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두환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무엇보다 '전두환 문제'는 그의 쿠데타가 공식적으로는 적법성을 상실했는데도 그 마무리가 깔끔하게 되지 못한 데서 비롯한다.  
ⓒ2005 연합뉴스
▲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문래공원에 세워진 박정희 흉상. 그는 일본제국주의 관동군 산하 괴뢰정권인 만주국 신경군관학교를 혈서 지원했다.  
ⓒ2005 오마이뉴스 권우성

아래 글에 거론되는 사람들의 '씨' '전 대통령' 등의 '칭호'는 편의상 생략했다.

지금 왜 '전두환 문제'인가?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두 군인 박정희와 전두환. 그 중 전두환은 박정희 전 대통령처럼 피살되어 역사적 인물이 되지 않고 현존의 인물로 자신이 뿌린 씨앗의 열매를 손수 거둬야 할 처지에 있다. 그의 집권기에 떼돈을 번 사람이나 벼락출세한 이들, 사회 원로가 되어 행세한 무리 등은 전두환에 대한 곱지 않은 눈초리에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실세 행세까지 치면 그는 박정희 다음으로 오래 집권한 대통령이기 때문에 그와 인연을 맺은 사람도 그만큼 많다.
  한편 그는 누구에도 뒤지지 않는 박정희의 '정통계승자'다. 전두환은 세지마 류조(瀨島龍三·관동군 참모 중좌(중령))를 충실히 모셨다. 세지마가 박정희의 스승이고 대부인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주 1). 전두환은 심지어 1979년 12·12쿠데타 때도 당시 일본대사에게 거사를 미리 통고하는 식으로 충성심을 보였다(주 2). 그 후 그는 세지마 류조의 충고와 교시를 받들어 민심 수습을 위해 올림픽 개최라는 계획을 세웠으며, 집권 당시 일본 현직 수상 나카소네를 초청하기도 했다.
  전두환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무엇보다 '전두환 문제'는 그의 쿠데타가 공식적으로는 적법성을 상실했는데도 그 마무리가 깔끔하게 되지 못한 데서 비롯한다. 김영삼은 1990년 3당 합당으로 군사 정권의 양아들로 들어가, 거꾸로 전두환과 노태우를 군사반란과 내란죄로 1996년 기소해 유죄 판결을 받게 했다. 거기까지는 잘 나갔지만, 김영삼은 그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물러나 김대중에게 바통을 넘기고 말았다.
  후임 대통령 김대중은 그들을 특별 사면했고 모든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 결과 '전면 무효화'에 이르는 합법적인 조치를 통해 인적 청산까지도 전·노 두 사람의 개인적 과오 문제로 축소되고 말았다. 온정주의적 사후 변칙 처리가 전두환 문제를 원점으로 돌아가게 한 것이다.
  전·노에 대한 특별사면은 김대중 개인의 입장에서는 관대함과 군자다운 용서라는 덕을 보인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정치는 봉건적인 '삼국지' 시대의 정치 감각을 요구하지 않는다. 중남미 국가의 헌법을 보면 전임 대통령이나 주요 공직자에 대한 대통령의 사면권을 제한하고 있다. 또 닉슨의 몰락으로 후임 미국 대통령이 된 포드는 첫 번째 조치로 닉슨을 사면했는데, 그것은 그의 최대 실책이자 과오가 됐다.

