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5년 어느 봄날, 내게 다가온 5·18과 전두환(사진 제공: 5·18기념재단)  
▲ 지난 1일 대전 국립현충원을 찾아 12·12 쿠데타 동지들의 묘소를 참배한 전두환씨와 지인들. 그는 사람들의 눈이 무서웠는지 몰래 이곳을 찾았다.  
ⓒ2005 오마이뉴스 심규상

  나는 여간해서는 사람을 싫어하고 싶지 않다. 사람을 미워하고 싫어하면 그 깊이만큼 나 또한 상처를 입게 되기 때문이다.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어가면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좀 더 유연해져야겠다는 생각이 확신으로 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좀처럼 좋아지지 않는 사람들은 있다. 나도 사람이기 때문에….
  용서의 사전적 의미는 '잘못이나 죄를 꾸짖거나 벌하지 않고 끝냄'이다. 잘못한 것이든 죄를 지은 것이든 용서라는 말에는 분명한 인과관계가 존재한다. 다만, 용서는 구하는 자와 하는 자의 원만한 합의가 선행되어야 비로소 결말을 볼 수 있다.
  전 재산이 29만원이라는 전두환씨. 재임 기간 9500여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전직 대통령의 거짓말 치고는 너무 터무니없다고 치자. 하지만 나는 그 사람이 1980년 5월 광주에서 저질렀던 학살을 '역사적 불가피성'이라고 역설하는 것에 대해서는 '너그럽게' '용서'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다.
  최근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전두환씨가 '멋진 군인'인양 비춰지고 팬클럽이 생겨났다는 보도는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이 글은 80년 오월에 대해 눈곱만큼도 용서를 구할 마음이 없는 사람에 대한, 진심으로 사람을 미워하고 싶지 않은 한 사람의 기억이다.

장면 1. "全씨 성을 쓰는 사람이 대통령감?"(1980년)

  내가 중학교 2학년이었던 때다. 때는 바야흐로 1980년 가을. 1년 전 12·12 군부 쿠데타로 사실상 대통령입네 하던 신군부 계엄군들이 80년 봄 2천여 광주 시민을 무참히 학살하고 그해 여름 총칼을 앞세운 체육관 선거를 통해 전두환씨가 공식적인 대통령으로 취임한 직후의 일이다.
  아침 조회 시간에 담임선생이 교실에 들어와서는 뜬금없이 칠판에 한문으로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全斗煥. 그리고는 그 앞에 全자에 대한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全자가 아닌 入자 아래의 王자에 대한 이야기가 맞을 것이다.
  이야기는 장황했지만 결론은 이름에서부터 이미 한 나라 왕으로서 운명지어졌다는, 지엄한 하늘의 뜻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닭살 하나 돋지 않고 그 어처구니없는 해석을 태연자약 설명하던 선생이 더 어처구니가 없다.
  교육부의 훈령이 있었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그 시간에 그런 한심한 설명을 해야 했던 선생의 입장을 조금은 이해한다. 술판에서 대통령 욕만 해도 잡혀 가던 막걸리법의 기억이 선연하던 때이기도 했으니 입 하나에 처자식 숟가락이 왔다갔다 하던 당시 사립학교 선생의 입장을 말이다. 물론, 그 우리들 키만한 굵은 지시봉의 떵떵거림에 맞추어 우리는 연방 고개를 주억거려야 했다.

장면 2. 어느 봄날, 내게 다가온 5·18과 전두환(1985년)

  내가 대학 1학년이었을 때다. 때는 바야흐로 1985년 봄. 대자보에 붙은 사진 한 장이 쑤시듯 들어왔다. 머리가 절반은 날아가고 없는, 선혈이 낭자한 한 젊은이의 끔찍한 주검이 박힌 사진이었다. 아래 설명에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찍은 사진이라는 것과 그렇게 학살당한 사람이 2천명을 넘는다는 것, 그 학살의 주범이 전두환 신군부라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물론, 그 사진이 박힌 대자보는 학생과 직원들에 의해 바로 뜯겨졌다.
  全斗煥. 5년을 지나 내게 새롭게 다가온 이름이었다. 까까머리 소년의 기억 속에 이름만으로도 이미 왕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났던 시대의 영웅 전두환씨가 학살의 우두머리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잠시 헷갈렸다. 그것보다도 그 끔찍한 주검이 1950년 6·25 전쟁도 아니고 1960년 4·19혁명도 아니고 불과 5년 전, 그러니까 1980년의 일이라는 게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었다.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쉬쉬했지만 그것은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었고 헷갈릴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머리가 텅 비어 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지녀왔던 역사에 대한 허상들이 나의 명석하지 못한 머릿속을 빠져 나가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장면 3. 삭풍 몰아치는 겨울, 어둠처럼 전라도에 찾아든 전두환(1986년)

