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 현대중공업 현장을 방문한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 정 회장은 “배를 만드는 것은 어려울 게 없다. 우리가 하는 건축공사를 육지에서 수상으로 장소를 옮겨서 건축하는 차이일 뿐이다”라며 복잡한 계산 없이 오로지 모험정신만으로 조선업계에 뛰어들었다.

커버스토리/<정주영 경영정신><결단은 칼처럼 핸동은 화살처럼> 5주기 맞아 잇단 출간

# 먼저 통계 이야기
1%의 가능성도 가능성이다. 어느 기업가가 1% 확률을 가진 사업을 검토하고 있다. 위험을 무릅쓰는 기업가 정신으로 이 사업에 뛰어든다면, 성공할 수 있을까? 성공한다면 그 댓가는 얼마나 높을까?

그리고 정주영 이야기. 그는 위험을 즐기는 기업인이었다. 고 정주영 전 현대 회장은 항상 99%의 실패 가능성보다 1%의 성공 가능성에 주목했다. 1%의 가능성은 잇따라 현실이 됐고, 그 때마다, 댓가는 엄청났다. 통계는 숫자일 뿐이었다.

지난 21일은 그의 5주기였다. 때맞춰 정주영 책 두 권도 함께 나왔다. 그가 기업가로서 짊어졌던 수많은 위험의 궤적을 추적하는 책들이다.

어느 날 정주영은 자동차 수리대금을 받기 위해 관청에 들렀다. 우연히 관청 한 쪽에 사람들이 북적이는 것 보고 가보니 돈을 받으러 온 업자들이 복도에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알아보니 토목이나 건축을 하는 건설업자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경리 창구에서 수천원 씩의 대금을 받아갔다…. 관청에서 나오자마자 정주영은 동업자들에게 간판을 하나 더 달자고 제의했다. (<정주영 경영정신>, 홍하상 지음, 83쪽)

현대건설은 현대그룹이 쪼개지기 전까지 자타가 공인하는 건설업계 선두주자이자 현대의 간판기업이었다. 국내 최초로 해외공사를 수주했고, 중동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경부고속도로를 2년 5개월 만에 완공했고 총탄이 빗발치는 베트남에서도 공사를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그 신화적 기업의 출발은 너무나 간단했다. 하필이면 자동차 수리업체 사장 정주영이 그날 그 장소에서 건설업자들이 돈을 많이 받아가는 광경을 목격했고, 그래서 현대건설의 역사가 시작됐다. 그게 1948년이었다. 사업 시작 때 꼭 있어야 할 것 같은, 복잡한 계산은 없었다. 오직 모험정신만 있었다.

# “쇠가 물에 뜨냐?”
울산조선소를 구상하면서 그가 처음으로 기술자들에게 했던 말은 “쇠가 물에 뜨냐?”는 것이었다. 기술자들마저 어이없게 만들었던 이 말은 어쩌면 당시 우리나라 조선업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 반드시 되게 하는 정주영에게 이것이 장애물이 될 수는 없었다. (<결단은 칼처럼 행동은 화살처럼>, 권영욱 지음, 75쪽)

정주영은 배를 무슨 재료로 만드는지도 모르면서도 국내 최대의 조선소를 구상하고 실행에 옮긴 사람이었다. 풀만 퍼렇던 허허벌판에 14만평 짜리 공장, 노동자 5천명이 살 수 있는 기숙사를 포함해 60만평 규모의 조선소를 짓겠다고 기획한 것 자체가 놀랍다. 그러나 지은이들의 뒤를 따라 그의 행적을 추적하면 놀라움은 더해가기만 한다.

막상 조선소 건설을 기획하기는 했지만 현금이 없었다. 국내에는 그만큼 큰 돈을 빌려줄 만한 은행조차 마땅치 않았다. 외국 자금을 빌려와야만 했다. 영국 바클레이 은행을 찾아간 정주영은 “배를 살 사람이 있다는 계약서를 가져오면 대출을 승인해 주겠다”는 답을 들었다. 조선소도 없는데 배를 팔아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런데도 정주영은 포기하지 않았다. “배를 사주면 그 계약서로 돈을 빌려서 조선소를 지은 뒤 배를 만들겠다”는 ‘사기를 치면서’ 전세계를 다녔다. 그런데 놀랍게도, 결국 계약 한 건을 성사시켰다. 그리스 선박왕 리바노스였다. ‘정주영의 인상을 보니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서’라는 비합리적인 이유로, 그는 계약서에 서명했고, 울산에는 조선소가 들어섰고, 한국경제는 중화학공업화의 길로 들어섰다. 1972년의 일이었다.

위험을 즐기는 기업가 정신만이 정주영의 경영정신이었고 전략이었고 지혜였다.

