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합군이 시칠리아 트로이나에 진주한 직후 응급치료를 받은 아이를 안고 있는 현지 주민 모습. 1943년 8월 미군은 1주일간의 고전 끝에 트로이나를 탈환했다(위). 1944년 6월6일 감행된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오마하 해변에 상륙하는 미군 공격 제1파 부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나오는 유명한 전투장면은 바로 카파가 찍은 이 사진들을 원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필맥 제공

▲ 어느 인민전선파 병사의 죽음 Spanish Loyalist at the Instead of Death, 1936 - 이 사진의 감동은 구도나 표정, 배경의 아름다움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역사 속의 극적인 순간을 함께 하였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담아낸 현장성에 있는 것이다.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 인간성이 말살되는 살육의 현장이기에 증언하고 감시할 눈이 더더욱 필요하다. 그래서 기자들은 역설적이게도 전쟁현장 취재를 일생 최대의 꿈으로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모름지기 기자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가끔은 총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취재하는 광경을 머릿속에 한두 번은 그려봤을 것이다.
죽음의 위협과 기자의 사명감이 미묘하고도 긴박하게 교차하는 가운데 눈앞에 펼쳐지는 잔인한 장면들을 응시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오직 카메라에 의지한 채 현장을 기록하는 기자들. 이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투철한 기자정신은 로버트 카파로부터 시작된다.

전쟁사진이라면 그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본명은 엔드레 에르노 프리드만. 1913년 헝가리 태생의 유대인. 1931년 좌익학생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추방당해 베를린에서 사진기자 생활 시작. 히틀러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파리로 간 그는 1936년 사진을 팔아 돈을 벌기 위해 로버트 카파라는 이름의 가공의 미국인 사진가 행세를 하다 아예 그 이름으로 활동했다. 애인 게르다 타로와 함께 스페인내전에 뛰어들어 공화파인 인민전선쪽에서 취재하다 그해 9월 코르도바 전선의 참호에서 뛰쳐나온 인민전선 병사가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지는 순간을 담은 사진이 미국 <라이프>에 실리면서 그의 이름이 전세계에 알려졌다. 포토 저널리즘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를 받게 한 그 사진은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전쟁기록사진으로 평가받았다.

생사 경계선서 인간적 고뇌

카파는 그 뒤 중일전쟁, 2차 대전, 중동전쟁, 인도차이나 전쟁 등 숱한 전장들을 취재하며 지금까지 모든 사진기자들에게 전쟁사진의 전설로 살아 있다. 자기희생과 위험을 무릅쓴 취재정신을 일컫는 ‘카파이즘’도 그 속에서 태어났다.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필맥 펴냄)는 카파가 찍고 쓴 2차대전 종군기다. 1944년 6월 2차대전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종군해 106컷의 사진을 찍었으나 <라이프> 암실 직원의 실수로 대부분 소실되고 10장만 살아남았다. 그 10장을 실은 <라이프> 기사에 붙은 설명이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였다.

책은 뉴욕에서 백수로 뒹굴던 그가 2차 세계대전 발발 뒤 <콜리어스>의 의뢰를 받아 북아프리카 전투를 취재하러 떠나는 장면을 시작으로 베를린의 함락 때까지 매순간 전장의 최 일선에서 삶과 죽음을 넘나들면서 찍은 사진과 그의 시각을 드러내는 생각과 인간적인 고민 등을 진솔하게 보여주는 글들을 담고 있다. 그도 사진기자라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회의하기도 했다는 사실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장면들이 곳곳에 산재돼 있다. 숱한 전장에서 피가 낭자한 사진을 찍어왔음에도 그는 처절한 장면을 볼 때마다 심한 구역질을 느끼며 자신이 장의사나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괴로워했다. 시실리 작전에서 자신도 병사들과 같이 낙하산으로 현장에 뛰어들며 나눈 자신과의 대화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고민들을 현장에서 극복해 내면서 어떤 왜곡이나 미화도 하지 않고 오직 카메라로 전쟁의 실상을 알린 그의 숨은 휴머니즘과 기자정신이 어떻게 영글어갔는지 짐작하게 한다.

모든 전장에서 병사보다 더 가까이 전투현장에 다가가 촬영한 것으로 유명했던 그는 1954년 <라이프>의 요청으로 베트남 전장에서 프랑스 전투부대원들을 촬영하다 지뢰를 밟고 숨졌다. 41살.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사망한 최초의 미국 종군기자로 기록됐다.

베트남 전장서 지뢰 밟고 숨져

카파가 평가받는 이유는 이런 극적인 요소 때문만은 아니다. 역자 우태정은 이렇게 말한다. “(그를 빼놓고 전쟁사진을 논할 수 없는 까닭은) 그가 유일한 전쟁사진가이기 때문은 아니다. 그 이전에도 로저 팬튼, 알렉산더 가드너와 같은 뛰어난 사진가들이 많이 있었다. 41년이라는 짧은 생애에 다섯 차례의 전쟁터를 누비다 결국 전쟁터에서 죽었다는 사실 때문만은 더더욱 아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쟁터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전쟁의 진실을 전하고자 했던 그의 기자정신 때문이다.”

한국에선 간간이 그의 유작들을 볼 수 있는 기회들은 있었다. 사진 인구도 많아지고 유명한 초대전이 국내에서 열리면서 그의 유명한 사진들을 접할 기회가 많아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삶과 같이 했던 유작들의 숨은 이야기들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종군 취재기가 담긴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는 카파이즘에 심취한 이들에게 목마름을 풀어주는 시원한 단물과 같다.


2006-05-12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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