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연으로 인하여 나는 대학이, 그것도 이른바 명문대학이라고 자칭하는 대학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교육 이념과 방법론을 가지고 있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런 탓에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이 그 충격적이고도 무시무시한 발언을 흡사 책상 밑에 붙여놓은 껌을 다시 꺼내 씹듯이 태연하게 또 한번 했을 때, 나는 매우 의아했다. 도대체 대학은 어떤 교육을 가르치길래 '대통령 자격 학력제한 규정'을 거듭 제시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대학을 가보기로 했다. 이른바 '명문' 대학을 자칭하는 곳의 홈페이지인데 이왕이면 전 대변인이 졸업한 학교가 좋겠다 싶어 그 곳을 둘러 보았다.
  '창의적, 혁신적, 자율적 학습에 초점을 두는 교육' 등의 매우 강건한 구호들이 여기저기 적혀 있는데 이는 비단 이 대학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대학, 아니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집단에 적혀 있는 구호와 다를 바 없어서, 마치 '국기에 대한 맹세'처럼 아무런 맥락도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전여옥 대변인이 졸업한 학교의 홈페이지에 가보니...

  그래서 좀더 살펴보았는데 어느 대목에선가 '불확실한 환경에 탄력적으로 대처하는 분석능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지닌 인재를 배양'한다고 적혀 있다.
  '아하! 대학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 만큼 상당히 구체적인 표현이다. 불확실한 환경에 탄력적으로 대처하는 상황, 물론 이러한 능력을 대학 출신자만 갖는 것은 아니지만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들에 비하여 4년 정도 이를 더 연마하면 나을 수도 있겠다 싶다. 이 점만 특히 강조하여 본다면 전 대변인은 이 대학의 가르침을 제대로 받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대학이 무슨 '능력개발원'도 아닌데 이런 일만 가르칠까 싶어 좀더 둘러 보았다. 어느 대목에서 교훈이 적혀 있는데 '진,선,미' 셋을 설명하고 있다. '지식의 탐구를 게을리하면 그 존재 가치를 상실'한다는 대목을 거쳐 비로소 참으로 이 대학이 학생들에게 강조해 마지 않는 대목이 보였다.
  '소외된 이웃을 외면하지 않고 이웃과 하나 되는 것이며, 공동체 사회와 인류사회의 영원한 평화를 이룩하고자 하는 염원'
  이 정도는 되어야 교훈이라고 할 만한데, 왜 이렇게 훌륭한 교훈을 가진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이, 그것도 국회의원이며 공당의 대변인이 자기가 학교에서 배운 교육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발언을 했을까 참으로 궁금하기 짝이 없다. 위 문장은 '이 궁극적인 목표를 위해 자신을 지혜롭게 갈고 닦으며, 나아가서 책임 있는 지식인으로서 사회에 헌신'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고 풀이하고 있는데 전 대변인의 발언은 책임도 헌신도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교훈에 이어 100여 년 역사 동안 울려퍼졌을 교가에서도 이 대학의 교육 목표는 엄연하게 드러난다. 홈페이지 설명에 따르면 교가의 가사 중 일부는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 계신 것같이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겸허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다짐'을 담고 있는데, 아뿔싸, 전 대변인의 '대학 출신 대통령 요망론'은 이러한 겸허와 성실로부터 멀찌감치 빗나가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어디 이 대학 뿐이랴. 세상의 모든 대학은, 그것도 '명문' 대학이라고 자칭하는 곳에서는 뚜렷한 교육적 목표를 제시하거니 특히 이 대학 홈페이지에서도 '지식인의 책임과 사회적 헌신'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이익과 개인적 안일에 머물기를 거부'하라고 촉구하고 있으니 전 대변인은 거듭된 발언과 변명, 그리고 여기서 밀리면 계속 밀린다는 식의 오기는 그야말로 자신이 그토록 열망하고 또한 그 자신이 몸소 젊은 날을 보내기도 한 바로 그 대학, 그 교육적 목표를 정면으로 배반하고 있으니 이처럼 낭패스런 일이 또 있으랴.

대학의 잘못일까? 전 대변 부덕의 소치일까?

  나는 종종 시위를 한 학생들을 두고 스스로 종아리를 걷어 매질을 하며 '제자들의 잘못은 제대로 못 가르친 탓'이라고 격정에 사로잡히는 교수들을 본 적이 있는데, 이십 대 초반의 격정적인 친구들에 대하여 그럴 것이 아니라 불혹을 넘어 지천명을 앞두면서도 자신을 가르친 대학의 숭고한 교육 이념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제자라면 정말 종아리를 걷을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 나라 대학교육의 총체적 부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될 법한데 물론 문제는 문제의 그 '대학'에 있는 게 아니라 정치인들의 흔한 표현대로 혹시 전 대변인의 '부덕의 소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요즘 '웃찾사'에 잠시 밀렸던 '개콘'을 보는 재미가 쏠쏠한데 변승윤-노우진 콤비의 '넣어 둬' 코너가 인상 깊다. 한사코 차비를 주려는 아들과 받지 않으려는 아버지 사이의 익숙한 대화 '넣어 둬, 넣어 둬'.
  물론 두 개그맨은 우리네 오랜 정서를 다른 상황으로 패러디하여 웃음을 터트리게 만들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배울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명제는 인류가 이제껏 실현하지 못한 매우 숭고하고도 어려운 과제 중에 하나인데 '넣어 둬'는 바로 그런 인지상정의 대화다. 교사가 할 얘기가 따로 있고 학생이 할 얘기가 따로 있으며 사장과 노동자가, 형사와 범인이, 배운 사람과 덜 배운 사람이 할 얘기가 따로 있다.
  그러나 동시에 각자는 서로 상대방의 측면에서 미리 마음을 헤아리고 언어를 가다듬으며 깊은 배려와 적절한 예의를 찾아내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 이해하고 격려하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넣어 둬 넣어 둬'
  전 대변인은 대학 출신이다. 전문직 출신이며 국회의원이다. 동시에 전 대변인은 우리와 다를 바 없이 마음 속에는 수많은 욕망과 갈증과 분노와 희망을 지닌 인간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러니까 세칭 '가방 끈'이 길고 짧음에 상관없이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상대방에 대한 예의, 타자에 대한 이해, 자신과 다른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배려로써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을 충분히 헤아리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것 쯤이야 가방 끈이 짧은 사람들도 동네 시장에서 배우고 학교 뒷산에서 배우고 택시 운전하며 배우고 철야 작업장에서도 배우는 위대한 '생활의 발견'인데 대학 교육까지 다 마치고 국회의원까지 지내면서도 타자에 대한 깊은 배려와 정중한 예의를 아직 깨우치지 못했으니, 아 도대체 우리나라 대학 교육은 이렇게도 부실하단 말인가.
  아무래도 전 대변인은 대학 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듯하다.


정윤수(jys2003) 기자    
2005-06-0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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