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의 ‘좌파정권 인사들에 대한 인적 청산’ 발언은 21세기도 8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이 군사독재정권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그의 발언은 자신들의 과오를 상대의 방해책동으로 둔갑시키는 뻔뻔함, 철 지난 색깔론, 권력만 가지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문화혁명식 발상 등으로 가득차 있어 “군사독재정권의 후예답다”는 야당의 논평이 단순한 정치공세만으로는 들리지 않는다.

그는 “정부조직, 권력기관, 방송사, 문화계, 학계에 남아 있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좌파 국정파탄 세력들이 새 정부의 발목을 잡아 국무위원 흠집내기로 조각조차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누가 국무위원을 흠집냈단 말인가. 부동산투기, 탈세, 논문 표절 등 온갖 흠결을 갖춘 사람들만 뽑은 이명박 정부의 인사에 대해 ‘잘못됐다’라고 지적한 것은 ‘좌파세력’이라기보다는 그야말로 보편적 국민 여론이었다.

안 대표는 또 “김대중·노무현 좌파 정권에서 이뤄진 제도와 법안을 정비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민주적 선거에서 선출된 정부를 이처럼 일방적으로 좌파로 규정하는 것은 말 그대로 저급한 색깔론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좌파정권’에서 한나라당 자신이 원내 1당이나 제1야당으로서 참여해 만든 법과 제도를 ‘좌파적이어서 정비하겠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인적 청산’ 운운하는 대목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일부 정무직이나 정부 산하 주요기관장 등의 임기를 보장한 것은 직무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그런데도 단지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을 모조리 내쫓는다면 이는 법적 제도적 취지를 무시하는 것이 된다. 더욱이 정부기관도 아닌 문화계·학계 인사들까지 거론한 것은 자신의 직분을 망각한 월권으로서 ‘신 공안정국 조성’이라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안 대표의 이 같은 발언에는 인수위와 새 정부의 잇따른 인사 실패와 당 공천의 구태 회귀 등으로 커지고 있는 ‘거여 견제론’에 제동을 걸려는 ‘국면전환용’ ‘총선용’의 의도가 엿보인다는 점에서 더욱 개탄스럽다.


2008-03-12,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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