# 이제 경제 이야기
시장경제에서, 100% 안전한 수익은 없다. 위험 있는 곳에 수익 있다.

외환위기 이전과 이후의 한국사회, 또는 좀 더 넓게 보아 민주화 이전과 이후의 한국사회를 가르는 한 가지 중요한 지표는 경제의 위험관리 체계다.

과거 체제에서는 위험을 국가가 도맡았다. 권위주의 정부 아래서 기업은 보호와 관리의 대상이었다. 정부가 장악했던 은행들은, 대기업들이 실패해 생긴 부실을 기꺼이 떠안아줬다. 그 반대급부로 대기업들은 자기 회사 노동자들에게 평생고용을 제공했다. 대신, 이 체제에 도전하는 목소리는 철저하게 통제됐고, 농민이든 노동자든 반기를 들면 시스템에서 영원히 배제됐다. 권위주의 국가는 모험적인 생산에 나선 소수의 위험을 떠안아, 배제된 다수 국민들에게 강제로 떠안긴 셈이다. 이런 토양 아래서 한국경제는 수많은 정주영을 가질 수 있었다. 그들에게 성공확률 1%는 1%가 아니었다. 그것은 50%이기도 하고 때로 100%이기도 했다.

복잡한 계산 없이 모험정신만

이 체제가 무너진 게 외환위기다.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부실도 커졌다. 국가가 관리할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위험이 커지자 국가부도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국가는 시스템의 위험을 대폭 개별기업에게, 개인에게 되돌렸다. 평생고용 신화가 하루 아침에 깨지면서 정리해고가 이어졌다. 대마불사의 신화를 깨고 재벌그룹을 해체시켰고, 영원히 안전할 것 같던 은행들의 문을 닫고 합치기도 했다. 노동자도 주주도 경영자도 심지어 재벌 총수들까지도, 고통스러워했다.

그 모든 고통의 목적지는 한 군데였다. 저위험 국가였다. 그 결과, 이제 이 사회는 개인이든 기업이든 각자 스스로 위험을 짊어져야 하는 체제가 됐다. 대신 국가의 짐은 상대적으로 가벼워졌다. 이게 외환위기 극복 과정이었다.

과거보다 더 큰 위험을 지게 된 개인들은, 자연히 위험을 회피하게 된다. 지금 우리가 정주영 같은 기업인을 보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다. 기업가 정신이 사라진 것은 필연이다.

이 위험기피증은, 위기가 극복되자마자 체감경기 침체의 근원이 됐다.

사실 다들 경제가 어렵다고 아우성치지만, 사실 한국경제 체력은 꽤 좋은 편이다. 우선 돈이 흘러 넘친다. 시중 부동자금이 400조원이 넘어섰다. 은행들은 돈을 꿔줄 기업을 못찾아 걱정이다. 고급 노동력도 풍부하다.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82%로, 미국(63%)이나 일본(49%)보다도 높다. 경제의 젖줄인 돈과 사람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데도, 많은 이들이 여전히 가난하다고, 불행하다고 느낀다. 왜 그럴까?

문제는 기업들이 더 이상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데 있었다. 2004년 한국 상장기업들이 보유한 현금은 모두 36조원으로, 1997년의 두 배로 늘어났다. 벌어들인 돈을 재투자하지 않고 그대로 움켜쥐고 있었던 것이다. 투자를 하지 않으니, 아무리 좋은 인력이 있어도 채용할 필요가 없었다.

돈은 넘쳐났지만 돌지 않았고, 사람들은 일자리를 못찾아 방황했다. 고용이 불안해지자 소비가 정체됐고 내수 성장세가 꺾였다. 성장률도 낮아졌지만, 동시에 소득 양극화 현상도 나타났다. 기업이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움츠러들면서 사회 전체 분배구조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이 경제는, 다시 정주영을 그리워하고 있다.

# 다시 통계 이야기
1%의 가능성도 가능성이다. 그러나 한 명이 뛰어들어서는 그다지 승산이 없다. 100명이 뛰어들면 분명 1명은 성공할 것이다. 1명의 성공한 정주영이 나오면 99명의 실패한 정주영이 나오는 게 정상이다.

# 다시 정주영 이야기
정주영은 돌아와야 한다. 그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모험가의 유전자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기업의 위험을 통째로 떠안아 줄 권위주의적 국가는 없다. 이제 통계는 숫자인 것만은 아니다. 통계는 현실이다. 정주영은 필요하나 정주영이 딛고 서 있던 토양은 사라졌다. 정주영 딜레마다.

1명 성공하면 99명 실패 당연

한국사회가 여전히 정주영의 기업가 정신을 원한다면, 아흔 아홉명의 실패한 정주영의 위험을 사회가 어떻게 나누어 안을 것인가에 대해, 연약한 개인들이 둘러앉아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 호주머니를 조금씩 털어 시장에서 실패한 사람들도 재기할 수 있는 안전판을 만들 수도 있겠다. 개인의 실패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을 좀 더 따뜻하게 만드는 문화 혁명을 가꿔볼 수도 있을 것이다. 위험이 클수록 위험의 대가는 더 많이 커지도록, 보상 시스템을 바꿔볼 수도 있으리라.