박정희와 전두환 : 집권 과정과 수법 비교
  
△ 친일 전력 문제: 박정희는 일본제국주의 관동군 산하 괴뢰정권인 만주국 신경군관학교를 혈서 지원해 친일파로 입신했다. 이후 그는 친일파로 발 벗고 나섰고 그의 반민족적인 행적은 아직도 문제가 되고 있다. 전두환은 일제 패망 후 사회인이 되었기에 식민지 시대의 친일 문제는 없다. 하지만 그는 박정희 아래의 정치군인으로, 박정희와 같은 친일 노선을 걸어간 '신생 친일파'다.
△ 군대 내 위법·범법 문제: 박정희는 장교 복무시 남조선노동당(남로당) 비밀당원 군사책으로 암약한 혐의로 군사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불명예 제대했다. 전두환은 박정희처럼 공산당과 관련된 전력은 없다. 다만 '하나회'로 알려진 군대 사조직을 구성해 그것을 쿠데타의 모체로 삼았다. 일본제국 군대의 사조직인 '사쿠라 모임' 같은 것을 전두환이 만든 것은 박정희의 영향이다. 박정희는 일본의 '명치유신(1867년 왕정복고 형식을 취한 막부 타도와 근대국가로의 개혁)'과 '소화유신(1930년대 일부 군인들의 극우적 발상에 의한, 쿠데타를 통한 개혁 시도)'을 숭배하고 추종했다.
△ 정보장교로서 경력: 박정희는 정보장교 출신이다. 불명예 제대 후 6·25전쟁 전에도 육군정보기관에서 무급 문관으로 근무한 전력이 있다. 전두환은 박정희 측근을 맴돌고 보안사령부나 특전대를 지휘하던 정보통이었다. 특히 박정희 피살 후에는 중앙정보부 부장까지 겸임하고 합수부를 장악해 김재규에 대한 수사·처형을 주도했다. 그리고 군 정보기관인 보안사령부를 장악해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을 때 군의 실세가 되어 진압을 지휘할 수 있었다.
△ 쿠데타의 전략과 전술: 박정희는 일제 치하 만주에서 보낸 군대 시절 인맥을 주축으로 3천여 명의 군인을 동원, 미국의 묵인 하에 5·16쿠데타를 일으키고 집권했다. 전두환은 1979년 군 통수체계를 뒤엎은 하극상 12·12 쿠데타로 계엄 사령관인 상관 정승화를 납치했고, 1980년 5·17 비상계엄전국확대조치에서는 군부대 책임자를 연루시키기도 했다. 한편 박정희는 쿠데타 직후 '군사혁명위원회'를 구성해 정권장악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했다. 또 민주당 구파인 윤보선 대통령이 신파인 장면 총리에 대해 나쁜 감정을 지녔던 점을 이용, 묵인·동조하게 만들었다. 전두환은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을 제압하는 수법을 썼다. 물론 전두환의 '국가보위입법회의'는 박정희의 '국가재건최고회의'를 모방·답습한 것이다.
△ 쿠데타 후 조치: 박정희는 쿠데타 후 즉시 기존 헌법 기관의 일부 해산(국회)과 접수(정부), 장악(법원) 등으로 권력 핵심부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그렇게 권력 장악을 기정사실화하고 그 위세로 국민들을 어렵지 않게 굴복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정당, 사회단체, 민주·통일·노동 운동 조직을 해산, 탄압했다. 수법에서는 전두환도 유사했다. 그는 군 정보기관을 비롯, 정보공안기구를 확실하게 장악했기 때문에 순조로워 보였다. 하지만 광주를 위시한 국민들의 반발에 부딪히게 되자 광주를 무력으로 진압했고 이는 그의 최대 오점이 됐다. 전두환은 구 정치인인 김종필이나 이후락도 과감하게 숙청 대상으로 삼았다.
△ 쿠데타 후 동료 숙청: 박정희는 쿠데타 성공 후 만주국 출신 동료들을 대부분 숙청했다. 전두환은 그에게 도전할 라이벌이 없었다. 그럴 소지가 있는 문제의 인물은 12·12 당시부터 제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통치 수법: 군사정권의 기본 통치수단은 계엄 등 긴급권 발동과 정보 공작이다. 박정희 정권은 몰락할 당시까지 양자를 통해 연명했다.

