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독일의 ‘롤라이’는 새로운 흑백필름을 생산하는가?

  이제는 이런 표현을 하는 것도 지겨워질 만큼, 우리는 주변에 많은 디지털이미지들을 본다. 드디어 핸드폰에 수백만 화소의 이미지 촬영이 가능한 카메라가 새롭게 장착되고, 디지털 카메라와 MP3 와 전화기와 전자사전과 T.V 와 네비게이션이 혼합되어 하나의 ‘공룡기기 장난감‘으로 재탄생하고 있음을 목도한다. 아무리 무심하려고 해도 디지털로 만들어진 이미지들은 우리의 주변을 정신없이 배회하고, 우리는 그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를 위태롭게 활보한다. 어디서나 디지털이 가져다주는 기적과 편리함을 칭송하고, 다시 우리는 그 위에서 새로운 디지털 인간형으로 재구성되어진다. 이미지로 시작해서 이미지로 끝이 나는 상업 광고는 앉으나 서나, 신호등 앞에서나, 전철역에서나 버스 안에서나 비행기 안에서나 심지어 목욕탕 안에서조차 도저히 우리를 쉬지 못하도록 상품을 학습시키고 있고 ’외면(外面)과 이용‘이 같은 의미로 비춰지는 현재의 젊은 시선들은 디지털로 이루어진 그 힘이 마치 지금으로부터만 시작된 듯이 허세를 부린다. 또 세월에 비껴선 나이의 노인들은 젊은이들의 피를 수혈 받으며 전화기의 버튼사용과 부가 서비스 이용방법을 그리고 디카의 사용과 폰과 카 이 둘이 왜 붙어 다니는지와 말 전화와 문자 전화의 차이는 또 무엇인지를 너른 노인정에서 땀을 흘리며 수업 받고 있다.

  비아냥거리려고 하는 말이 아닌, 참으로 지금의 우리주변을 잘 보면 이와 같은 일들이 깊숙하게 스며들어있다. IT강국이라는 말이 표제어가 되어, 어찌 되었던 잘살고 있음을 확인하는 의미가 되어진 지금 이 정보기술을 활용함에 부정적일 필요는 없다. 사진의 영역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디지털이미지의 범용은 오래된 일이고, 전통적 가치를 가진 사진관(觀)을 대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시도 역시 심심치 않게 보이고 있다. 지난 2005년 6월호 월간 포토넷의 표지 사진이 그 좋은 예일 것이다. 르네 마그리트가 이루어 놓은 초현실의 세계를 디지털이 손쉽게 덮어 쓴 듯 보이는 이 작업들은 어쩌면 다른 ‘의사(擬似)사진작업’들에 비해 솔직한 것인지 모른다. 적어도 비슷한 모습으로 손을 비꼬면서‘닮았으니’ 같은 것 아니냐고 조아리지는 않으니 말이다.

  이러한 사진의 변환은 표현 양식의 변화뿐만이 아니라 사진 산업의 변화에도 깊은 영향을 미쳐왔다. 이제 필카라 불리게 된 전통적인 형식의 카메라는 그 값이 매우 싸지거나 혹은 터무니없이 비싸졌다.  

  과거에 어린 사진가들의 소원이던 멋진 카메라가 애물단지처럼 집안 장롱 안을 굴러다니고, 얼마 전까지 마구 쓰던 인화지가 일시적이겠지만 프레미엄이 붙어 옥션에서 그 이름이 오르내린다. 게다가 코닥이나 아그파 등 세계의 메이저급 사진유제생산회사들은 경영난으로 문을 닫는다고 아우성이다.  

  그리고 그간 1888년(코닥 1호)을 시점으로 1913년(라이카 최초견본품 완성)과 1932년(최초의 콘탁스 개발)에 전환을 이룬 사진기의 혁명은, 벨록이 찍은 방돔 위에선 빠리 꼬뮨 혁명가들이 바로 그 사진으로 인해 처형당한 것처럼 처형당한 듯이 보인다. 이러한 현상의 커다란 흐름은 다시 한 번 언급하거니와 시대의 대세이다.  