그 어느 쪽도 아니라면, 정주영, 또는 성장에 대한 미련을 깨끗이 버려야 한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혹시라도, 정주영과 함께 과거 권위주의 체제도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추모가 아니라 음모다. 정주영이 갖고 있던 모험가의 유전자는, 여전히 가장 새로운 그릇에 담길 자격이 있다.

2006-03-24 , 한겨레신문
이원재/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사진관련 사진 한 장을 위해 목숨을 던진 기자 file

  • 2007-04-08
  • 조회 수 2422

▲ 로버트 카파, 파리의 어느 카페에서, 1952년 루스 올킨 촬영. ▲ 유로포토-한국매그넘 ‘종군기자의 전설’ 로버트 카파展… 스페인 내전·노르망디 상륙작전은 20세기 최고 전쟁사진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너무 멀리서 찍었기 때문이다...

기사/보도 조선은 왜 판결 공개를 반대했을까 file

  • 2007-02-01
  • 조회 수 2040

▲ 유신시절 대통령 긴급조치 3호가 발표됐을 때(1974년 1월14일)의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문답식 풀이를 통해 긴급조치3호로 인해, 월 7만원 받는 월급쟁이가 매달 5252원의 혜택을 입게 된다고 보도하며, 그 필요성과 유익함을 적극 홍보했다. 온라인뉴...

기타 조중동과 노무현, 짜장면 이야기 file

  • 2007-01-11
  • 조회 수 1181

ㅎㅎ

기사/보도 노무현 대통령 민주평통 상임위 발언 전문 file [1]

  • 2006-12-22
  • 조회 수 2081

1년에 한 번 이렇게 함께 보는 아주 소중한 기회인 것 같습니다. 세 분 건의말씀도 잘 들었습니다. 내용이 참 좋습니다. 우선 수준이 전문가 수준입니다. 말하자면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직접 정책 보조를 받거나 또는 내각을 통해서 도움을 받고 있는 그 사람...

기사/보도 어디선가 나타난다 ‘실천 개그’ file

  • 2006-12-13
  • 조회 수 2126

2주 전쯤인가, 택시를 타고 시청 앞을 지나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덕수궁 문 앞이 시끌벅적했다. 덕수궁 앞 수문장 교대식이 저렇게 인기가 많았나 싶어서 자세히 들여다봤다. 그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그곳에 바로 압구정동 최신 패...

좋은글 대통령비서실 직원 여러분께 - 2006년 한 해를 보내며 드리는 글 [1]

  • 2006-12-11
  • 조회 수 2071

친애하는 비서실 가족 여러분. 오랜만입니다. 어느덧 올해도 긴 그림자를 남기며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녹지원 뒤편, 팔다리를 훤히 드러낸 나무들과 수북이 쌓인 낙엽들이 더욱 계절의 미감을 자아냅니다. 그래서인지 어느 비구니 스님의 詩한자락이 들춰집니...

좋은글 미역에 뿌린 소금, 배추에 뿌린 소금 [1]

  • 2006-12-01
  • 조회 수 2159

똑같은 소금도 대상에 따라 효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미역에 뿌리면 팔팔 살아나고, 배추에 뿌리면 시들시들 죽어버린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즐겁게 사는 사람에겐 즐거울 낙樂, 불평하며 사는 사람에겐 괴로울 고苦. - 최윤희의《유쾌한 행복사전》중에서 -

기사/보도 UAE가 인공섬 개발에 열 올리는 이유 file [2]

  • 2006-09-28
  • 조회 수 2574

▲ 두바이 앞바다에 건설중인 인공섬들. 야자수 모양을 본딴 '팜 아일랜드'(위)와 세계지도 모양의 '월드'. ▲ 삼성건설이 2008년 완공을 목표로 두바이에 짓고 있는 세계 최고층 건물 '두바이 타워' 조감도. 160층에 높이가 700m를 넘는다. 한국이 4·19와 5·16...

좋은글 괘종시계 태엽을 감으며 file

  • 2006-09-22
  • 조회 수 2306

그 괘종시계는 낡고 오래된 것이었다. 세이코라는 상표의 일제 시계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을 서울 인사동의 골동품 상점에서 구입했다고 한다. 내 아내의 친한 벗이 늦은 결혼을 축하한다며, 어렵사리 구입해 우리 부부에게 선물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좋은글 광해군을 죽인 그들이 돌아왔다 file

  • 2006-08-24
  • 조회 수 2057

△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성토하는 전직 국방잔관들. 한국의 친미파는 마치 자기 얘기가 미국 입장인 것처럼 주장하기도 한다. △ 광해군은 조선 왕조 500년 역사상 가장 뛰어난 외교 안목을 지닌 군주였다.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광해군의 묘.명은 임진왜란...