  내가 대학교 2학년이었을 때다. 때는 바야흐로 1986년 겨울. 나는 이제 '전두환'이란 이름만 들어도 저절로 주먹을 쥐게 됐다. 그렇게 나는 '운동권'이 되었고 "독재타도" 소리만 내질러도 감옥으로 직행하던 시절, 단단한 조직 생활에 적응하고 있었다.
  하여간 삭풍이 몰아치는 어느날, 버스를 타고 전주 시내 서점에 가는 길이었다. 그때 그 지방 도시에서 가장 큰 길가로 버스가 들어서자마자 쥐색 파카를 입은 건장한 사람들의 삼엄한 행렬이 펼쳐졌다.
  그들은 거의 10m간격으로 검은 장갑을 끼고 차렷 자세로 북풍한설 추위도 아랑곳없이 날카로운 시선을 정면으로 쏘아대며 앞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 행렬이 시내에 이르기까지 4km를 넘게 이어졌으니 그날 동원된 (경찰관임에 틀림없는) 사람들은 어림잡아 수백 명은 되었을 것이다.
  그 추운 겨울날 그 건장한 사람들이 왜 출현했는지 다음날 9시 '땡전뉴스'(잘 모르시는 분들은 인터넷 검색창에 '땡전뉴스'를 쳐보시라)에서 착실하게 설명해 주었다. 전두환 대통령께서 친히 전라도 땅을 납시었던 것이다. 내가 기억하기에 그의 지방 순시 중 전라도행은 미리 예견된 적이 한번도 없었고 다녀온 다음날이나 되어서야 뉴스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그만큼 비밀스러웠던 행보였다. 세상 무서울 것 하나 없는 그도 전라도 땅 밟는 게 두려웠던 것일까.
  얼마 뒤 몸담고 있던 조직의 선배들이 하루아침에 검거됐다. 중앙 언론에도 오르내린 조직 사건에 연루된 선배들은 대부분 실형이었고 그 중 일부는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한 선배의 대공분실 지하 취조실 경험담을 들으면서 우리는 모골이 송연해졌다. 발가벗고 맞았다는 그 선배는 고문당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노라니, 발가벗고 맞는 것이 고문이 아니라면 진짜 고문은 도대체 뭘 말하는 것인지 나는 또 헷갈렸다.

장면 4. "전두환이나 노태우나... 우리는 졌다"(1987년)

  내가 대학 3학년이었을 때다. 때는 바야흐로 1987년 12월 16일. 6월 시민항쟁으로 피의 권좌를 물러난 전두환씨의 뒤를 이어야 할 대통령을 뽑는 날이었다. 수배 중이었던 나는 추레한 몰골로 생라면을 쪼개 소주를 먹으면서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터럭만큼은 있었다.
  수북이 쌓이는 담배꽁초만큼 초조한 마음 끝에 뒤집힐 수 없는 결과를 확인하곤 나는 병째 소주를 들이켰다. 졌다. 전두환씨나 노태우씨나 개나 걸이나였다. 결국 전두환씨는 그렇게 기사회생했고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들은 절망의 나락으로 다시 빠져들었다.
  1988년 믿었던 쿠데타 동지 노태우씨에게 뒷다마(5공 청문회)를 맞은 전두환씨는 강원도 인제군 백담사에서 은둔을 시작했다. 1989년 믿었던 사법부에게 뒷다마를 맞은 나는 충청남도 논산시 훈련소에서 훈련을 시작했다. 5공화국은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다.

장면 5. 동갑내기 친구가 세상을 뜬 날... 전두환은 건강했다(2004)

  그 뒤로 무슨 일이 있었던가? 전두환씨는 3여년 후 백담사를 나왔고 노태우씨는 5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전두환, 노태우씨의 적통을 이어받은 김영삼씨가 대통령이 되었고 전두환, 노태우씨는 다시 법정에 섰으며 감옥에 갔다. 그리고 감옥에서 나왔고 수천억대의 비자금 조성을 확인한 사법부에 의해 각각 2205억과 2628억을 추징당했다. 아니 추징 선고만 받았다.
  나는... 군을 제대했고 잠시 운동권에 머물다 운동을 정리했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했고 사업을 시작했다가 사업이 망했다.
  내 이십대와 질기게 이어졌던 전두환 씨와 제 5 공화국과의 인연은 그렇게 끝난 줄만 알았다.
  어렵게 서울에 정착한 뒤 이제 좀 먹고 살 만하다고 지인들의 애경사를 챙길 무렵이었다. 때는 바야흐로 2004년 10월. 안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비슷한 대학 생활을 했던 동갑내기 친구가 뇌종양으로 끝내 창창한 젊음을 버리고 세상을 등졌다. 사십대 목전에서 맞닥뜨린 친구의 죽음에 황망하고 비통해진 나는 영안실 복도에서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병원 로비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척 봐도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 같은, 양복을 잘 차려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다가왔다. 그들에게는 절도와 위엄이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있는 사람에게서 알 수 없는 권위가 풍겨 나왔다.
  바로 그였다. 전두환. 한때 사형을 선고받았던 군사반란 수괴, 수천억 원 대의 비자금 논란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전 재산이 29만원이라며 버티고 있는 그. 그는 여전히 호기로워 보였고 당당했다.
  이십대의 대부분을 아스팔트 위에서 최루탄을 맞으며 보냈던 동갑내기 친구를 떠나보낸 날, 나는 스치듯 지나가는 그의 뒷모습만 허망하게 바라봐야 했다.


김지영(redoox) 기자    
2005-05-31 10:10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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