  과거에 사진이 그림의 한 영역을 대신하려고 몸부림칠 때,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얻었던 그 ‘놀라움’만큼 ‘놀라운’ 시대의 변화는 바꿀 수 없는 흐름인 것이다. 아니 바꾸어야 할 이유가 없는 인류의 ‘발전’이자 ‘변화’인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현상의 회오리 안에서 ‘우리가/사진가’ 선택해야하는 미래가 과연 흐르는 강물에 몸을 싣는 일 밖에 없는 것인지를 가늠 하는 일과, 그 안에서 내게 주어진 작가적 임무를 어떻게 공고하게 해나갈 것인가를 깊이 모색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만일 이러한 변화가 당연한 것이고, 그 당연함이 나의 선택 의지와 관계없이 내 작업을 ‘강제’한다면 그것은 경제,산업이 예술에 교배되는 것이 아니라 강제로 빼앗긴 꼴이 될 것이고, 그 사이의 작가는 ‘선의의 피해자’가 아니라 ‘눈감은 기관사/방관적 가해자’가 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여미는 때에 우연히 롤라이<www.rollei.de>회사의 홈페이지에서 재미있는 광고를 보았다. 새로운 흑백필름을 생산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35mm소형필름으로부터 120mm중형과 심지어 8x10인치의 대형포맷의 필름에 이르기까지 몽땅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너무도 흥미로워 자세히 읽어보니, 이것이 장난이 아니다. 특히나 이제는 그만 사양산업이 아닐까 하고 의구심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흑백사진 영역에 보다 투명한 베이스를 가진 필름을 보다 새로운 화학약품으로 무장하여 시장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사항은, 이처럼 베이스가 좀더 맑아진 필름에 기존의 D-76현상액을 베이스로 하는 자사 현상액이 생산된다는 것과, 나아가 감도의 설정이 ISO 25에서 ISO 6,400에 이르기까지 자유롭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현상액의 조절에 따라 그 넓은 감도의 사용이 자유로운 것이다. 뿐만 아니라, 네가티브와 포지티브의 생산 또한 자유로운데 약물의 변화로 같은 필름에서 네가/포지 선택이 가능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제품은 그동안 일포드를 시작으로 코닥에서도 생산한 적이 있어 그 프로세스 자체로는 놀라울 것이 없으나, 시점이 시점인 만큼 경이로운 생각마저 든다. 게다가 이 필름의 생산은 롤라이 단독의 작품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마코(MACO)라는 브랜드로 유럽시장에 인화지를 공급해오던 회사와 손을 잡고 만든 것이다. 이 마코는 단순히 인화지의 생산만이 아니라, 할로게화은의 활용을 훨씬 넓게 이용해 오던 회사이다. 그러니 지금의 이 롤라이는 R3필름 이외에 흑백 인화지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왜 이럴까? 위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한편에서는 사진유제산업이 디지털 산업에 의해 문을 닫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뻔히 알고 있는 이놈의 회사는 어찌하여 이러한 무모한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일까?

  모두가 짐작하겠지만, 향 후 사진의 향방성은 분명해진다. 이제 속도를 요하는 것과 간편하고 손쉬움을 요하는 부분에는 모두 디지털이 대체할 것이다. 이 디지그래피의 활용은 무궁무진하여 지금보다도 월등히 넓고 깊게 이용될 것이다. 그러나 이 디지그래피가 미치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 그것은 섬유질 인화지 위에 은염방식으로 프린트하는, 즉 오랜 수명과 깊이 있는 시각적 표현을 담는 ‘흑백사진’이 그것이다. 모니터가 아니면 잉크젯 혹은 RC페이퍼에 레이저나 LED방식으로 노광을 주어 현상기에서 화학 처리하는 프린트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으로 사진은 ‘달아날’ 것이며, 이를 즐기는 좁은 수와 높은 질을 가진 시각 소비자들의 관심 안으로 영역을 구축할 것이다. 여기에는 컬렉션과 보존이라는 가치가 매우 중요해 질 것이다. 이를 위해 커다란 공룡급 회사의 대량생산된 제품보다는 중소기업의 특화된 제품이 재료로써 필요하게 됨이 너무도 당연한 귀결이리라. 앞으로 롤라이가 가고자하는 유제 산업의 향방도 그 표적을 이렇게 잡고 있을 것임에 분명할 터이고, 우리는 이를 잘 주시하여 다가오는 미래를 준비해야 하리라 생각한다.


글 : 정주하 (사진가, 백제예술대학 사진과 교수)
출처 : http://blog.naver.com/haenggu/120018026038
2005/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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