  전두환 정권은 정보공안기관이 전국의 기업과 노조, 학원, 지역 마을을 거미줄처럼 얽어서 감시 통제하는 정보정치를 펼쳤다. 1990년 윤석양 이병이 폭로한 보안사 민간인 사찰에서도 드러나듯 전두환 시기에는 정보공안기관이 모든 국민을 감시하고, 모든 언론을 통제했으며 거기에 정치가 놀아났다. 물론 박정희식 정보정치의 연장선상이긴 했지만 그 수단과 방법이 거칠고 군 정보기관이 전면에 나섰다는 점이 달랐다.
  전두환 정권은 80년 광주에서의 유혈 진압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군 동원을 자제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도 군대가 정치적으로 나서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음을 느꼈을 것이다. 또 미국이 군대 동원을 견제하기도 했다. 결국 1987년 6월 시민항쟁에 의해 경찰이 무장해제 돼도 계엄을 선포하지 못하고 유화적 기만책을 일삼다가 6·29선언을 했다.

전두환은 누구?

△ 쿠데타 주역이자 하나회 리더... 쿠데타의 핵심 인물, 정치 연출의 총지휘자: 지금까지 우리는 전두환이 헌법 질서를 뒤엎는 쿠데타를 12·12의 하극상에서부터 1980년 5·17의 확대비상계엄을 통해 이루어내고, 1961년 박정희 쿠데타의 파생물인 '국가재건최고회의'를 모방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국가보위입법회의'로 발전시키는 묘기를 봤다. 박정희가 '국가재건최고회의'를 군인 일색으로 한 것과 달리 전두환은 '국가보위입법회의'를 명망가로 행세하는 교수, 판검사, 전현직 관료, 대학총학장, 종교인 등으로 채워 거수기 노릇을 시켰다. 그리고 중요한 법률을 대량 양산했는데 아마 정상적인 국회라면 몇 년이 걸릴 만한 분량의 작업이었다. 언론탄압법(언론기본법)을 비롯, 인권 탄압을 낳은 사회보호법이나 삼청교육대 조치 등이 이때 만들어졌다.
△ 대통령으로 가는 길 닦음, 헌법 개정: 최규하를 꼭두각시 대통령으로 두었던 전두환은 스스로 대통령이 되기 위해 헌법을 개정한다. 1980년 제8차 개헌은 바로 '전두환 헌법'인데 이 개헌의 핵심은 '대통령 간접선거'다. 박정희의 영구 집권과는 다르게 보이기 위해 '통일주최국민회의'를 '대통령선거인단'으로 이름만 바꾸고 그 인원도 약간 조정했다. 이 개헌은 대통령 임기를 7년 '단임'으로 한 것 등에 힘입어 새로운 제도처럼 눈가림할 수 있었다.
△ 국정 전반을 군 정보기관 중심으로 개편: 전두환의 집권 구조는 박정희처럼 정보기관을 통해 조직, 편성됐다. 다만 전두환은 군정보기관이 그 주축이었다. 입법·행정·사법 등의 요직을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안배하고 정당과 언론 등 사회각계에 대한 조정·통제·재편성했다. 특이한 점은 김종필이나 이후락 같은 구 정치인들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거세해, 그야말로 전두환 시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그것을 '정의사회 구현'이라고 칭했다(나는 <전두환 체제의 나팔수들>(패스앤패스, 2004)이라는 책에서 당시 실태를 다뤘다. 일제 시대에는 침략 전쟁의 대포밥이 되는 지원병을 찬양하고, 이승만을 나라님으로 받들더니 박정희에 빌붙던 무리가 계속해서 전두환 시대를 구가하는 것을 보고, 나는 우리 사회 명망가들에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개혁을 비켜가게 한 전두환 문제의 잘못된 처리

  전두환 문제 처리를 시작한 김영삼 정부는 3당 합당으로 집권했기 때문에 태생적 한계가 있었다. 김대중 정권은 전두환과 노태우 등 국사범에 대해 너무 조급하게 특별사면이란 은전을 베풀었다. 결국 인심을 쓰고도 뺨 맞는 꼴이 됐지만 말이다. 특히 김대중은 박정희와 전두환 등 역대 군사정부의 매카시즘에 만신창이가 된 인물이다. 하지만 김종필을 집권 울타리로 세워야 하는 한계 때문에 그 본래 모습을 발휘하지 못하고 과도적 역할을 하는 데 그쳤다.
  노무현 정부는 김영삼과 김대중 두 정부 때 건드려 놓기만 한 개혁 과제를 정면 돌파하기는커녕 '여소야대' 국회와 수구 기득권 편인 사회 명망가나 재벌의 딴죽 걸기에 걸려서 비틀거리고 있다.
  여기서 전두환 문제를 그의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공적인 사항으로 접근해 보자.

