하여 성대한 기념식과 기념 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남과 북, 해외가 공동 주최한 '6.15 남북공동선언 5주년 기념 통일대축전' 개막식은 14일 밤 9시경 빗방울이 떨어지는 우중에서도 10만여 명의 인파가 참여한 가운데 성대하게 치러졌다고 한다. 또한 이번 행사는 여느 해와 달리 남과 북, 해외 민간대표단을 포함해 남측 당국대표단 40명과 북측대표단 25명이 참여해 명실상부한 전민족적 대축전이 됐다.
  물론 쉽게 풀리지 않는 북핵 문제로 인한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이번 행사에 부여하는 의미는 각자의 정치적 성향과 생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이 날을 맞아 그 동안의 남북 관계를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남북의 평화와 협력에 대한 서로의 마음을 다잡는 행사가 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역시 달랐다. 6.15 5주년의 날 아침 1면 머리기사가 "북 수용소 실태 읽고 가슴아파, 미국인들 모두 실상 깨달아야"는 부시 대통령의 '말씀'이다. 탈북인 출신의 <조선일보> 기자인 강철환씨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백악관을 방문한 자리에서라고 한다. 또 부시 대통령은 "북 주민이 무슨 죄가 있냐"며 "굶주린 아이들이 불쌍"하다며 "한국인들은 왜 북 인권에 분노 않나?"고 반문했다고 한다.
  부시 대통령이 강 기자를 초청하게 된 계기는 강 기자의 북한의 강제수용소의 경험을 담은 '평양의 어항'이라는 책을 읽어보고 감명을 받은 것 때문이라고 한다. 강철환 기자는 <조선일보> '독자와의 대화'에서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겨냥해 ‘가족 해체’니 ‘폭군’이니 ‘주민을 굶기는 독재자’니 하는 표현을 쓸 때부터 이 책을 읽고 하는 말이라고 짐작했다”며 “부시 대통령이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알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힘이 난다”고 말했다.
  알다시피 현재 북핵을 둘러싼 미국과 북한의 대화 국면이 부시 대통령과 미국 정부 관리들이 북한의 김정일 정권을 겨냥하여 "폭군"이니 "독재자"이니 하는 험악한 발언을 뱉어낼 때마다 경직되곤 했었다. 강 기자는 자신의 책이 그 소재가 되었다는 사실에 힘이 나는 모양이다.
  강철환 기자가 북한을 탈출한 것이 1992년이다. 그도 이제 남쪽에서 산 지가 십 수년이 된 거의 남쪽 사람이다. 그가 책에 쓴 수용소 생활은 1977년부터 약 10년간이라 한다. 북한이 아주 폐쇄적이고 경직된 사회임을 감안해도 솔직히 그가 증언하는 북한 생활, 수용소 생활이 지금 현재의 북한 상황과 얼마나 부합하는 지가 의문이다. 특히 북한은 2000년 6.15 이후 빠른 속도로 개방되고 변하고 있지 않은가?
  그가 수용소에 있던 시절이라면 우리 나라도 거의 인권의 후진국이었다. 유신독재 시절과 광주 학살을 거치는 독재의 인권 암흑 시절이었다. 그 당시의 상황을 증언하고 책으로 펴낸 것을 보고 현재의 잣대로 남의 나라 상황을 규정하고 재단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은가? 그 시절에는 <조선일보>도 광주에서 학살당한 시민을 '난동자'로 왜곡하며 가장 기본적인 인권에 침묵하지 않았나?
  솔직히 부시 대통령이 북한 인권 문제를 가지고 측은지심을 보인다는 것도 그렇다. 나는 부시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인권이 유린되었는 지에 대해서 측은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포로로 잡은 이라크인들을 성적으로 학대하고 고문한 사실도 있으며, 지금도 관타나모의 미군 기지에서는 재판도 없이 구금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인들이 어떤 인권 유린을 당하고 있는 지에 대한 실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북한의 인권 문제 물론 중요하다. 북한 동포의 인권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북한 정권을 자극하고 공격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부시 미국 대통령이 김정일 정권을 자극할 때마다 북미간에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북한 인권 문제는 말로만이 아니라 북한의 개방과 개혁을 이끌어 내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다.
  <조선일보>의 자매지인 <주간조선>은 과거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한겨레>를 방문한 것을 두고 '편집장 칼럼'을 통해 "노 당선자의 행보를 놓고 굳이 비틀어 보려거나 폄하하고픈 생각은 없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좀 우스꽝스러운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시대 한국 사회 수준을 말해주는 ‘블랙코미디’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 적이 있다.
  문제는 부시 대통령에 있지 않다. 그가 무슨 책을 읽건, 누구를 백악관에 초청하던지 그건 부시 대통령의 마음이다. 정작 문제는 부시 대통령이 자사의 기자를 백악관에 초청했다고 1면 머리기사를 포함한 여러면에 대문짝만하게 보도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조선일보>의 우스꽝스러운 '블랙코미디'에 있다.
  또한 그게 남북이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성사시킨 6.15 5주년 측전의 아침이라는 사실이 그 '블랙코미디'의 절정이다. 그런데 그게 하나도 우습지가 않고 마음이 우울해 지는 것이 그 코미디를 본 감상이다.
  남과 북이 민족이 함께 하는 6.15 축전의 날 아침, 미국 대통령의 칭찬에 행복해하고 북한 인권에 대한 공격에 뿌듯해 하는 <조선일보>가 민족의 앞날은 안중에도 없는 가히 '미국 신문'으로 보이지 않는가?  


고태진(ktjmms) 기자    
2005-06-15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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