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담배와 술에 붙는 세금을 올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정부는 기획재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조세연구원이 어제 분위기 띄우기용 술·담배 관련 정책토론회를 연 것을 시작으로 구체적인 검토 작업을 벌일 방침이라고 한다. 음주와 흡연의 사회경제적 비용이 연간 24조원이나 되는 상황에서 흡연·음주를 줄이기 위해서는 고세율을 통한 고가격밖에 없다는 것이 세금 인상론의 근거이다. 나름대로 일리 있는 주장이다. 국제적인 흐름과도 어긋나지 않는다.

문제는 정부가 왜 하필 지금 술·담배 세금 인상론을 꺼내들었느냐이다. 정부는 이미 에어컨, 대형 냉장고, 대형 TV, 드럼세탁기 등 가전제품에 대한 개별소비세를 10년 만에 다시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에너지 다소비 품목에 대한 과세 강화로 에너지 소비를 줄여보자는 설명이지만 이들 품목은 국민들의 필수품이 된 지 오래여서 상대적으로 서민들에게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정부는 또 서민과 중소기업이 주된 수혜 대상인 각종 비과세·감면 제도의 축소를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이 모두에 대해 그럴 듯한 명분을 들이대지만, 실제로는 부자 감세로 구멍난 재정을 메우기 위한 것이라는 혐의가 짙다. 그래서 부자 감세를 서민 증세로 대응하려 한다는 비난이 일고 있는 것이다.

술·담배 관련 증세에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해도 거기에는 순서가 있다. 부자 감세가 소비 진작과 기업 투자 증대 등으로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그간의 정부 주장은 이미 엉터리라는 것이 거의 판명나 있는 상태이다. 먼저 정부가 잘못을 인정하고 법인세·소득세 등 부자 감세를 철회해야 한다. 그런 다음 국민들에게 왜 술·담배 관련 세율을 올려야 하는지를 진솔하게 설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들은 정부의 어떠한 설명에도 마음을 열지 않을 것이다. 괜한 갈등만 야기할 뿐이다. 이 정부가 요즘 들어 부쩍 강조하고 있는 서민 중시 정책과도 아귀가 맞지 않다. ‘MB 실정으로 골이 난 서민들에게 술이나 담배를 즐길 수 있는 자유마저 빼앗아갈 것이냐’는 항변을 한 귀로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


2009-07-09,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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