△ 공인으로서 전두환의 태도: 전두환은 내란과 군사 반란죄에 대해 특별사면을 받고 감옥을 빠져나와 백담사에 들어갈 때 발표한 성명에서 국민과 약속을 하나 했다. 자기의 전 재산을 국고에 헌납한다고 말이다. 이 말 하나만 따져 보자. 2003년 법정에서 그는 재산이 29만원밖에 없다고 했다(2005년 현재까지 그가 체납한 추징금은 1800여억 원). 만일 은폐된 재산이 발각되면 그것은 강제집행면탈죄다. 물론 그간의 행적으로 봤을 때 그가 정직하게 답했다고 믿기는 어렵다.
△ 왜 국민세금으로 전두환 실정을 배상하는가: 쿠데타와 집권 유지를 위해 전두환 시절에 있었던 각종 입법과 재판, 행정처분 등 중에서 반민주성과 불법성이 명백한 것을 시정하는 입법조치는 찾아볼 수 없다. 전두환에게 책임이 있는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정부는 구상권을 행사하지 않고 있다. 왜 전두환 무리가 저지른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과 보상을 국민 세금으로 하는가? 지금까지 전두환 시절의 엉터리 재판이 시정된 것은 김대중내란음모사건뿐이다.
△ 전두환 재임 기간은 도둑 전성시대: 전두환 문제를 이대로 개인의 것으로 두면 박정희가 세월이 지나 우상화되어 영웅으로 둔갑하는 식의 상황이 되풀이될 수 있다. 전두환 시대는 박정희 시절 못지않은 도둑 전성시대였다. 세간의 좀도둑이 아니라 국고를 털어 먹고, 국민의 돈을 강탈하고 횡령하는 간 큰 도둑의 시대. 그래서 감옥에서는 도둑들이 '나라 도둑질한 큰 도둑은 행세하고 좀도둑만 얻어터진다'고 탄식했다. 당시 연속극에서조차도 "민나 도로보다('모두 도둑놈들'이라는 일본 말)"가 공공연히 터져 나왔다.

전두환 폭정의 악몽이 '낭만시대'로 찬양돼서야

  나는 박정희 시대가 과거가 되어 칭송으로 찬양하는 요술을 부리게 됐듯이 전두환 폭정의 악몽이 '낭만시대'로 찬양 받는 세월이 올까 걱정이다. 어느 시인은 전두환의 56회 생일잔치에 시 한 수를 바쳤다. 여기 그 일부 인용한다.

전두환 대통령 각하 제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 받으소서

새맑은 나라의 햇빛처럼
님은 온갖 불의와 혼란의 어둠을 씻고
참된 자유와 평화와 번영을 마련하셨나니

잘사는 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물가부터 바로 잡으시어

(중략)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

(위 시는 서정주가 1987년 1월 1일 쓴 것이다)

  시인 서정주는 일제 상전에 하던 행위를 이승만에게 하고, 그 다음에는 박정희에게, 또 전두환에게 했다.
  1995년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전두환과 노태우 시절 군대에서 사망한 사람은 8951명이다. 1965년에서 1973년까지의 월남 참전 때 5천여 명이 전사했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전쟁도 없는 상황에서 이렇게 많은 군인이 죽어 나간 군대가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전두환과 5공화국을 청산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 말고도 많다.
  지금 살아 있는 우리가 할 몫은 전두환 문제를 올바르게 처리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시절이 어떠했는가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또 다시 속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한상범 기자 : 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동국대 명예교수
2005-06-02 22:03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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