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이름은 김삼순>의 주인공 스물아홉 노처녀 김삼순.
▲ 논란이 된 하룻밤 사랑의 주인공 이영(좌)과 현무.  
ⓒ2005 MBC

  드라마 한 편이 온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바로 <내 이름은 김삼순>. 뭐든지 행동이 굼뜬 나는 '김삼순'이라는 이름 석자가 난리를 칠 때도 "삼순이가 뭘 어쨌단 말이야"하며 알아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루는 딸아이와 통화하던 중 이 드라마가 화제에 오르게 됐다.
  "엄마,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드라마 보고 있어?"
  "아니. 그게 무슨 드라만데?"
  정시 뉴스뿐만 아니라 낮에도 뉴스 전문 채널에 코 박고 있던 내게 "엄마는 뉴스 중독자"라고 놀렸던 딸내미가 어이없다는 듯이 혀를 찼다. 그렇게 나와 김삼순의 인연은 시작됐다.
  그런데 정말로 재미있었다. 부잣집 아들과 가난한 집 딸이 얽힌 그렇고 그런 설정을 이렇게 신선하게 풀어내다니. 드라마 작가가 누구인지 경이롭기까지 했다. 수, 목요일만 되면 혹여 우리 집에 손님이라도 찾아올까 봐 지레 걱정이 될 정도였다.

삼순·삼식이 말고 이영과 현무의 사랑에 사로잡히다

  그리고 지난 주 목요일, 그날도 어김없이 드라마 삼매경에 빠져 모니터에 코를 박고 히히거리고 있는데 마침 삼순이의 언니 이영(이아현 분)과 레스토랑 주방장 현무(권해효 분)가 티격태격하는 장면이 나왔다.
  권해효의 얼굴은 그 생김새만으로도 웃음이 절로 나올 판인데 표정과 말투가 한 술 더 뜨니 배꼽이 빠질 만도 했다. 그런데 그 다음 장면, 이영에게 빌려준 청바지를 빌미로 동침을 청하는 현무와 별로 망설임 없이 모텔로 직행하는 삼순이 언니가 등장했다.
  "아따, 인기 좀 얻으니까 진도가 막 나가는구만."
  여타 드라마와는 다른 신선함 때문에 열심히 챙겨 봤는데 인기 좀 얻으니까 '역시나'구나 싶어 혀를 찼다. 그러나 그 다음,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반전이 나타났다. 침대에서 눈을 뜬 현무 옆 자리에 이영은 간데 없고, 쪽지 한 장과 포개진 10만원 권 수표가 남아있는 게 아닌가.
  "어젯밤 괜찮던데요"하던 문구였던가? 하여튼 섹스 파트너의 서비스에 만족한다는 표현이었다. 어른 애 할 것 없이 온 국민이 볼 수 있는 공중파 드라마에 아무리 이혼녀, 이혼남이라지만 아주 쉽게 모텔로 직행하는 장면이 적절하다고는 못하겠다.
  다만 그 장면의 적절성 여부와는 별개로 내가 놀랍다 못해 신선하기까지 했던 부분은 10만 원짜리 수표를 던지고 간 이영의 행동이었다. 비록 드라마이긴 하지만 이제 우리나라도 '성 문화'에서 여성이 주체로 나서게 됐구나 하는 감회와 함께 자신의 뜻대로 성 욕구를 해결하고, 그에 따른 결과까지 책임질 줄 아는 적극적인 현대 여성 같은 변화는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갈 데까지 갔는데 어떻게 다른 남자와 결혼해?"

  26살 때던가, 나는 본의 아니게 중매쟁이가 됐는데 내 친구와 내 삼촌뻘 되는 친척 아저씨가 연애를 하게 된 것이다. 아저씨는 핸섬한 외모의 총각 선생님이었고, 내 친구는 자그마한 키에 선 고운 얼굴에다 '요조숙녀' 소리를 들을 만큼 착하고 얌전한 아가씨였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복병이 나타났다. 아저씨를 좋아하는 동료 여교사가 막강한 경쟁자로 등장한 것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아저씨 집안에서는 비슷한 직업의 여교사에게 호감을 가지게 됐다. 내 친구는 상고를 나온 평범한 직장인이었기 때문이다. 누나 다섯에 외아들. 드세 빠진 누나들이 벌떼 같이 일어났다. 남동생의 장래를 위해 당연히 여교사와 결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유부단한 아저씨는 가족들의 반대에 마음이 흔들렸고 내 친구를 점점 피하기 시작했다. 친구는 죽겠다고 드러누웠다. 말인즉 몸 주고, 마음 주고 갈 데까지 간 자기가 다른 남자와 어떻게 결혼할 수 있겠냐는 거였다. 살다가도 헤어지는데 연애하다 헤어진 게 뭐 대수냐고, 친구를 설득해도 소용이 없었다. 살고 싶지 않다는 얘기만 계속 해댈 뿐이었다.
  '세상에 저렇게 앞 뒤 꽉 막힌 가시나가 있나? 강간도 아니고 저 좋아서 한 짓을 철딱서니 없는 십대도 아니고 서른 다 돼 가는 어른이 순결 타령하며 널브러져 있다니. 저런 맹물은 나도 싫겠다.'
  다행히 나의 적극적인 중매 애프터 서비스와 우리 할머니와 고모까지 앞세운 덕에 아저씨의 부모와 누나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고 다행히 그 커플은 결혼에 안착했다. 그 일을 거치면서 나는 '순결'의 가치를 보다 냉철하게 되돌아보게 됐다. 성인이라면 '성 생활'도 스스로 책임져야 하고 그 사랑으로 인한 후유증이 상처가 되더라도 그 몫은 자신이 짊어져야 한다는, 성에 대한 구체적인 자각이었다.
  
성 개방에 전전긍긍하는 부모들, 그 심정 알까

  요즘 젊은 세대들의 개방된 성 풍속도를 보면 딸 가진 엄마들은 편히 잘 수가 없다. 엠티다 여행이다 제멋대로 쏘다니는 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마음을 놓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우리 모임에서도 단연 자식들의 '성 문제'가 화두로 등장했다.
  학교 앞에서 혼자 자취하는 딸아이를 걱정하는 내게 한 후배는 이런 충고를 던졌다.
  "언니, 그 젊은 것들을 무슨 수로 막겠어? 우리 부모들이 생각을 바꿔야 해요. 나는 배낭여행 가는 딸한테 콘돔까지 준비해 줬는데, 뭘. 대책 없이 사고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어? 어쩌면 나 같은 정공법이 아이들에게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촉매제가 될지도 몰라."
  자녀의 성 문제에 개방적이다 못해 파격적이기까지 한 후배의 사례에 우리 모두 와글와글 논란이 많았다. 그러면서도 내린 한 가지 결론은 지금의 '성 개방' 물결은 우리 기성세대들도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다는, 아주 현실적인 인식이었다.
  어느 날 느닷없이 손주 새끼 안고 들어올까봐 아들 가진 부모들까지도 전전긍긍한다지 않는가. 섹스 파트너에게 수표 한 장 던져 놓고 사라질 만큼 당당한 이영. 기분 내키는 대로 '쿨'한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 자신의 선택에 스스로 책임질 줄만 안다면 자식 걱정 한시름 놓아도 되겠다는 것, 바로 이영의 하룻밤 사랑을 본 딸 가진 엄마의 소감이다.


조명자(yooun29) 기자    
2005-07-07 11:59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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