기타 누가 오기를 부리는가? file

  • 2006-08-02
  • 조회 수 2205

오늘 아침 한겨레는 대통령 인사가 돌려막기 식이고 의사통로가 꽉 막혀 있다고 비판했다. 한마디로 고집불통이고 남의 말을 안듣는다는 것이다. 동의할 수 없다. 그러나 니들이 그렇게 봤다면 니들한테는 그런 것이겠지. 니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좋은글 누구를 위한 사법권독립인가? file

  • 2006-07-14
  • 조회 수 2028

니체에게 인간이란 더러운 강물이었다. 그래서 그의 초인은 자신을 더럽히지 않은 채 이 더러운 강물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려고 스스로 바다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강신욱 대법관에게 대표로 퇴임사를 낭독하게 한 다섯 사람의 퇴임 대법관의 생각은 이...

기타 록밴드 시나위의 굴욕 file

  • 2006-06-16
  • 조회 수 2811

1987년 Up & Down의 충격 80년대 중후반, 한국에서 '헤비메틀'이라는 음악장르가 개화기를 거쳐 한창 꽃을 피우고 있었다. 당시의 Big3였던 시나위, 백두산, 부활을 필두로 작은하늘, 태백산맥, H2O, 외인부대 등 이후 한국 음악씬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게 ...

좋은글 [김선주칼럼] 서울대에 축구학과를 만드시죠 file

  • 2006-06-16
  • 조회 수 2049

김명곤 문화관광부 장관이 서울대에 연극영화과가 생길 필요가 있다고 했다는 소식을 듣고 역시나 싶었다. 광대 출신에서 장관자리에 오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줄 알았더니 핏줄은 못 속이는구나 싶어서였다. 그의 핏줄은 서울대다. 그가 이런 생각을 ...

기사/보도 뜬구름 잡는 '국익'의 환상에서 깨어나자 file

  • 2006-06-09
  • 조회 수 2052

▲ 전농 등 한국 원정시위대 1500여명이 지난해 12월 17일 오후 내내 홍콩 시내 곳곳에서 경찰과 충돌,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들 중 900여명은 18일 오전 3시 5분부터 홍콩 경찰에 의해 전원 연행됐다. ⓒ 연합뉴스 정주호 ▲ 지난 5월 26일 저녁 서울 월드컵...

사진관련 총알 사이로 ‘셔터의 진실’을 쏘다 file

  • 2006-05-12
  • 조회 수 2376

▲ 연합군이 시칠리아 트로이나에 진주한 직후 응급치료를 받은 아이를 안고 있는 현지 주민 모습. 1943년 8월 미군은 1주일간의 고전 끝에 트로이나를 탈환했다(위). 1944년 6월6일 감행된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오마하 해변에 상륙하는 미군 공격 ...

기사/보도 600년 도읍지... 서울 감싼 성곽 산책 떠나 볼까 file

  • 2006-04-05
  • 조회 수 2203

▲ 북악산 청와대 뒤편이 38년 만에 개방된 지난 1일 시민들이 울창한 소나무 숲에 자리한 숙정문을 관람하고 있다. ▲ [서울 성곽 지도] 숙정문 일대는 개방됐지만 입장제한이 있으며 창의문 등은 내년에 개방될 예정이다. 청와대 뒤 북악산 숙정문 일대의 서...

기타 정주영 ‘위험신화’ 그립소만 file

  • 2006-03-24
  • 조회 수 2176

▲ 울산 현대중공업 현장을 방문한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 정 회장은 “배를 만드는 것은 어려울 게 없다. 우리가 하는 건축공사를 육지에서 수상으로 장소를 옮겨서 건축하는 차이일 뿐이다”라며 복잡한 계산 없이 오로지 모험정신만으로 조선업계에 뛰어들...

기사/보도 코 베인 건 붉은악마인가 국민인가 file

  • 2006-03-07
  • 조회 수 2110

▲ 지난해 10월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독일월드컵 최종 예선 사우디전에서 새로운 구호 '함께 가요(Reds, Go Together)'를 공개한 붉은악마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2002년 6월 시청 앞 광장의 붉은 악마 축구 응원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진정 지...

좋은글 [법정 스님 잠언] 단 한 번 만나는 인연

  • 2006-02-25
  • 조회 수 2036

차茶의 세계에 일기일회一期一會란 말이 있다. 일생에 단 한 번 만나는 인연이란 뜻이다. 개인의 생애로 볼 때도 이 사람과 이 한때를 갖는 이것이 생애에서 단 한 번의 기회라고 여긴다면 순간순간을 뜻 깊게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몇 번이고 만날 수 ...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