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영 전 MBC 사장이 오늘 강원지사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할 것이라고 한다. 한나라당 원희룡 사무총장은 1일 “엄 전 사장이 2일 한나라당 강원도당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경선 참여를 공식 선언할 것”이라고 말했다.

엄 전 사장은 지난해 2월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의 일방적 임원 선임에 반발하며 사표를 냈다. 당시 그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방문진이 방송의 독립성, 자율성을 부정하고 특정인을 (제작·보도본부장에) 앉히겠다고 고집한 것은 방송 섭정을 넘어 방송에 대한 직접 경영이나 다름없다. 방문진 이사장이 관행을 무시하고 MBC 이사진 선임에 개입해 누구를 앉혀야겠다고 고집하면 당연히 정치적 의혹이 생길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사장직에서 물러나던 날엔 MBC 노조원들을 향해 머리 위로 하트를 그려보이고, 주먹을 불끈 치켜들며 “파이팅”을 외쳤다. 권력의 박해와 탄압을 받는 언론인의 행보였다.

다섯 달 뒤인 7월, 엄 전 사장은 민주당의 재·보선 출마 요청을 거절한 뒤 재·보선에 나선 강원지역 한나라당 후보들을 찾았다. “개인적 친분 때문에 격려차 방문한 것뿐”이라고 했지만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8월엔 강원 춘천으로 주소지를 옮겼다. 12월부터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강원도를 누비기 시작했다. 마침내 한나라당의 상징색인 파란색 점퍼를 입고 TV에 출연함으로써 확실하게 ‘커밍아웃’했다.

‘탄압 받는 언론인 행보’는 착각

이 기간 든든하게 뒷배를 봐준 것은 MBC였다. 엄 전 사장은 사퇴 후 11개월간 MBC에서 매달 1150만원의 자문료와 에쿠스 차량, 운전기사 등을 지원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MBC는 최근 이 문제로 논란이 일자 “사규에 ‘사장은 업무상 필요에 따라 고문, 자문위원 등을 둘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며 “이 규정에 근거해 지난해 3월 엄 전 사장을 자문으로 위촉, 회사 경영과 향후 발전 방향 등에 대해 수시로 자문을 구해왔다”고 밝혔다.

MBC의 설명대로라면, 엄 전 사장은 정권이 자신을 몰아내고 선임한 후임 사장(김재철)의 경영을 돕기 위해 수시로 자문하며 거액의 돈과 차량을 제공받은 셈이 된다. 본인 생각에는 아름다운 ‘친정 사랑’일지 모르겠으나,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민망한 풍경일 뿐이다.

정치는 나쁜 일이 아니며, 정치인도 나쁜 직업이 아니다. 나쁜 것은 정치혐오증이다. 유능하고 깨끗한 사람일수록 적극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어 정치혐오증을 없애고 정치를 더 낫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엄 전 사장이 이런 사람들의 범주에 들기는 어려운 것 같다. 지난 1년간의 행보를 돌아보면 그로 인해 한국 정치가 더 나아질 것이란 전망이 서지 않는다.

엄 전 사장이 그럼에도 강원지사 선거에 나서겠다면, 그의 자유의지에 맡길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에서 피선거권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 공직 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

다만 언론계 후배로서 한 가지만은 간곡히 부탁한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언론의 사명이나 언론인의 역할 같은 이야기는 꺼내지 않기를 바란다. 엄 전 사장은 이제 ‘명 앵커 엄기영’이나 ‘권력과 불화하는 언론경영인 엄기영’이 아니라 수많은 ‘폴리널리스트(politics+journalist·언론정치꾼)’ 중 한 사람일 뿐이다. 물론 ‘폴리널리스트 엄기영’도 나름의 교훈을 남길 수는 있을 것이다. 한 인간(특히 공인)의 이미지와 실체는 잘 부합하지 않거나, 때로는 반대일 수 있다는 교훈 말이다.

폴리널리스트 중 한 사람일 뿐

2년여 전 이명박 정권의 「PD수첩」 등 언론 탄압을 소재로 칼럼(2008년 8월18일 경향포럼)을 쓴 적이 있다. 그때 엄 전 사장을 언급했다. ‘정권에 겁먹은 엄기영 사장은 떳떳지 못한 타협을 했다. 「PD수첩」 광우병 보도와 관련, 재심 청구 기회를 포기하고 사과 방송을 하더니 간부급 PD들을 사실상 강등시켰다. ‘인간적 존엄’에 대한 감수성이 있는 이라면 하지 못했을 일들이다.’

당시 언론계 대선배를 ‘재단’하면서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내 판단이 크게 틀리지 않았던 것 같다. 엄 전 사장은 그때나 지금이나 떳떳지 못한 타협을 하고 있다.

엄기영은 늘 엄기영이었다. 엄기영은 변신한 것이 아니다. 배신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2011-03-01, 경향신문
김민아 |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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